암만 훔쳐가봐라. 나보다 뒤쳐질 뿐이지.
필통에도, 우산에도 내 이름을 써 붙였다
견출지 위에 투명한 스카치 테이프를 덧댔다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게
햇빛에 반사되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래도 이름은 뜯겨나갔고
조용한 손길로 누군가는
내 목소리의 끝자락을 조심스레 접어
자기 말 속에 끼워 넣었다
감정도, 오래 쓰면 주인을 잊는다
그래서 나는 다음부턴 쓰지 않고 새기기로 했다
만약 음각마저 훔쳐간다면—
글은 빼앗길 수 있어도
정서는 끝내 나의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이의 차이가
언젠가 진짜 어미를 드러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