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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07. 2023

몽골 3 ~내륙의 바다 같은 몽골 어기노르

일몰과 아침산책이 아름다웠던 어기 호수

해질 무렵 호숫가에 모여든 사람들

2023년 6월 18일     


어기노르, 적확한 표현은 어기 호수다.

노르가 호수란 말이라는데

기노르 호수 하면 진짜 참기름이 된다 ㅎㅎ

역시 몽골여행은 목적지보다

가는 길 위에서의

매 순간 하늘과 들판이 다 목적지요 

진짜 엑기스들이다.

 

도착해 봐야 여긴 무슨 인공 건축물이나 유적지라곤 없으니
목적지는 어차피 호수나 온천이나 사막등  다 자연이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던가?

졸업, 취업, 결혼, 자녀출산과 자녀결혼, 은퇴 등등

기념비적인 큼지막한 화려한 날들이 있었지만

되돌아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의 여정이

다 그 화려한 절정을 꽃피우기 위한 

어느 하나도 건너뛸 수 없는 다 같이 

귀한 징검다리 같은 과정이었음을~!   


Birth 출생과 Death 죽음까지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On the road~

매일, 매 순간이 마치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그 순간들의 점점이 모인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몽골 초원 위를 달리며~~

양 떼도 만나고 가다가 멈춰 서서

바람 부는 평원에서 뒤돌아보며 

잠시 멍 때리는 순간들~~!

그래도 내가 잘 살아왔구나 싶었다.

이렇게 떠나올 수 있는 자유에 감사하고

모든 걸어온 길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에

미리 감사 선불이다.


그래서 이제 인생 2막

그리고 3막은 여유부리기,

여유롭게 여여하게 살려한다.

아마도 환갑이 넘어가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대충 다 얼마간은 그리 생각할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여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생도 마찬가지일 터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여유로워야

그 마무리가 순조로워서    

보다 완성도 높은 삶이 될 것이다


삶에 지혜가 있다면

용기가 있다면

마지막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런 여유와 쉼일 거다

그리고 그런 깊은 호흡의 '숨 쉼'

 '쉼' 가운데 얻는 성찰이

보석보다 더 귀한 

우리 인생의 진정한 결실이 될 것이다....라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보면

초원이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게 된다






평원을 달리며 가다가 김샘이 기사겸 가이드인 에르드네 보석씨에게 어디 가서 수태차 한 잔 마시고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초원에는 커피 숍도 휴게소도 없다. 


그래서 허허벌판 초원에서 정확한 목적지 없이 여긴가? 저긴가? 하며 우연히 들어간 게르에서 수태차 한 잔 얻어마시려 한다고 말하고 들어갔다. 

마침 주인 할머니는 며칠 전 이곳에 한국 드라마 촬영차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고 얘기해 준다. 이름만 말해도 아는 연예인 사진도 보여주신다. 한국 촬영팀은 여기서 말을 빌려서 근처에서 촬영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말 젓을 끓여 찻잎을 넣은 수태차와 수제 요구르트와 간식을 내 오셨다.


그러는 동안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자기가 한국말할 줄 안다며 살갑게 다가온다. 애 아빠가 한국에 돈 벌러 간 후 애가 스스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주인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이전 우리나라사람들이 가졌던 어메리컨 드림을 이제는 이 몽골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으로 가지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마도 두 나라사이의 엄청난 소득차이로 인함일 것이다.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할머니가 손주들과 나머지 가족들을 건사하며 게르를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차를 마시며 아이랑 몇 마디 소통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낮잠 자던 동생을 깨워 보냈다. 내가 큰 애에게 차 값대신 용돈하라며 돈을 주었더니 아마도 동생을 깨워 너도 가서 용돈 좀 받아라 하신 것 같아 일행들이 다 같이 눈짓하며 웃었다 ㅎㅎ 조금 있으니 아이들 삼촌이신 듯한 분과 두서너 분이 더 오셔서 우리랑 같이 차를 마셨다.


예기찮게 들렸던 게르에서 몽골 일반인들을 만나는 체험은 즐거웠다. 근처 입구에 사자처럼 생긴 검은 털의 개가 무서워 화장실도 못 가고 그렇게 다시 차에 올라탔다. 몽골개는 생긴 것부터가 사나운데 여행자들은 주인이 없는 곳에서 함부로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 말라고 들어서 조심스러웠다. 

몽골 양치기개는 보통 검은색이다. 이유는 그래야 양과 염소가 들판에서 다른 색깔의 늑대를 보면 달아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수태차를 마신 게르에서 만난 사자갈기털의 검은 개





마침내 어기노르 Ugii lake에 도착했다. 매 번 길도 없는 길을 잘도 찾아가는 몽골 기사에게 탄복한다.

물론 길은 주로 한 길로 나 있지만 때론 사방팔방 같은 형태의 초지에다 바람이 모래길 위 차바퀴흔적조차 날려버려 길 트랙이 희미해지고 구분 없는 곳이 많은데 그나마 몇몇 지리적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을 잡고 간다.

목표지점 마지막 표지판 이후는 가까이 가면서 게르촌에 전화를 걸어 어디쯤인 지 숙소를 찾아내는 거 같았다. 우리 눈에는 호숫가에 그저 모두가 다 같은 하얀 지붕으로 된 다 똑같은 게르촌이라 어느 곳이 어느 곳인 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기 호수는 25km 제곱으로 여의도 면적의 8.5배나 되고 몽골의 수많은 다른 호수에 비하면 큰 편은 아니나 우리 눈에는 아주 크게 보였다. 길이가 7km , 너비 5km로 11월부터 5월까지 얼음으로 덮여있다 한다. 그런데 6월의 아직도 차가운 호수 안으로 해질 무렵 뛰어드는 몽골 청년들을 보며 나는 와아~ 젊음의 피가 뜨겁긴 뜨겁구나 하며 놀라워했다.


이 아름다운 호수의 특이한 금기사항이 있는데 바로 여성은 이 호숫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들어가라 해도 차가워 들어가지도 않겠지만 암튼 전설로 인해 생긴 관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 영주에게 '어기'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녀가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는 부모님의 말을 돌보던 키 크고 잘생긴 하인과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초원에서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니 이를 시기하던 사람이 부모에게 알렸고 영주는 자신의 딸을 서둘러 부잣집에 시집보내버린다.


어기는 시집의 감시를 피해 사랑하던 청년을 만나러 오는데 청년은 '내가 죽어서 그대에게 아름다운 호수를 선물하겠다'며 숨을 거둔다. 이를 지켜보던 어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이 어기의 눈물이 모여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여인의 한 맺힌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이기에 여성이 이 호숫물에 들어가면 나쁜 기운이 몸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미신이 생겼고 후로 쭉 그 생각이 관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한다.


암튼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그런 전설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사 희로애락 없는 사람 없고 그 모두의 수많은 희비극으로 점철되어 흘러오는 역사인데 그런 사랑 이야기 하나 안 나오겠는가 말이다.


일행들과 준비해 온 푸짐한 삼겹살을 서둘러 구워 먹고 나서 호수의 일몰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양고기 소고기가 여긴 매우 흔하니 몽골 오면 한국인들은 더 귀한 돼지고기, 그것도 삼겹살을 선호하는 듯하다. 지정된 게르에 들어가니 웬일인 지 파리가 소 떼에 달라붙듯 게르천장과 바닥에 온통 까맣게 달라붙어 있어서 사무소에 연락하니 훨씬 좋은 샤워실이 딸린 현대식 방갈로로 옮겨주었다.

덕분에 샤워도 하고 방갈로 안에 화장실도 있어서 새벽에 볼일 보러 밖에 안 나가도 되니 편안하게 푹 잤다. 정말 인생만사 모든 게 새옹지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숫가를 한두 시간 산책했다. 혼자서 노래도 부르고 혼잣말 아무 말 대 잔치도 하며 어워에 들러 기도도 하니 나 홀로 호숫가 아침 산책이 즐겁고도 풍성했다. 여기서도 걷는 내내 허브향이 찐했던 게 몽골 초원 어디서나 있는 그 허브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가끔 혼잣말을 잘하는데 작년에 혼자 여행 5개 월할 때는 그것이 퍽이나 도움이 되었다. 셀프 마인드 컨트롤적인 면도 있지만 그렇게 내가 셀프토킹하면서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듣는 게 또 어떤 치유력과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격려와 응원이 되어주었다.


호수라 해도 물결은 있어서 물결치는 파도소리가 찰싹거리며 들리는데 호수의 수심이 깊은 곳은  15미터나 되고 14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니  어족자원이 풍부한 호수다. 그래서 그런 지 150종의 다양한 물새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산책하면서 날아가는 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더욱 평화로워지고 자유로워지는 듯했다.


    

호수의 게르촌- 몽골 게르는 하얀색이고 양털로 덮여서 따뜻하다.
호수는 어차피 넓어서 한쪽만 보고 게르촌은 호수주위로 빙 둘러서 많이 있다.
게르 안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일몰을 보러 나갔다
몽골용사의 피는 뜨거운가? 차가운 물속으로 몽골청년들이 첨벙 들어갔다!!
호수 가는길에 들린 외딴 게르집에서 만난 아이들, 아빠는 한국에 돈 벌러 가서 없는데 한국말을 따라하며 애교를 부린다. 용돈을 주었더니 할머니가 자던 동생(왼쪽)도 깨워보냈다
부츠에 몽골 전통옷을 입고 계신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 한 장 같이 찍자~했더니 어색하게나마 다정한 포즈를 취해주신다 ㅎㅎ
수태차를 마실 때는 항상 달달한 사탕, 초콜릿을 곁에 둔다
편리한 숙소를 원하는 여행자들을 위해서인 지 요즘은 전통방식이 아닌 방갈로 형태로도 숙소를  많이 짓는다 한다
초원의 길은 대부분 평탄하지만 비포장길이다. 우리 인생길도 때론 울퉁불퉁 비포장길 일 때도 많다.
이름을 모르나 이 허브향이 들판에 가득하다~~~
우리의 성황당과 같은 '어워'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며 소원을 빌고 명절엔 음식, 술로 주위에 고수레도 한다
추운데도 청춘불패다
넓은 지평선에 평화로운 양 떼들을 보며 나도 좁은 곳에서 막혔던, 답답했던 가슴 문을 활짝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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