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걸어서 쭉 올라가면 국립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역사, 문화, 자연박물관이라 학생, 어린이 손님들이 많고 연세 드신 할머니 안내원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부터 올라가서 보고 다시 다른 건물을 통해 나가라고 알려주신다.
1층은 체코의 역대 인물들의 회화, 흉상 그리고 체코의 역사등이 전시되어 있고 1층은 체코의 문학, 음악, 희곡 그리고 사회주의시대의 투쟁 자료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별히 이곳에서 음악가들의 일생을 사진과 요약으로 잘 전시해 두었는데 음악은 잘 몰라도 그들의 삶에서 감동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3층은 자연박물관으로 해·육상 동물들의 박제 견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원석 전시가 많았는데 그보다도 박물관의 백미는 단연코 바츨라프 광장과 연결된 통로였다.
박물관 안내하시는 할머니께서 나갈 때 꼭 그리고 나가라고 하셨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금껏 체코역사의 현장인 광장에서 일어났던 영상을 편집해서 긴 통로를 걸어가는 동안 보여주는데 마치 내가 그 역사의 현장에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역사적 영상들은 과거와 지금의 광장의 정신을 이어서 계승하게 하려는 체코인들의 노력과 의지가 아닐까 느껴졌다.
그렇게 보고 걸어 나와 프라하 구 시청 광장으로 왔다. 구 시청사의 볼거리는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되었다는 프라하 천문시계다.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에 기초해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정확히 가동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시 정각에 천문시계쇼가 펼쳐지는데, 인형이 종을 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수의 12제자와 여러 인형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많은 여행자들이 보려고 기다려서 나도 같이 봤는데 잠깐 동안 하는 시계 동작 보고는 허탈했다 . 세상에 이걸 보려고 그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다렸다는 것도 우스웠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뭐 별 건가 싶어서였을 거다.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날 때는 더 즐겁다. 도착지에 대한 특별한 준비나 사전 지식 없이 그냥 무계획으로 움직이는 나는 도착하면 그 나라를 최단시간에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국립박물관이나 더 깊이 다가서는 공감을 위해 역사적 장소등을 우선으로 방문한다. 그 외 소소한 것은 내가 꼭 봐야 할 의무는 없다 보고 자유롭게 취사선택해서 보려는 편이다. 그야말로 자유 여행자의 자유다.
하루는 트램 타고 관광지가 아닌 프라하 주변으로 돌아본다. 그냥 편한 데서 타서 끝까지 가 보고 오면 되겠지다. 관광지나 시내 중심에서 벗어나면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더 보인다. 출퇴근하는 사람, 아이들등. 그렇게 가다 공원과 큰 건물이 보이면 내려서 보고 쉬다가 다시 타고 그런 식으로 편하게 동네산책처럼도 해 본다.
땅 속 지하철은 바쁜 사람들이나 타는 것이고 목적지를 정해놓고 움직이기보다 이렇게 느긋하게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 보고 사람 구경하며 다니는 게 고행 ㅡ 고생여행 아닌 ㅡ 진정한 여유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이 최다 곳을 최고 동선으로 짜서 돌리니 시간적 효율성과 다 맡기고 다니면 되고 가이드가 알아서 요약설명 잘해 주니 편리성일텐 데 그것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궁금하기 전에 미리 다 가르쳐주는 것은 들을 때는 편해도 지나고 보면 남는 것이 없고 내가 궁금해서 찾아본 것은 기억에도 오래 남으면서 내 안에 체화되기도 하니 진짜 남는 장사 다. 바삐 둘러보고 남는 거 사진밖에 없다는 말도 맞고 어디 가서 뭘 보고 뭘 먹었는지는 기억 안 나도 특별히 고생한 기억들은 잘 안 잊힌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트램을 기다리다 이 큰 상가건물 뒤에는 뭐가 있지? 하며 들어가 본 곳 뒤 편에서 뜻밖에 ‘카프카의 얼굴’을 만났다.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작품인데 10미터 높이니 주변 건물만큼 크다. 놀라운 것은 계속 얼굴이 형태를 바꿔가며 허물어졌다 다시 얼굴로 돌아오고를 반복하며 동시에 사방으로 움직인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처럼. 유대계 동 유럽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 고민했을 작가의 모습, 부친의 냉대와 모멸 속에 견디며 글을 써야 했던 작가를 잘 대변한 조각 작품이 아닌 가 싶었다.
* 프라하의 봄이란 표현은 체코 민주화 항쟁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아랍의 봄'등 여러 다른 곳에 인용되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