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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pr 02. 2024

모로코로 가다 (6)

탕헤르  캡 스파르텔 Cap Spartel



탕헤르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이다. 그래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캡 스파르텔 Cap Spartel 이란 곳인데 탕헤르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해발 약 300m 높이에 있는 곶이다. 곶 아래에는 헤라클레스 동굴이라 불리는 명소도 있다.


어쨌든 이 곳에 왔으니 대서양 바다도 봐야지 하면서 프론트 직원 이스마엘에게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꼬불꼬불 지렁이 기어가는 아랍어로 적어준다. 두 번 갈아타는 택시는 시내와 시외택시를 구분하고 타고 가라한다. 

택시기사님께 물으니 그냥 바로 왕복으로 가는 게 어떻냐며 제안하신다. 사진 찍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가격 흥정을 하시는데 날도 더운데 왕복 네 번 택시 갈아타는 것도 번거러워서 오케이하고 그래 돈 보다는 시간이지 하며 탔다.


가면서 아저씨는 이런저런 설명을 다 해 주신다. 저 구 시가지 성은 포루투칼인들이 지었고 이 도로와 부두는 스페인 사람들이 지었은데  저 부두에서 하루에도 수 차례 이 곳과 스페인 왕복하는 페리선이 운행한다고 한다. 사실 헤엄쳐서도 가는 거리라서 탕헤르는 스페인에서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가는 여행객들이 많다.


나는 인생부자는 나이 들어갈 수록 스토리 텔링이 많은 사람이 가장 부자라 생각한다.


돈이야 얼마나 잘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거지 그냥 돈을 장판 아래 깔아둔다면 종이 조각에 불과한 거고 진정한 부자는 인생에서 어떤 체험과 경험을 많이 했냐는 것이 결정하는 것이라 본다. 


돈은 계좌잔고나 부동산값이 아니라 자기가 쓰고 가는 만큼만 자기 돈이다.







아저씨는 탕헤르에서 캡 스파르텔 가면서 부자들 집을 가르키며 여기는 지금 왕의 별장, 저기는 왕의 동생 별장, 여긴 사우디 아라비아 부자집 등등 설명해주는데 진짜 담 길이 만도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지키는 사람도 문 앞에 몇 명씩 이다. 그 부자들이 이 대서양으로 가는 지중해 해안에 개인용 비치를 끼고 진짜 구중궁궐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 다음 왠만한 부자들집은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미국인들이다. 택시를 타고 캘리포니아 가자고 한단다. 미국인 사는 지역 이름이 그런지 암튼 그렇게 말하신다. 길 가 프랑스 사립학교가 있는데 모로코 부유층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탕헤르 도시 자체가 50년간 중립 국제 도시였으니 외국인이 많은 건 이해가 가나 이제 모로코로 반환이 되어서도 이렇게 아직도 외국인은 그 옛날처럼 부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무리 남의 나라 일이지만 정치적 독립은 해도 경제적 식민지는 벗어나지 못한 거 마냥 안타깝게 여겨진다.


더 웃긴 건 이 곳에 사는 모로코 최고 부자들이 이전에 해시시 대마를 팔아서 돈부자가 되어 지금은 국회의원을 하고 고위직을 하고 여기 대궐같이 지어 놓고 산다는 거다.

지리적 요충지인 특성으로 어느 한 나라가 먹지 못하게 반세기동안 공동 관리구역으로 해 놓고 현지인들 관리 두고 일체 자유 무역항으로 삼았으니 달리 말하면 무법천지? 가장 최소한의 법적 제재만 함으로써 그 시절에  아프리카와 유럽의 길목인 이곳에서 대마초랑 기타 물류를 자유롭게 통과하게 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다.


돈은 모든 걸 이긴다. 이것이 문명이 발달했다는 21세기에도 널리 통용되는 사실이다. 그런 자본의 위력을 이 곳에 와서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저씨는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까지 구사하신다기에 무슨 일을 했냐니 파리에서 서커스단일을 7년 동안 했다한다. 내가 호기심으로 물어보니 그기서 운전하고 통역일을 했다한다. 서커스 단원들은 남미와 세계 각지에서 오는데 단장은 불어밖에 못해서 자신이 운전과 통역을 담당했다 한다. 동물도 있었냐니 낙타 10마리에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까지 데리고 다녔다 한다. 그래서 파리에서 주로 공연하고 미국까지도 이동했다 하니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런생활로 일 년에 한 달밖에 가족을 못 보니 이제 태어나고 자란 탕헤르에 돌아왔다. 딸 셋 아들 하나랑 같이 사는데 여름엔 모로코 여행객이 많아 택시 드라이버를 하고 겨울엔 외국인들 위주로 가이드를 한다 한다. 암튼 아저씨 스토리텔링이 재미있어서 풍경보랴 이거 저거 물어보랴하며 시간이 바삐 갔다.







드뎌 캡 스파르텔에 도착해서 등대를 본다. 여러나라가 합작해서 만든 다국적 등대다. 등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지중해요 왼쪽은 대서양으로 나눠진다.

바다를 나누는 캡 스파르텔 다국적 등대


그리고 다시 좀 더 내려와서 팻말이 쓰여진 곳에서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정확하게 대양 Ocean과 바다 Sea가 나뉘는 곳이다.

사람들이 줄도 순서도 없이 그냥 서로 먼저 사진 찍느라 난린데 나는 옆에 비켜있으니 아저씨가 아랍어로 뭐라 화를 내며 나를 억지로 밀쳐넣는다 ㅎㅎ


아저씨 덕분에 어정쩡 밀려 사진을 한 장 찍고 바다를 보니 바다야 뭐 선이 있겠냐마는 사람들은 그리 의미를 두는 것이다. 국가들은 각자 그들 이익을 위해서 남의 나라 남의 도시를 서로 먹겠다고 하다 결국 50년간 아무도 독점을 못하도록 공동관리 체제로 갔다는 생각을하니 다시 참 우픈 이야기로 여겨졌다.


암튼 지중해 쪽은 바닷물이 더 따뜻하고 대서양 쪽은 보다 차다는데 사람들은 대서양쪽에 비치를 만들어 놓고 즐기고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헤라클레스의 동굴이란 곳이 나온다. 전설 같은 이야기는 원래 하나였던 유럽과 아프리카를 헤라클레스가 찢어놓았고 그리고 돌을 하나 던져서 난 구멍이 바로 그 동굴이라는 거다 ㅎㅎ 정말 믿거나 말거나 인데 암튼 이 곳도 사람들이 엄청 많다. 동굴 입장료도 만만찮은데 그 동굴 끝의 대서양 바다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그 구멍난 곳이 아프리카를 거꾸로 한 모양이라고도 하는데 그리 보면 그렇게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둘러보고 오면서 오늘 사람들 인파에 왕복으로 아저씨랑 오지 않았으면 돌아오는 길도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과 이런저런 가이드 설명까지 해 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린데도 다섯 살은 더 들어 보이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별 나아진 게 없이 살아가는 이 곳 사람들로 보여 마음이 애잔했다. 흥정했던 가격보다 아주 조금 더 얹어드렸는데 Thank you, my lady 하시니 내가 되려 미안했다.


메디나 구시가지 입구, 포루투칼인들이 지은 거다. 항구는 스페인인이 짓고 암튼 국제도시 탕헤르의 신 시가지는 유럽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봐야한다

포루투칼인들이 튼튼하게 지은 탕헤르 구 시가지 요새

미공사관 건물을 방문했다. 200년 우정이라니 ㅎㅎ 우정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다

당시 미 공사관을 재현하고 그들이 주고받은 문서나 그림들,유물들이 있다.

200년 우정이라 했지만 미국 또한 북아프리카 상황을 살피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공사관을 두었던 탕헤르는 정말 국제적인 요충지라서 아무도 차지하지않고 공동관리하게 된 곳이다.

모로코왕과 미국대통령 오바마

미공사관 내부 응접실 이 곳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을 했나보다


탕헤르 파스퇴르 거리, 그 날의 대포는 이제 아이들이 올라가서 노는 장난감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갈리는 곳, Ocean and sea, 대양과 바다가 갈리는 곳에 서 봤다.

바다는 매 한 가지인데 그저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물도 갈라 놓는 것이리라

대서양과 지중해 물 색갈은 같고 다만 물 온도는 지중해가 따뜻하다 한다. 그럴 수 밖에 땅 가운데 있는 바다니 

대서양쪽 바다비치에 왠 풀장도 있다

아프리카 지도를 거꾸로 놓은 것 같다는 곳~ 그리 생각하면 그리도 보인다 ㅎㅎ





탕헤르에서 만난 여행가 이븐 바투타


메디나 정상의 카스바 박물관을 휘리릭  한 바퀴 빙 돌아나오다 가까운 곳에 이븐 바투타 전시공간이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너무 잘 알려졌으나 이 분은 사실 나도 여행 떠나와서야 알았다 ㅠㅜ

그 만큼 우리의 시야나 관심이 공평하지 않고 편협한 걸 인정해야하겠다. 교육 커리컬럼이란 것도 국가가 정해서 국가가 제시하는 방향대로 가기에 부족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보충해야한다 본다. 


지나고 보면 우리가 배운 세계사란 것도 다분히 서구 유럽제국주의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었다. 제 3세계 아랍 아프리카 아시아 중심은 결코 아니란 사실! 


암튼 이븐 바투타는 정말 괄목할 만한 놀라운 인물이다.


그가 밟았던 땅은 마르코폴로나 그 누구보다도 넓었고 700년 전에 육로와 해로로 30년 동안 40개국을 방문했다.각별한 신앙심이나 여행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1304년에 이 탕헤르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법관출신이었다. 그도 법관으로서 일할 준비가 되었으나 21세가 되던 해에 이슬람 교도의 의무인 성지순례를 위해서 메카로 떠난다. 5년이 걸려서 메카에 도착하고 목적했던 여행을 이루었으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1331년에는 메카를 출발하여 아프리카 대륙 동쪽 해안을 따라 이번에는 낙타가 아닌 배를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여행은 그 후 인도 델리 술탄국을 방문하여 인도의 법관으로 약 9년을 머물렀다. 다행히 그가 여행하던 시절 14세기에는 이슬람 세력과 영향력이 크던 시절이어서 술탄의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인도 남부지역을 순례하기도 하였다. 1345년 술탄의 요청으로 중국 왕을 방문하는 사절단의 일행이 되어 가다가 풍랑을 만나 몰디브 제도에서 머물렀다. 그 곳에서도 법관으로 지내며 4명의 아내를 두었다 한다.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출발하여 여러 곳을 거쳐 베이징에 이르렀고 중국이 음식이 매우 발달된 나라라는 기록을 남겼다.


탕헤르 집을 떠나온 지 30년이 되고 그의 나이 쉰 살이 넘어서야 모로코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기서 멈추지 않고 몇 년 뒤 1352년에 이븐 바투타는 다시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 약1,600킬로미터를 횡단한다.그렇게 30년에 걸친 12만 km의 여행거리 동안 그는 각지의 학자와 수도사와 친분을 나누고 왕들을 알현함으로 그의 기록은 매우 풍부하다.

14세기 유럽인구의 삼분지 일을 죽음으로 데려간 흑사병도 있었는데 그는 대단한 면역력과 지구력으로 여행을 한 거 같다. 


이븐 바투타가 탕헤르 아프리카 북서쪽 끝에서 아시아 대륙 베이징까지 갔듯이 나도 극동의 끝 코리아에서 이 곳 탕헤르까지 왔다. 여행의 신이 나를 보살펴 이븐 바투타의 십분 지 일 만큼이라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행하게 해 달라고 그의 동상 옆에서 기원해봤다.


탈 것과 숙소가 온 라인 예약 클릭 한방으로 해결되고 구글 네비가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 좋은 시대에 말이다.


카스바 박물관 앞 바다뷰를 즐길 수 있는 전망좋은 카페 살롱 블러~파란 카페란 뜻이다


박물관의 그림 느낌있다. 비둘기, 손에 든 허브같은 것, 몸매를 가린 옷에다 샌들까지


현자 같은 모습에 손에 든 장미 한 송이가 의미하는 바는?


지브롤타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카스바에서 내려다 보는 항구의 뷰

탕헤르에서 중국, 아프리카까지 14세기에 낙타와 배를 타고 30년 넘게 그가 여행한 나라들 지도를 보면 이븐 바투타야말로 찐 여행가다!!!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잘 생기셨다~!  마당의 이븐 바투타 동상앞에서 나도 기원 약속했다

걸을 수 있을  때 내 맘데로 내 발로 세계일주할 거라고 ㅎㅎ


색채의 조화가 아름답다. 자매일 지, 우연히 내 폰에 들어온 눈만 가린 히잡을 쓴 여인들


여행 내내 먹었던 싱싱한 샐러드덕분에 코로나도 이겨내고 건강하게 뚜벅이로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파스퇴르거리에서 본 탕헤르 바다 뷰

유튜버 조승연작가도 극찬한 작가들의 단골카페다 그랑 카페 드 파리~파리의 큰 카페~명소의 기운도 느껴보고~국제도시 탕헤르의 이런 카페에서 많은 작가,음악가등 각종 예술가들이  술도 커피도 차도 마시며 이 곳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했었다.


나는 그랑 카페 드 빠리에서 커피 아닌 뜨건 모로코 티를 마시며 멍 때렸다. 테투안 숙소의 이와띠와 아줌마도 꼭 추천한 이 카페는 많은 작가들의 쉼터였고 영감을 떠올린 장소였다.



숙소근처 카페와 가게들

애틋한 모로코, 보름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여정길 고우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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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캡스파르텔 #나홀로세계여행 #이븐바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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