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지리산 시골집에서 남편은 뱀삿골 단풍을 보러가자며 카메라를 메고 나섰다. 나는 상림공원에서 본 단풍으로 족하다며 집에서 40킬로 남짓 떨어진 최명희 문학관을 가자고 했다.
어딘 들 어떠리, 이 가을에 길 나서면 사방 풍경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안팎으로 바람이 일렁이니. 마침 인월 5일장이라 장구경도 휘리릭 하고 짜장면 짬뽕 사 먹고 호떡도 사 먹고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남원시 외곽을 달려 한참을 가니 사매면이 나타난다. 남원시 사매면은 작가 부친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그 속의 노봉마을이 소설 ‘혼불’의 배경이다.
문학관의 널직한 마당과 한옥지붕이 여유롭다. 우리 전통건축의 멋과 매력은 무엇보다도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건축의 문외한인 나도 들어서면 바로 느끼는 그 탁 트임과 열림은 깊은 숨을 쉬게 한다.
자연과 사람이 소통으로 하나 되게 하는 곳,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안 읽은 나도 작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서 쉽게 닿게 한다.
영상으로나마 51세로 비교적 일찍 돌아가신 작가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목소리로 작품 설명을 듣고 그 외에도 소설을 영상이나 조형물로 표현해두어서 쉽게 작품 속 이야기로 빠져들게 하였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 속의 삶을 살든 각자 최선을 다해 산 사람들의 삶은 지금 붉게 물든 단풍처럼 감동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믿는바 신념과 가치를 따라 최선으로 경주한 삶은 모두가 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거 아닐까.
무너져 내리는 종가를 지키려는 3대 여인들과 주변인들의 삶이 지금의 가치관으로 보면 아니게 여겨지는 면도 있지만 각자 본인들에겐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니까.
우리가 살다 갈 때 마지막 혼불은 어떠할까? 생각해봤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혼백’이 남는다 믿었다. 그래서 어쩌면 감정체 같은 무거운 ‘백’은 아래로 꺼지고 ‘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믿었다. 이 때 혼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spirit) 이나 영어로 소울(soul)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 서평 참조
소설 “혼불”의 배경은 1930년대 말. 전라도의 한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宗家)를 지키며 치열하게 몸을 일으키는 宗婦 3대와, 천하고 남루한 상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애환에 대한 이야기다. 어둡고 암울한 시절. 외형적으로는 국권을 잃고 일제의 탄압을 극심하게 받으며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이중적 시대상황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지만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모두 원고지 1만 2천장에 달한다.
.......소복한 종부 청암부인은 흰 덩에 앉아 신행을 갖추면서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고 다짐한다. 무너지는 기둥을 곧추세우고 시부의 상을 치르며, 조카 기채를 아들로 입양한다, 몰락해가던 종가를 홀로 일으키고, 아들 기채가 손자 강모도 생산하여 가문에 대를 이었으며 저수지축조의 대역사도 마치지만, 합방당한 나라는 사라지고, 창씨개명의 강요로 가문보전의 위기를 당한다. 손자 강모는 효원과의 혼인에 좌절하며, 소꿉동무 사촌 강실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다가가지만, 이룰 수 없는 안타까움은 자포자기의 방관과 도피, 퇴폐적 낭만으로 자신을 내몰면서 방황한다. 버려진 고아로 태생이 천민인 춘복은 타고난 운명의 한계를 비관하면서, 신분을 바꾸고 뛰어넘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데.....
“魂불”의 작가 최명희는 1947년 10월10일 2남 4녀 중 장녀로 출생하였다. 최명희는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72년부터 74년까지는 모교인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74년 봄부터 81년 2월까지는 서울 보성여자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스승으로 존경받기도 했다.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전국 백일장을 휩쓸면서 탁월한 감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다음 해인 81년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장편소설 모집에 ‘혼불’(제1부)이 당선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1980년 봄 4월에 첫 문장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를 쓰기 시작해서 마지막 문장 “그 온몸에 눈물이 차 오른다.”를 쓰기까지 꼬박 17년이 걸린 이 대하소설 “혼불”은 맨 처음 동아일보에 1부를 연재하고, 이후 월간 “신동아”에 88년부터 95년까지 7년 2개월에 걸쳐 연재한 뒤 모두 열 권으로 묶었다.
작가 최명희가 소설 “혼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정서, 원형질에 대한 완벽한 복원이었다.
강모와 효원의 혼인식
청암 부인 장례식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반상(班常)의 주인공들을 통해 불과 60여 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살고 입고, 먹었던 풍경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엄청난 빠르기로,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까지 붙으면서 따라오지 못하는 자는 도태시키는 비정할 만큼 야멸차고 단순한 시대 논리. 그러나, 그렇게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는 결국 모국어를 해체 시키고, 모국어가 해체된다는 것은 곧 민족 정서가 변질 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믿고 있었다.
“어둠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도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어둠이야말로 삼라만상의 지신(地神)이며, 생명의 모태다. 빛이 밝게 빛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신의 불인 혼불은 사실은 혼돈의 시대에 더 환하게 타오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문체와 모국어에 대한 숭고한 신념으로 몰두했던, 작가 최명희는 1998년 12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과 함께 꽃심을 지닌 이땅, 그가 사랑했던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 하나...... 그는 이제 고향 전주의 ‘최명희 문학 공원’에 잠들어 있다.
작품 요약 영상 -강모의 혼인식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끊임없이 “혼불”을 쓰게 하는 것일까.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은 나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이를 다른말로 하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사물의 본질에 숨어있는 넋의 비밀들이 늘 그리웠다.
그리고 이 비밀들이 서로 필연적인 관계로 작용하여 어우러지는 현상을
언어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하여 섬세하게 복원해 보고 싶었다.
-미국 시카고대학 초청강연 중에서-
작가가 소설혼불 속에 담은 많은 사상중에는, 보름달과 그믐달을 두고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고 말하며, 대칭적 동서남북 방위를 설명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우주 자연이 주는 평화는 옆에 있고 동등하며 순환하는 동남서북의 개념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종부 청암부인은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다짐하며 그 안에 다사로운 모성적 정감을 채워 한몸에 음양을 갗춘 자웅동체로서의 거대한 여성성을 보여주었다.
해설샘은 혼불 문학상 상금이 5천만원이었다가 이제는 7천만원이 되었다고 했다
이 적지않은 상금 또한 아마도 여러단체에서 작가상을 후원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문학관 옆의 미술관에서 입장료 대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단풍 끝물이 곱다
~~그 날 문학관에서 해설하시는 분의 마지막 말은 혼불을 토지나 태백산맥같은 다른 대하소설과 비교하면서 그저 혼불은 장편예술소설이라고만 했다. 그 말인즉슨 소설의 한 절 한 절이 함축적인 시와 같다는 말인가 싶었다.
글을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던 그녀, 그녀는 정말 소설 ‘혼불’을 혼의 불로 바위에 글씨를 새기듯 써 내려갔는 게 아닐지
선조들의 삶의 방법, 사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모국어의 혼을 담아 역사와 의식의례의 실체를 통해 보여준 그녀의 소설은 지역 방언과 여러 자료들을 고증하고 복원하여 쓰여졌다 한다. 하니 소설 ‘혼불’은 문학적 예술성뿐 아니라 후대에도 기억할 만한 문화적 가치도 소장하고 있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