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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ug 12. 2023

1592년간 수도였던 도시, 이스탄불

두 번째 찾은 추억의 이스탄불

이스탄불에 배가 정박하고 크루즈 터미널을 걸어나가는데 터미널 자체도 공항만큼이나 크다. 역시 지중해의 중심 도시답다. 이스탄불은 예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다. 걷다 보니 블루모스크도 나오고 아야 소피아도 만나고 그랜드 바자르도 나오겠다는 기억으로 걸어가보니 한번 와본 곳이라고 차례로 나타난다.


스파이스 바자르의 복잡한 시장통 골목을 지나서 그랜드 바자르 입구가 나타나고, 옆에 제법 큰 모스크가 있는데 예니 모스크다. 그랜드 바자르는 사통오달이라 들어가면 미로처럼 출입구가 많아 헤맬정도로 정신이 없는데, 행인이 많아 엄청 북적이는 것도 여전했다.


지나가는데 머릴 멋지게 꾸민 총각이 달달한 다과를 맛보라고 주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레이시아?” 한다. “놉놉” 하자 그 옆에 있던 총각이 “인도네시아?” 한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내 외모 탓에 여행하면서 내 국적을 제대로 맞춘 적이 없다. 세 번째에 필리핀이라고 물어보기 전에 얼른 내가 먼저 “코리아~”라고 외치고 사라졌다.


7월의 이스탄불 햇볕은 완전 여름 날씨를 느끼게 한다. 걷다 목이말라 수도꼭지가 보이니 반갑게 물을 받아 마셨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우정의 증표로 선물했다는 황금지붕으로 된 우물이다.

아야 소피아는 원래 동로마 시절에 기독교 성당이었다가 오스만제국이 모스크로 바꾸었고 지금은 박물관처럼 사용되는 곳인데, 사람들은 그냥 소피아 성당이라 부른다. 아야 소피아 앞에 가니 줄이 장난이 아니다. 성당 앞의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카페라테를 마시며 바라보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내부가 아름다운 건 사실인데 이미 보았기에 굳이 줄을 서서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실외인데도 카페 테라스 그늘에 오래 앉아 있으니 시원하다 못해 너무 선선해져 블루 모스크로 가니 그곳도 줄이 좀 있었다. 이번엔 기다렸다가 들어가보았다. 블루 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인데, 서양인들이 애칭으로 블루 모스크라 한 뒤부터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모스크 내부의 2만 개 넘는 파란 타일 장식과 260개의 푸른빛이 도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그렇게 불렀다 한다.

  ▶ 아야 소피아 앞에 모여든 많은 인파들

▶ 블루 모스크(아흐메드 모스크) 앞

▶ 삼중 성벽이 지금도 도시를 둘러싸고 있고 그 옆으로 노란 택시가 달리고 있다


1609년 오스만제국의 14대 술탄이었던 아흐메드 1세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해 1616년에 완공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칭송받고 있다.

이 모스크의 특징 중 하나인 6개의 미나렛에 대한 일화도 있다. 미나렛은 뾰족한 첨탑으로 보통 4개인데, 술탄은 1개의 황금(altin) 미나렛을 요구했다. 그런데 건축가가 6(alti)개의 미나렛으로 잘못 알아들어 6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완성 후 술탄이 만족했기에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전무후무한 6개의 미나렛으로 더 특징있는 모스크가 되었다.


술탄 아흐메드 광장 잔디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비엔나 로열파크에서 햇볕을 즐기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디서든 쉼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근처에 있는 귈하네 공원(Gulhane Park)에도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에서 나와 갈라타 다리를 보러 갔다. 갈라타 다리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 혼 사이의 삼각형 바다를 잇는 다리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도시이고 지중해 무역 도시로서도 중요했지만, 삼중 성벽과 더불어 삼각형의 바다가 있어 육지의 성벽만 잘지키면 되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런 자연적 입지가 있었기에 무려 1,600년 동안 난공불락의 수도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 천년의 요새를 뚫고 함락시킨 술탄 모하메드 2세와 관련된 영화 <오스만 제국의 꿈>을 재미있게 봤던 생각이 났다. 골든 혼 쪽에 바다를 막는 쇠사슬과 삼중 성벽을 뚫지 못하자 오스만 군대는 산으로 대포를 끌고 올라가서 공성전을 펼쳐 성벽을 무너뜨렸다.

갈라타 다리와 갈라타 타워도 이스탄불 탈환 후에 생긴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해협 사이로 수많은 유람선, 그리고 바람 쐬러 온 사람들과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곳 남자들의 보폭 큰 걸음을 보면서 나는 마치 튀르크 전사를 보는 듯했다. 코리아 하면 같은 형제의 나라라고 좋아하는 이들이 정말 고조선도 훨씬 이전에 나뉜 12한국의 한 지파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참조

이스탄불의 유구한 역사 | 처음에는 그리스제국의 도시 비잔틴이었다가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이름을 따서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제국이 탈환하면서 이스탄불이 되었다. 이스탄불의 뜻은 ‘The City’, 즉 그 도시다. 이미 로마와 동로마의 수도가 되면서 도시 자체를 아름답게 꾸몄고 당시의 인구나 위상으로 볼 때 더 이상의 도시가 없다는 의미로 그냥 ‘그 도시’라 불렀던 것이다. 1922년 터키공화국으로 제국이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1592년간 수도였다.


앞에 있는 소피아 성당을 보며 커피 마시고 쉬었다 / 갈라타 타워 / 카펫을 수리하고있는 아저씨

바다를 보며 쉬는 이스탄불 사람들 / 저렇게 간식을 만들어파는 찻집




바자르 천정과 북적이는 인파 / 언제나 눈길을 끄는 대추야자등 견과류와 달달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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