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성장시킨 건, 내가 아니라 강아지의 조건 없는 사랑
순이가 우리 집에 온 날은 2019년 9월 24일이다.
아들이 6학년 때, 아들 친구 엄마가 '고양시 제시, 너를 안았을 때'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불안과 선택적 함구를 하는 자폐 아동이, 고양이와 교감을 하면서 병이 나아지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 주변 사람들 눈에는 내 아들의 자폐성향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서울대 병원의 결과지, '타고난 불안으로 인한 강박'이라는 증상(?)에 매달려 자폐나 아스퍼거 증상을 인정하지 않았다.(지금 의사샘말이 그 당시엔 자폐스펙트럼이란 용어가 없었고,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바뀌기 때문에 증상이 약한 아이들은 신중하게 병명을 진단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엔 입으로는 고맙다고 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읽지 않았다. 아니, 읽기 싫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가 사회에 적응을 못해 힘들어져서야 책꽂이에 꽂힌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자폐아동은 눈 맞춤을 잘 못하는데, 고양이가 빤히 바라보면 고양이 눈을 바라보면서 눈 맞춤이 개선된다. 또한 고양이와 정서적 교감을 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눈 맞춤을 못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 표현이 서툴고 남의 감정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토피, 비염이 있었고,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양이를 입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동물이 강아지였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자랐다. 오빠, 언니들과 터울이 많은 막둥이라서 거의 외동이나 다름없었고, 그 허전함을 달래준 친구들이 강아지들이었다.
날마다 '온라인 종합유기견보호센터'에 들어가서 강아지들을 보고, 종마다 다른 개들의 특성을 연구했다. 남편은 "개는 마당에서 살아야지. 아파트에서 어떻게 사냐?"라고 일축했지만, 아들이 좋아질 수 있다는 데 뭔들 못할까? 싶었다.
어느 날, 마당개인 자기 집 개가 새끼를 5마리 낳았는데 모두 입양을 보낸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고, 약속을 잡았다.
부랴부랴 마트에 가서 사료와 배변패드를 샀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가슴은 흥분으로 가득 찼고, 쉼 없이 쿵쾅댔다. 저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겐 알리지도 않고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서 양평으로 달렸다.
지금도 처음 순이를 보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주먹만 한 크기의 새하얀 강아지가 까만 눈을 빛내면서 라면박스에서 낑낑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일이 언제예요?"
"8월 15일입니다."
"에고, 이제 겨우 40일 됐네요."
"강아지가 많아서 다 키울 수가 없어요. 약속드린 강아지 보다 이 아이가 사람을 잘 따라서 이 아이를 데려왔어요. 여자 아이예요."
하얀 꼬물이가 박스 안에서 돌아다니는 데 남자건 여자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첫눈에 반해버렸는데...
그녀가 내민 종이에는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서약서가 있었고, 사인을 했다.
그냥 데려가서 잘 키워달라는 걸, 그냥 데려오는 거 아니라고 주인 손에 3만 원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박스째로 아들이 안고 뒷좌석에 탔다.
강아지가 두려운지 계속 낑낑대자, 아들이 조심스레 안아 들었고, 순이는 아들의 바지에 첫 선물을 안겼다.
그렇게 순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는 내가 잘못을 뉘우쳐서, 심리학 공부를 해서, 본성을 바꾸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줘서 아들이 자폐성향에서 나아지고 성장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물론 나와 가족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1등 공신은 우리 순이다. 순이가 아들을 변화시켰고, 우리 가족을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