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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주 Apr 01. 2024

현재 2. 나를 변화시킨 아들, 내가 변화시킨 아이.

인간이 본성을 버리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필요하다.

인스타도 페북도 유튜브도 계정만 있고 다른 사람들 것만 보고 있지, 내 글은 쓰지 않던 내가

브런치에 내 글을 쓰다니... 미친 거지. 

진짜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인가? 명예 때문인가? 돈 때문인가?

블로그에 잠금장치를 하고 글을 쓰면 되지. 왜?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556명의 작가지망생 중에서 2명만 뽑는데 뽑힌 적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고 있다. 그 이후 출판사에 낸 작품들이 번번이 거절을 당하고 낙심을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는 기대는 버렸다. ( 이 일은 1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출판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목적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내가 작가라는 이력을 보여주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등단과 기획도서로 우려먹기엔 요즘 아이들이 너무 똑똑하다. 선생님도 글을 쓰고 있어야 아이들도 내가 롤모델이 되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작가의 타이틀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ADHD 아이가 있었다. 

아들 덕분에 나는 꽤 좋은 선생이 되었다. 아이가 어떤 짓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이건 진심이다. 가끔 나도 나 자신에게 놀랄 때가 있다. 내 뱃속에 사리가 있나? 나는 왜 화가 나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었나? 

한 학기 동안 아이를 가르치면서, 아이가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ADHD 아이가 달라진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선생인데,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느리게 달라지고 있다. 

한 학년이 한 반인 아이들은 또래뿐만인 아니라 위 학년, 아래학년까지 모두가 다 알고 지낸다. 돌봄 교실과 방과 후 교실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 수업에 오는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보면 인사보다도 먼저 민준(가명)이의 행동을 이르면서부터 시작한다.

"선생님, 오늘 민준이가 침을 뱉어서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선생님, 민준이가 수업시간에 돌아다녀서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선생님, 저는 민준이가 싫어요."

"저는 민준이 때문에 이사를 갈 거예요."

"민준이가 옆에 앉으면 저는 나갈 거예요."

여기에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이후 민준이가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온다.

"선생님, 저 오늘 이거 만들었어요."

민준이가 내민 건 정말로 볼품없는 작품이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처럼 뭉쳐놓고 길쭉하게 만들어놓은 작품들마다 이름이 붙어있다.

"우아! 정말 그런 것 같아. 정말 잘 만들었네!"

그러면 민준이가 세상에서 가장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 주세요."

난감하다. 아이들은 민준이의 작품을 보면 무시한다. 가방에서 자기들의 작품을 꺼내놓는다. 비교한다. 웃는다. 모두가 그러면 아수라장이 된다.  

그래도 아이들을 주목시키고 민준이의 작품을 한껏 포장해서 스토리를 입혀서 설명해 준다. 그리고 바로 수업을 진행한다.

'저 아이는 내 아들과 왜 이렇게 닮은 거야?'

아니, 닮지 않았다.

적어도 민준이의 어머니는 민준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민준이는 밝다. 지금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민준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빛을.

내 아들은 침울했다. 이해받지 못했다. 비난받았고 움츠러들었다.

온전한 엄마의 잘못이었을까?

왜 내 아이에겐 나 같은 선생님이 없었을까? 초등 6년, 중3, 고1, 10년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선생님들은 왜 내 아들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을까? 왜 방임했을까? 그리고 나는 또 왜 그렇게 죄인처럼 굽실댔을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내 아들도 초등3학년 때까지는 민준이처럼 천진난만했던 것도 같다. 말썽은 부렸지만 노는 걸 좋아했고 친구들을 좋아했다. 그 불안은 초등 4학년 때 시작되었다.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에. 늘 비난받았기 때문에. 밖에서도, 집에서도.

어쩌면 민준이도 학년을 올라가면서 그렇게 될까? 비난의 말이 칼날이 되어 민준이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저렇게 뛰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아이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집 안에만 있게 만들까?


"여러분, 어제의 민준이, 바로 전의 민준이는 잊어요. 민준이는 다시 태어날 거고,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민준이도 지금부터 잘할 수 있지?"

늘 이렇게 수업을 시작한다, 그러면 민준이는 

"예!"

대답을 크게 한다.

"민준이는 도대체 몇 번을 태어나는 거예요?"

아이들이 항의한다.

그리고 민준이는 1분도 안되어 교실 안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민준이는 놀랄 만큼 달라졌다.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 하고 의자에 앉아 글씨도 쓴다. 다른 친구들이 모둠으로 앉고 민준인 늘 혼자 앉았는데, 이제 다른 친구들에게 같이 앉자고 말도 한다. 거절당하지만.

그러면 나는 다른 아이를 설득해서 옆에 앉도록 지도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할 수없이 곁을 내어준다.


한 번은 민준이가 침을 뱉는다고 아이들이 아우성이었다.

나는 한 번도 침을 뱉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성악설에 나옴직한 아이들이 민준이를 단체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민준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민준이가 입술을 내밀고 푸우푸우, 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아, 틱이구나!

틱 하는 것도 아들이랑 똑같구나!

"민준아, 방금 푸우~ 했잖아. 이거 일부러 하는 거야?"

민준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 못 하는 듯했다.

"아,  선생님도 가끔 눈을 깜박거리는데,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러는 거거든. 민준이도 그래? 친구들에게 침을 뱉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민준이도 모르게 그러는 거야?"

나는 일부러 눈을 깜박거리며 눈 깜박이는 틱을 했다. 그러자 민준이가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러고 싶은데 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뒤에 틱에 대해 아이들 언어로 설명했다. 그리고 민준이에겐 푸푸~를 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라고 지도했다.(물론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이 얼마나 간단한 솔루션인가?

이후 민준이는 여전히 푸푸를 했지만 바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고, 아이들은 민준이가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닌 걸 알고는 침을 뱉는다고 나에게 달려오지 않았다.  

이 행동에서 생긴 소문, '민준이는 더럽다'라는 악의적인 소문은 일단락되었다.


민준이는 잘 있을까?

지금은 그 학교에 수업을 가지 않는다. 독서논술 수업이 빠지고 신체활동 수업이 늘었다. 나의 만족도조사는 극과 극이다.

아이들의 눈에 내가 민준이만 편애하는 선생으로 보였을까?

말썽만 부리고 말도 안 듣는 아이를 사랑해서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을까?

그래도 상관없다.

어쩌면 민준이가 사는 세상에서 민준이를 이해해 주는 선생이 나뿐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민준이의 인생에 좋은 선생님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 아들 덕분에 나는 본성의 내 자아를 버렸다.

변덕스럽고 욱하고 권위적인 나는 계획적이고 참을성이 늘었으며 민주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엄마 아빠가 달라졌어요.'의 프로그램은 거짓이다. 인간이 달라지는 데는 적어도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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