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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떠올려준 강릉에서의 하루

2002년 태풍 피해 현장에서

by ligdow


아침 여섯 시 무렵,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막내야, 너 어제 강릉 갔었어?”

“네??? 어… 아니. 왜요?”

“어젯밤 아홉 시 강원 뉴스에 네가 나왔다는데?”

“내가? 나 지금 서울인데 강원 뉴스에 왜….”

“솔직히 말해. 아빠가 소여물 주다가 옆집 아저씨한테 들으셨대. 뉴스에 네가 나오더라고.”

“그게… 엄마, 사실은…….”




2002년 여름, 텔레비전 속 강릉은 폐허에 가까웠다.

8월 31일 단 하루 동안 870.5mm의 비가 쏟아졌고, 태풍 루사는 도시와 마을을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산에서 휘몰아쳐 내려온 흙과 나무가 길과 집, 들판을 덮어버려 그곳에는 더 이상 경계도 형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며칠 후, 이른 아침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의 하늘은 맑고 평온했다. 창밖으로는 부서진 풍경이 이어졌지만 하늘만은 태풍의 시간과 무관한 듯 고요했다. 그 대비가 낯설었다.


강릉자원봉사센터에 도착해 간단한 등록을 마치고, 점심을 챙기지 못해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물을 사 가방에 넣었다. 여섯 명이 탄 봉고차는 20여 분을 달려 한 시골 마을에 우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그곳은 뉴스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산에서 밀려 내려온 흙더미와 부러진 나무들이 마을 전체를 뒤덮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집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집들은 허리까지 모래에 잠긴 채 간신히 형태만 드러내고 있었고, 창틀과 지붕 가장자리에 걸린 잡초들은 물살의 높이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물은 이미 빠졌지만, 더위에 말라붙은 진흙과 썩은 풀 냄새가 코끝을 휘감으며 퍼졌다.


우리는 절반쯤 잠긴 집 안으로 들어가 삽을 들었다.

집 안에는 흙과 함께 가구와 가재도구들이 뒤섞인 채 파묻혀 있었다. 삽을 넣을 때마다 축축한 흙이 묵직하게 들려 올라왔고, 흙 속에서 꺼낸 살림살이들은 물과 진흙에 오래 잠겨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몇 번을 퍼내도 방 안을 채운 흙더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일하던 아주머니들의 웃음과 노래가 잠시나마 황량한 마을을 환하게 밝혔다.


점심은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나를 제외한 다섯 분은 둘셋 씩 친구 사이였다. 혼자 온 나를 보고 기특해하다며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그때 마을 주민 몇 분이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와서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분들을 바라보았다.

임시 거처에서 지내는 주민들의 불안한 눈빛과 지친 표정에는 삶의 터전과 재산을 잃어버린 현실 그리고 앞으로 맞닥뜨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무력감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장갑을 끼고 삽을 들었다.





9월 초, 해는 아직 뜨거운데 5시쯤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예약해 둔 서울행 버스를 놓칠까 마음이 급했다. 올 때 점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돌아오는 길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가 다니는 길로 나와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몇 대가 그냥 지나쳤는데 저 멀리에서부터 작은 트럭 한 대가 속도를 늦추며 다가왔다. 사정을 말씀드리자 기사님은 웃으며 타라고 하셨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뭐라도 입에 넣을까 했지만 이미 버스는 후진하며 출발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간신히 올라탄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좌석에 털썩 앉아 거친 숨을 고르며 가방 속 손수건을 찾는데 이상한 허전함이 스쳤다.


지갑이 없었다.

낮에 물을 꺼낼 때도 분명 있었는데……

일주일 전에 큰맘 먹고 샀던 나에게는 제법 값나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서울에서 출발할 때 남방 주머니에 버스표를 챙겨둬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갑은 내가 실수로 잃어버린 것으로 결론 내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분실한 신분증과 카드... 번거로운 일 처리에 대한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피곤함에 금세 곯아떨어졌다. 다행히 박찬오 선생님이 고속터미널까지 차를 끌고 나와 주었고, 집 근처에서 뜨끈한 설렁탕까지 사주어 배와 마음이 모두 따뜻해졌다.


엄마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피해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녀왔다고.

그래도 엄마는 서운해하셨다. 주말에도 공부하겠다며 집에 잘 내려오지 않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를 갔다니 그러실 만도 했다. 방송국에서 사람이 나왔는지도 몰랐다.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닌데 나를 알아보신 옆집 아저씨가 신기했다.





얼마 전, 중학교 시절부터 모아둔 편지함을 뒤적이다가 익숙지 않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2002년 10월, 강릉자원봉사센터에서 온 감사 편지와 학생들이 함께 전해준 손편지였다.

그날의 풍경은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편지를 받았던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지쳐 있고 힘든데도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살리던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의 모습과, 내 손을 잡아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릉에서의 단 하루였지만 그날의 기억과 편지 속 따뜻함은 여전하다.






정성스런 그림과 함께 진심이 담긴 중학교 남학생 편지


당시 중학생이었으니 지금 30대 후반쯤 되었을 듯!




•한 줄 요약

자원봉사로 재난의 현실을 마주하며 피해 주민들의 일상 회복에 작은 힘을 보탠 하루였다.



P.S 먼 길을 떠날 때는 지갑에 모든 것을 넣지 말고, 카드와 약간의 현금을 옷과 가방 곳곳에 나눠두자.^^


(한 줄 요약은 페르세우스 작가님을 따라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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