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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의 전부였던 아이들

그립고 보고 싶다.

by ligdow



나연(가명)이라는 아이는 전반적인 발달 지연으로 신체보다는 언어가 조금 더 불편한 여섯 살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만난 지 2년 정도 되었고 나연이는 나를 무척 잘 따랐다. 웃는 얼굴이 정말 사랑스럽고 예뻤던 그녀, 어머님도 늘 따뜻한 분이었다.


2003년 여름휴가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문득, 나연이에게 시골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네 두 집도 휴가를 맞아 내려온다고 해서 조카들과 함께 놀면 좋겠다 싶었다. 조심스레 나연이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 처음에는 걱정하셨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허락해 주셨다.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서울까지 차를 끌고 와 우리를 시골에 데려다주었다. 휴가철이라 길이 많이 막혔지만, 노래를 부르고 책도 읽어주고 즐겁게 놀다 보니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연이와 많이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을 꼭 잡고 있는


나연이는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외양간의 소를 보고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내 조카와 사촌 동생을 보고 낯을 조금 가렸지만 울거나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개울가에서 내 손을 잡고 발장구를 치고, 강아지풀을 뜯어 장난도 치며 잘 놀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저 흐뭇했다.


문득, 치료실에서만 보던 아이와 시골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사랑스러운 그녀와 한여름 오후를 함께 하는 게 새삼 신기하고 나연이에게 고마웠다. 사랑스러운 이 아이에게 늘 웃는 일만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때의 남자친구(남편), 조카들과 함께



낮에는 그렇게 신나게 놀았는데 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자 엄마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를 꼭 안고 마당과 외양간 근처를 밤새 천천히 걸으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달빛 아래 송아지에게도 인사를 시키고, 살살 토닥이며 내 품안에서 그녀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괜히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 내 품에 기대 잠든 작은 몸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 날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다시 우리를 서울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머님께 나연이를 무사히 안겨드리는 순간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밥도 잘 먹고 별일 없이 1박 2일을 보내준 나연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함께한 2003년 8월의 여름휴가는 특별했다.

낯선 환경에서도 잘 있어준 나연이의 작고 귀여운 씩씩함에 미소 지을 수 있었고, 조금은 다른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은 은은한 풀내음처럼 잔잔히 남아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현준이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는 아이다. (매거진 ‘그러한 일상-좋지 아니한가 ‘에서 현준이와의 이야기를 담은 적이 있다.) 그는 경직성 뇌성마비로 상지보다 하지가 더 불편해 물리치료를 받았다. 가늘고 맑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넘어질 듯 빠른 걸음으로 치료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여섯 살 현준이는 서울과 경기의 지하철 노선도를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5호선 타고 출근하셨죠? “

“선생님 퇴근하고 어디 가요?”,

“그럼 2호선 타고 가시다가 00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세요. “ 치료실에 오면 어김없이 질문과 답을 주던 아이였다.


다른 부모님들과 치료사 선생님들도 그런 모습을 신기해하며 예뻐했다.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현준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아이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아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곤 해서 나는 자주 목소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현준아, 이제 치료에 집중하자.”

“김. 현. 준!”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면 현준이는 순간 움찔하고는 스스로 “입!” 하고 말하며 입을 꼭 다물었다. 그 작은 몸짓 하나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예쁜지 조금도 밉지 않은 아이였다.


시간이 흘러 함박눈이 내리던 2016년 1월의 어느 날.

현준이와 어머님이 경기도 북부에서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왔다. 궂은 날씨에 먼 길을 오신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옛 치료실에서의 기억부터 내 결혼식에 다녀간 이야기, 현준이의 학창 시절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풀어내도 풀어내도 도란도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2022년 6월에는 내가 현준이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갔다. 작은 선물을 챙겨 그가 근무하고 있는 노원구에 위치한 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으로 복지관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모습을 보는데 기특하고 대견해서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 저 일하는 모습 찍어주세요.”

녀석, 어쩜 어릴 때 호기심 많고 밝던 모습 그대로인지. 어느새 훌쩍 자라 성실한 청년 김현준이 되어 있었다. 지난번 우리 집에서 만났을 때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의 모습이 참 든든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함이 많았던 치료사였다. 더 잘해주고 싶었고 더 잘했어야 했다는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현준이는 지금까지 나를 “저의 물리치료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날도 카페에 들른 사람들과 복지관 직원들에게 자신을 어릴 때 치료해 주신 선생님이라며 큰소리로 자랑을 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그 시절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현준이의 마음은 몇 번을 들어도 고맙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과거의 치료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요즘에는 2주에 한 번, 수요일 점심 때 현준이와 영상통화를 나눈다. 안부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모습이 든든하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일하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김현준 파이팅!


-2022.6월 현준이가 근무하는 복지관에서 점심 식사

-2025.6월 영상 통화 중 / 여름날 통화할 때는 매번 3년 전에 내가 사준 반팔 티셔츠를 입는다.






나연이와 현준이, 두 아이의 이야기에는 나의 젊은 날이 담겨 있다. 치료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성장했고 삶은 풍요로워졌다. 그 시간들은 내 젊은 날을 가득 채운 일과 사랑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그때의 아이들이 문득문득 그립고 보고 싶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206973c0d8c14d8/282



*우리 현준이가 기꺼이 사진 공개를 허락해서 쑥스럽지만 저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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