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소재 선택 가능성 탐구
Investigating AI’s Potential in Facilitating Sustainable Material Choices
최근 패션 산업에서 소재의 지속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디자이너로서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다. 특히 디자인 과정에서의 소재 선택이 제품의 환경적 영향의 약 80%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Ellen MacArthur Foundation, 2017; Moorhouse, 2020).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디자이너들이 단순히 작업자에 ‘환경 지표’를 기록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사용하는 원단이 어떤 환경적 영향을 갖는지 체계적으로 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나는 석사 과정에서 로컬 디지털 소재 라이브러리 (Local Digital Material Library)를 프로토타이핑했다.
이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비 전 폐기 섬유를 기록·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라이브러리로, 소재의 지속가능성을 추적하고 시각화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였다.
AI와 지속가능성 연구의 만남
영국에서 지속가능한 패션 연구를 위한 박사 과정을 알아보던 중, 맨체스터 대학교의 펀딩 프로젝트인 AI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소재 선택 가능성 탐구 (Investigating AI’s Potential in Facilitating Sustainable Material Choices)를 발견했다. 맨체스터 대학교는 세계 최초의 AI 연구 센터를 보유한 대학답게,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디자이너들이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소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였다.
내가 석사 과정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역시 로컬 디지털 소재 라이브러리(Local Digital Material Library)를 구축하고, AI 기반 의사결정 도구와 탄소 발자국 계산 공식을 활용해 소재의 환경 영향을 시각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즉, 두 연구는 AI와 데이터 기반 접근으로 지속가능한 소재 선택을 지원한다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AI는 공급망 관리, 디자인, 폐기물 관리 등 패션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평가받으며 (Ramos et al., 2023), 특히 디지털 소재 라이브러리와 결합할 경우 AI 기반 폐기물 분류, 소재 최적화, 지속가능성 데이터 시각화가 가능하다 (Spyridis et al., 2024; Nisa, 2025). 실제로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주변에서는 “꼭 현실에서 구현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연구의 필요성이 분명했다.
이런 이유로, 석사 과정에서 쌓은 연구 경험과 관심을 더 깊이 탐구하고 발전시킬 기회라고 판단하여 이 박사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되었다.
지원 과정과 첫 번째 인터뷰
지원 절차는 먼저 공식 지원 전 공고에 명시된 잠재 지도교수(Supervisor)에게 이메일로 이력서와 표현 의향서(EOI)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맨체스터 대학교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이메일로 보낸 자료와 함께 연구계획서, 추천서, 졸업증명서 등 추가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추천서는 석사 과정의 지도교수(Supervisor)와 학과 책임자(Course Leader)가 작성해 주셨고, 나는 미리 예시 문안을 준비해 드렸으며, 두 분 모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세심하게 진심 어린 수정과 보완을 해주셨다. 이 과정은 지원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고, 덕분에 제출 준비를 1~2주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제출 직후 연락을 받아, 단 3일 만에 10분짜리 발표 인터뷰를 준비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발표 자료와 디자인을 동시에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석사 과정에서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다.
덕분에 인터뷰 자리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심미적 완성도를 갖춘 발표를 준비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작은 디테일과 색감에 민감하다 보니 발표 자료를 준비할 때 디자인에 시간을 소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만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의외였던 점은 피드백의 방향성이었다. 나는 실제 구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AI 리서치 로드맵—활용해야 할 툴과 학습해야 할 프로그래밍 언어까지—구체적으로 설계했지만, 교수진은 “박사 프로젝트는 실용적 접근보다는 학문적 탐구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주었다.
예비 지도교수(Supervisor) 외에도 다른 학과 교수 세 분이 함께한 미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고, 질문들도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긍정적인 분위기 그대로, 곧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펀딩의 벽과 두 번째 인터뷰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뻤지만, 곧 펀딩 문제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다.
총 16개의 연구 주제 가운데, 단 두 명의 유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사실은 지원 과정에서 안내되지 않았고, 합격 이후에야 뒤늦게 공지되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후 일주일 뒤에 진행된 두 번째 인터뷰는 내 슈퍼바이저가 아닌 다른 교수진과 함께했다.
이번에는 박사 연구 프로젝트가 아닌 이전 연구 프로젝트와 형평성·다양성·포용성 (Equity, Diversity, Inclusion, EDI) 관련 목표를 발표해야 했기에 또 다른 발표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기술적인 질문은 거의 없었고, 폐기물·식민주의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윤리적 논점이 중심이었다. 특히 한 백인 교수가 내가 발표 중 언급한 waste-colonialism 개념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가나의 현대 비스포크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동시에 가나가 서양의 패스트 패션 중고 의류 유입으로 큰 피해를 겪고 있다는 현실을 짚기 위해 그 이미지를 사용하고 개념을 언급했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이후 이 경험을 다른 박사 과정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 그 교수는 일부러 나를 당황하게 하여 태도를 시험하려 한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부디 그랬던 것이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아쉬운 인터뷰였다. 그리고 최종 합격자 2명 중 나는 3순위였다는 연락을 늦게 받게 되었다.
“누군가 포기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결국 펀딩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배움도 많았다.
배운 점과 앞으로의 방향
이 과정을 통해 석사 때 다루었던 디지털 소재 라이브러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전문가 피드백을 통해 연구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었던 것도 값진 경험이었다.
또한 한 달 동안 AI와 소재 지속가능성 관련 문헌을 다시 탐구하며, AI 기반 연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코딩 역량이 필수적임을 절감했다. 내가 잘하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명확히 인식했고, 산업·학문 간 협력이 왜 중요한지도 체감했다.
이번 도전은 박사과정 진학 전의 예비 연습 같은 경험이었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패션 연구에서 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나의 첫 박사 지원을 통해 펀딩 가능성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AI와 소재 지속가능성을 연결하는 연구를 확장해 나가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업계 전문가와 연구자들과 함께 논의하고 협력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