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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석사를 마치고 (5)

한국 최초 패션 디지털 제품 여권 솔루션 CARE ID

by 다다정

한국인 실무자이자 연구자로서, 내가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유럽은 이미 제도와 규제로 지속가능한 전환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더 큰 의미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내 나라, 한국이 아닐까.


이 질문을 품고 한국 산업 동향을 다시 살펴보던 중이었다.

한글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검색창에 입력했을 때, 생각보다 적은 검색 결과가 나타나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던 중 한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국내 최초로 순환 패션(circular fashion)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회사는 바로 CARE ID, 한국 최초로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을 도입하여 순환 패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회사이다.




그 만남은 내 연구와 진로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DADA FRAMEWORK 일부 @da.dajeong


석사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패션 정책, 특히 에코디자인 규제(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 Regulation, ESPR)와 이를 뒷받침하는 DPP를 리서치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최종 프로젝트에서 만든 지역 기반 주문형 패션 생산 프레임워크(Local On-demand Fashion Production Framework) 안에 디자이너가 반드시 알아야 할 DPP 정보를 프로토타입(prototype) 형태로 정리해 제안했다. 나에게 DPP는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니라, 패션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실험적 도구이자 실천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CARE ID 홈페이지


유럽은 이미 2026/27년을 목표로 DPP 의무화를 앞두고 있어 관련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2025 글로벌 패션 서밋에서 여러 해외 DPP 기업들도 많이 만났다. 아직 제도적 압박조차 없는 상황한국에서 DPP를 실현하려는 회사를 마주하게 되자 묘한 희망이 생겼다. 더욱이 CARE ID는 EU CIRPASS-2 프로젝트와 EWG1/CoP에 직접 참여해 국제 기준을 만드는 동시에, 이를 한국 패션 생태계에 맞게 현지화하고 있었다. 마치 멀리서만 보이던 국내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의 실현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듯했다.


회사 이름 또한 운명처럼 다가왔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연구하면서 정치적·사회적 구조의 변화와 규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느끼며, María Puig de la Bellacasa의 『Matters of Care』 책의 “돌봄(care)”이라는 개념은 내 연구의 핵심 질문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깊이 ‘케어’할 수 있을까.


그래서 회사 이름 속 CARE라는 단어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지속가능 패션 업계와 학문에서 일하며, 나는 수많은 ‘그린워싱’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화려한 메시지와 달리 실제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들을 보며, 단순히 겉모습만 꾸미는 회사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점점 사라졌다. 팩트체크는 필수가 되었고, 내가 진심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CARE ID 노힘찬 대표님에 대한 레퍼런스를 확인했다. 그는 이미 4년 전부터 중고 의류 플랫폼 ‘민트컬렉션’을 운영하며, 재고 의류 재판매 등 순환 패션을 위해 실제 변화를 만들어온 인물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현장에서 묵묵히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애써온 그의 기록을 보며,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노힘찬 대표님 @Mint



마침 CARE ID에서는 서비스 오너(Service Owner)를 모집하고 있었고 서비스 전체의 방향을 총괄하며, 모두 아우르는 자리로 지금까지 내가 연구와 현업에서 해왔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why not?” 하는 마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한국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여 제출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대표님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고, 커피챗 제안을 받았다. 원래 1시간 정도로 예정된 만남은 어느새 3시간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한국 패션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와 변화의 필요성, 그리고 지속가능 패션의 미래에 대해 깊이 이야기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패션 지속가능성에 대해 한국어로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자연스럽게 “같이 일해야겠네요”라는 말이 오갔고, 그 자리에서 합류 제안을 받게 되었다.


박사 합격 통지를 받은 상태였지만 며칠간의 고민 끝에 CARE ID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박사 과정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내가 궁극적으로 구축하고 싶은 온디맨드 패션 시스템은 아직 현재 상황에서 다소 급진적일 수 있지만, DPP는 ESPR 규제 덕분에 그 이전 단계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했을 때, DPP를 먼저 실행하고 이를 성장시킨 뒤 그 다음 단계인 온디맨드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년 전만 해도 “박사 끝내고 3년 뒤쯤 한국에 돌아오겠다”라고 말하던 내가, 커피챗 후 불과 3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급진적인 결정이었다.

CARE ID팀은 7월부터 합류를 원했고, 나는 졸업식 날 학사모 대신 한국의 순환 패션을 위해 일하는 소셜벤처 사무실에서 첫 출근을 했다. 의례적인 세레모니는 아쉽게도 건너뛰었지만, 내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순간이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석사 과정에서 연구한 DPP와 ESPR, 그리고 디자이너를 위한 DPP 프로토타입 가이드까지 CARE ID 솔루션의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나에게 이 새로운 포지션은 단순한 커리어 전환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이루기 위한 연구의 연속으로 학문 속 문제의식을 실제 산업과 제도의 현장에서 시험하며, 그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careidofficial


한때 빠른 생산과 높은 품질로 세계 패션을 선도했던 한국은, 지금 세계화와 제조 기반 고령화라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CARE ID는 DPP-as-a-Service와 디지털 라벨링 솔루션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더 높은 추적 가능성과 투명성, 순환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나는 CARE ID와 함께 그 가능성을 증명하며, 그 이야기를 나누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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