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 IDⓒ의 서비스 오너로서의 첫 프로젝트
한 벌의 옷이 가진 이야기와 우리가 바꾸고 싶은 것들
매년 여름, 서울 코엑스에서는 프리뷰 인 서울(Preview in Seoul, PIS)이 열린다. 원단과 소재부터 완제품, 패션 테크까지—국내외 바이어와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다음 시즌”을 미리 엿보는 자리다.
2025년 전시는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었고, 500여 개 기업과 1만 4천 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현장을 찾았다. 나는 과거 디자이너로서 트렌드와 소재 리서치를 위해 이곳을 찾곤 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CARE IDⓒ 서비스 오너로서, 전시자이자 세미나 연사로 서게 된 것이다.
합류 후 처음 맡은 프로젝트로 전시 기획부터 세미나 발표까지 책임져야 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아직 생소한 DPP(Digital Product Passport, 디지털 제품 여권)을 수많은 패션 이해관계자가 모인 이 자리에서 어떻게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과제였다.
한국에서 DPP는 아직 낯설다. 그래서 설명보다 직관이 필요했다.
CARE IDⓒ가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실제 업계에 도움이 되는 도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를 이렇게 정했다:
Made in Korea, Sold Globally.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은 ‘진짜 Made in Korea 티셔츠'였다. 우리가 입는 대부분의 면 티셔츠는 유기농 소재가 아니고, “국내 생산”이라 부르기 어렵다. 사실 가장 지속가능한 선택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 않는 것이기에 이번 대형 티셔츠는 앞으로 CARE IDⓒ 전시에서 계속 활용될 예정이며, 최소한의 환경적·사회적 영향을 남기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국내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했다.
디자인·제작: Lost Town Supply와 국내 다이마루 봉제공장인 두리공장과 협업해 대형 티셔츠를 제작했다. 전시를 위해 백 슬릿(뒤트임)을 넣어 거대한 라벨이 드러나도록 디자인을 더했다.
원단: 국내 최초로 20년 이상 GOTS 인증을 이어온 케이준컴퍼니의 유기농 면 다이마루 원단을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목화가 재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료와 원사는 해외에서 들여오되, 국내에서 방적·직조해 완성했다.
천연 염색: 대한민국 천연염색 명인 정재만 박사와 협업해 남양주 약초보감에서 제주 화산송이 천연염색을 진행했다. 이 과정은 소금·제주 화산송이 가루·물만을 사용한 홀치기 방식이었고, 사용한 물은 재사용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했다.
마네킹: 케리마텍이 대형 티셔츠 전시용 마네킹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
물리적 라벨 : 3A LOGICS가 NFC 및 듀얼밴드(NFC+RFID)를 지원해 주셨고, 대형 케어 라벨은 Project1907의 생분해 현수막을 사용했다.
패스트패션은 옷을 빠르게 만들고 쉽게 버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한 벌의 옷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가볍게 여긴다.
실은 수많은 손길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만 비로소 한 벌의 옷이 완성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그 잊혀진 시간을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
원료에서 원사, 원단과 가공, 봉제와 라벨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하나하나 오브제로 풀어내어,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느끼며 옷 한 벌이 완성되기까지의 깊고 긴 호흡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스토리텔링과 추적성(traceability)이었다.
원료→원사→원단→가공→봉제→최종제품 with CARE ID까지의 여정을 기록하고 연결해,
“이래야 지속가능하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감각을 전하고자 했다.
동시에 각 단계별 LCA를 기반으로 한 환경 영수증을 공개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함께 보여주었다. 이 대형 티셔츠는 단순한 완제품이 아닌 공급망 전체가 기록으로 연결된 결과물이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은 CARE IDⓒ에게도 큰 배움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국내에 디지털 제품 여권(DPP)을 도입하는 데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그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질적인 방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국내 DPP 도입을 위한 값진 학습의 과정이었다.
세미나의 순간
전시와 함께 CARE IDⓒ는 DPP 세미나를 열었다. 개회는 노힘찬 대표님이 맡았고, 이어 FITI 연구원의 고봉균 박사님이 발표했다. 그다음은 내가 영국에 있을 당시 섭외한 Nobody’s Child 창립자이자 Fabacus CEO인 Andrew Xeni가 영상으로 참여했다. 그는 DPP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며, 규제 대응을 넘어 ‘디지털 제품 여권이 어떻게 수익성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연사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대표님의 말을 듣고 곧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다정님이 유럽에서 경험한 건 그곳에선 이미 당연한 지속가능성이었죠.
하지만 한국은 아직 규제의 공백으로 그 당연함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ESPR 같은 규제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다정님이 직접 보고 겪은 유럽 현장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무대에 올랐다.
화려한 전망을 나열하기보다, 내가 디자이너로 시작해 세계 패션 산업 속에서 경험하며 왜 지속가능성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본 사실들을 전했다.
유럽이 왜 그렇게까지 투명성을 요구하는지—그 배경에는 패션산업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는 환경적 부담일 뿐 아니라, 저임금 노동·열악한 작업환경 같은 사회적 문제를 동반한 산업이라는 사실이 있었다. 그래서 ESPR 규제는 패션을 최우선순위에 두었고,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공개하도록 강하게 요구했다.
한국은 이제 막 그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규제의 언어도 아직 낯설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준비를 시작하는 태도 자체가 변화의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작은 시도가 다음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답했다.
곳곳에서 이미 작은 시작들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CARE IDⓒ는 지난 4년 동안 순환패션 솔루션을 고도화해 왔고, 그 결과 누구나 단기간에 도입할 수 있는 한국현 패션 DPP 솔루션을 만들어 왔다. CARE IDⓒ를 도입한 국내 브랜드들 중 단 2주 만에 케어아이디를 도입한 브랜드도 있다.
패션 브랜드들은 케어아이디를 통해 정품 인증과 소유 인증을 도입했고, 소재의 출처를 더 투명하게 공개했다. 어떤 곳은 QR/NFC를 통해 고객과 제품을 다시 연결했다. 중요한 것은 완성형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작은 도입에서 출발해 함께 완성형으로 만들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의 지속가능한 전환은 CARE IDⓒ와 같은 한 기업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정부 기관과 학계, 브랜드와 생산 파트너가 협력해야 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공동의 기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DPP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문법’
PIS 2025는 내게 CARE IDⓒ에서의 첫 기록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DPP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문법’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주제였기에 팀원들과 함께 방향을 맞추고 끌어가야 했다. 콘텐츠 기획자이자 번역자,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동시에 맡아야 했고, 팀은 끝까지 함께 달려주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이어졌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시 기획과 티셔츠 제작, 천연염색 참여, 세미나 준비까지 모두 해냈다. 고단했지만,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이 쌓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곧바로 열매로 이어졌다. 부스에는 연일 방문객이 몰렸고, 여러 대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이어졌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님의 격려 방문도 있었으며, 이후에는 한·중·일 포럼 전시 초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뿌듯함으로 남아, 곧 다음을 준비하게 하는 새로운 힘이 되었다.
한국에도 이제 패션 DPP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팀, CARE IDⓒ가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특정 브랜드만의 몫이 아니다.
브랜드와 생산자, 고객과 산업 전체가 함께 책임질 때 가능하다.
한국 패션 산업에 유의미한 DPP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왜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언어와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안내하는 도구다. CARE IDⓒ는 “단순한 DPP”가 아니라 순환 패션을 위한 DPP 솔루션을 제공하며, 그 여정을 모두가 함께 케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꿔가고자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 주신 CARE ID 팀원들, LOST SUPPLY TOWN 팀, 정재만 명인, 케이준 컴퍼니 강성문 대표님, 3A LOGICS, 케리마텍, 그리고 PIS 전시 & 세미나 지원을 해주신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