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용 목재 이야기
난 '열쇠공방'이라고 불리는 목공방의 회원이다.
월 회비를 내면 공방의 열쇠를 받게 되고 자유롭게 공방을 이용하게 된다. 열쇠를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공방이라 '열쇠공방'이라 부른다. 교육공방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따로 없다. 그래서 일정한 작업능력을 가진 사람만 회원으로 받는다. 초보자가 공방의 기계를 혼자 다루기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공방장이 회사 선배여서 지인 찬스로 시작하게 된 경우로, 완전 초보때부터 어깨너머로 작업을 지켜보고 따라 하며 배웠다. 물론 늘 공방장의 많은 주의와 경고가 따라다녔다. (깐깐한 공방장은 새로운 회원도 깐깐하게 허락을 하는 편인데, 회사 후배라 어쩔 수 없이 받아 준 느낌은 있다.)
"작업을 마치면 다른 회원의 자리까지 모두 청소하고 떠나라."
"오일 바르고 남은 천은 뒤처리 끝까지... 자연발화되어 불이 날 수 있다."
"부부싸움한 날과 술 마신 날은 기계 돌리지 마라. 손가락 날아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를 회원으로 받아놓고 사고 날까 공방장은 노심초사했을지 모르겠다. '오랜 기간 목공을 한 사람들 중에 손가락이 온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겁주는 것도 늘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겁보다는 호기심이 앞서는 나는 크게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딱 하나만은 명심했다. "부부싸움 한 날"과 "술 마신 날"은 목공 기계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 지나치게 생각이 많거나 지나치게 생각이 없을 때 사고가 난다는 것은 목공을 하지 않아도 알아온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앱을 보다 보면 원목이 아닌데 원목이라고 가구 매물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월넛(walnut) 원목이라고 하지만 사진을 보면 월넛이 아니다. 아마도 판매자가 속이려 했다기보다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가구 판매 전문 브랜드에서부터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가구를 검색하다 보면, 가구의 다리는 원목이지만 상판은 MDF에 필름지를 붙인 경우인데 다리에 쓰인 원목만을 앞세워 홍보한 경우, 다른 나무인데 오일스테인을 월넛(Walnut) 색으로 칠해 만든 '월넛(색) 가구'라 하는 경우, 조금 더 정교하게는 MDF에 필름지 대신 실제 나무의 얇은 한 겹을 붙여 만든 무늬목의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구매자는 되팔 때까지도 원목인 줄 아는 경우가 의외로 흔하다.
아주 작은 장점이지만 목공을 하면 가구판매의 마케팅 작전(?)에 속지 않게 된다. 최근 보이는 재미있는 용어는 "러버우드"라는 말이다. 마치 'Lover Wood'를 연상케 하지만 실제로는 고무나무 즉 'Rubber Wood'를 뜻한다. 거짓은 아니지만 '러버우드'란 단어로 '고무나무'보다는 있어 보이려 하는 마케팅의 노력이다.
MDF (Medium-Density Fiberboard)
목재 가공 중 쏟아져 나오는 톱밥을 접착제와 반죽해 압착해 나무판처럼 만든 것으로 가볍고 밀도는 균일하지만 습기와 물에 매우 약하다. 습기에 노출되면 형태가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필름지로 붙여 습기나 물에 대한 노출을 막는다. 가격이 매우 싸고 가공이 용이하지만 본드를 많이 써 유해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편.
톱밥보다 큰 목재 알갱이를 본드와 반죽해 만든 것은 파티클 보드(Particle Board)라 부른다.
사장의 책상은 월넛(Walnut)
임원의 책상은 오크(Oak)
부장의 책상은 고무나무나 멀바우(Merbau)
직원의 책상은 MDF
가구로 쓰이는 나무에 대해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가구목재로 일반적으로 월넛(Walnut) 즉 호두나무를 최고로 치고, 다음으로 오크(Oak) 즉 참나무를 고급으로 본다는 뜻이다. 물론 특수목 계열로 훨씬 고급에 속하는 나무들도 있지만 "가구용으로서 고급" 수종으로 꼽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사무실에서 쓰는 책상도 오크다. (역사적 사연이 있는데 후에 참나무를 다룰 때 소개 예정) 만약 지금 당신이 출근해 있다면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책상은 MDF에 필름을 붙인 것들일 것이다. 아마도 사장의 책상조차도...
원목 책상을 회사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무게도 너무 무겁고 원목은 주기적 관리가 필요하고 더 문제는 가격 때문일 것.
기능적으로 보면 월넛(Walnut)보다 오크(Oak)가 여러 면에서 더 뛰어난 목재라 할 수 있다. 강도나 경도, 물이나 습기에 대한 저항 등 대부분의 면에서 오크(Oak)가 월등하다. 하지만 월넛이 더 고급수종이 된 이유는 색과 무늬와 감촉이라 할 수 있다. 매우 주관적인 이유지만 나무의 가치를 정한 것은 사람이다. 실제로 월넛은 느낌과 색 모두 따뜻하고 부드럽다. 또 부드럽지만 진한 색에서 권위까지 느껴진다.
내가 이런 사장과 임원급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는 집안의 CEO이자 임원인 아내의 사무실 용도일 때다. 그래서 현재 아내의 사무실은 월넛방과 오크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장과 임원급 나무를 봤으니 이제 부장급 나무를 살펴보자.
주로 이 정도 부장급의 나무로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고무나무나 멀바우는 월넛이나 오크에 비해 기능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외모가 조금 모자르다고 해야 할까?
고무나무는 오크에 비해 색이 너무 희멀건하고 무늬가 희미하고, 멀바우는 월넛과 색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귀족적 느낌이 많이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나무들을 애용하는 이유는 월넛이나 오크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필요한 가구를 만들 때 이 만한 나무가 없다.
4가지 나무에 대한 비중과 강도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멀바우가 가장 무겁고 단단하다.
12% 함수율일 때 비중(Specific Gravity) 기준으로 "멀바우 > 화이트오크 > 월넛 > 고무나무"순이고 얀카지수(Janka Index) 기준으로 강도도 같은 순서다.(얀카 지수에 대해서는 단단한 나무 이야기할 때 자세히 언급예정) 그런데 "가격은 월넛 > 화이트오크 > 멀바우 > 고무나무" 순으로 비싸다. 월넛 쪽으로 갈수록 급격히 비싸진다. 같은 크기의 경우 화이트오크는 멀바우보다 3배, 월넛은 6배가 비싸다.(2025년 6월 기준)
가성비는 멀바우가 가장 좋다고 해야겠지만, 가격 대비 심리적인 만족감을 뜻하는 '가심비'(價心比)는 각자의 마음이 기준이 된다. 비싼 나무일수록 가격은 심리적 만족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목재 가격에서도 확인되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기능보다는 심미성이다.
멀바우로 테이블 위에 놓을 책장을 만들었다. 약간의 다른 스타일을 넣기 위해 상단부에 30도 각도로 책을 눕힐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는 꽤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상단부와 하단부를 각각 다르게 합친 디자인으로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 없는 디자인이라고 믿었기 때문.
멀바우는 한때 철로의 침목으로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기능면에서 대단한 나무다. 햇빛과 빗물에도 오래 버텨내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목공을 할 때 특히 애용하게 된다. 다만 마지막 오일마감을 잘해줘야 한다. 마감이 바르게 되지 않으면 물기가 닿을 때마다 빨간색이 묻어 나오는 단점이 있다.
가구쇼핑몰에 러버우드라고 올라오는 고무나무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멀바우보다 더 저렴해서 기능적인 가구를 만들 때 매우 유용하다. 고무나무가 저렴한 이유 중 하나는 천연고무를 생산하기 위해 대형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많이 재배하기 때문이다. 많이 또 빨리 재배를 마치기 때문에 공급량이 많고 커다란 나무로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조각들을 모아 판재로 붙여 놓은 '조각집성' 형태가 많다.
고무나무로는 아내의 사무실 입구 대기의자를 벤치로 만들었다. 조각집성의 경우는 형태를 더욱 조각내어 형태의 변화를 주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 여러 조각으로 잘라 재조립하는 방식을 거쳤다. 목재자체의 무늬가 약하면 가구의 형태로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나에게 멀바우와 고무나무는 일상적으로 먹는 밥과 같고, 월넛과 오크는 간혹 마음먹어야 하는 외식 같은 나무다. 월넛과 멀바우는 진하고, 오크와 고무나무는 연하다. 놓을 곳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다만 상류층과 중산층의 가구처럼 나뉠 뿐...
목공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건축목공과 가구목공 그리고 목공예가 그것.
건축목공으로 갈수록 기능적 규모가 커지고, 목공예로 갈수록 심미적 정교함이 커진다. 가구는 정확히 그 중간으로 기능과 심미성의 교차지점이다. 어느 쪽에 더 주안점을 둘 것인지는 목수의 스타일이다.
목공을 시작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집안의 가구를 교체하려고 한다. 특히 집에 있던 MDF가구들이 1차 타깃이 된다. 원목의 가치를 느끼고 나면 MDF 가구를 참아낼 수 없다는 기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벼운 MDF가구가 하나둘 사라지고 직접 만든 무거운 원목가구가 그 자리를 채운다. 집안의 사이즈에 정확히 맞는 맞춤가구를 만들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목공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목공을 시작하면 서두르지 않기를 추천한다.
원목을 선택하고, 자르고 붙이고 샌딩하고 오일링까지 하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나면, 들인 시간만큼의 애정이 쌓인다. 하지만 자기만의 애정이라는 게 문제다. '못생겨도 내 새끼는 이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취향과 큰 차이가 생긴다. 애써 공들여 가구를 만들어왔는데 부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집안 권력자의 승인을 받지 못한 가구는 방황을 하게 된다. 부피도 있기 때문에 쌓아둘 곳도 마땅치 않다. 애써 만든 가구가 갈 곳이 없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주변에서 목공을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상황이 왕왕 보인다. 가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니므로 가족들과 미리 이야기를 나눠가며 작업하기를 추천한다. 서두르지 말고...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일주일에 하루만 목공작업을 하는 나에게 목공은 '기다림'이다.
비교적 간단한 가구라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정도 걸린다. 기초작업하는데 첫 주, 조립하는데 둘째 주, 샌딩과 오일링으로 세 번째 주, 마감오일로 네 번째 주가 소요된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니까 총 4일밖에는 안되지만, 단계와 단계 사이를 띄워놓으면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에 그 '기다림'의 시간이 좋다.
절대 일부러 교체한 것은 아니다. 긴 '기다림' 끝에 소파테이블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또 다른 귀족급 나무인 티크(teak)를 골랐다. 강도와 비중이 월넛과 비슷한 수준. 월넛만큼의 고급수종은 아니지만 비슷한 색을 낸다.
동남아 지역에 주로 자라는 나무로 견고하고 습기에도 강한 데다 벌레에 대한 저항력도 큰 목재다. 더구나 수축과 팽창이 적어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적으면서도 목재로 가공하기도 수월해 한참 동안 고급가구재로 사랑받아왔던 목재다.
수년간 목공을 하면서도 티크를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직접 써보기로 했다. 티크에 오일을 바르고 나니 진한 커피색을 뿜어낸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일부러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티크(teak)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소파테이블을 갈라지게 둔 것도 아니다.
절대로 믿어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