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perfect tonight!!
긴 시간 주저하다 스피커를 태운다.
호기심에 만들어 보긴 했지만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까운 마음에 집안 어딘가 1년 넘게 방치하다 결국은 태운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선물로 쓸 수도 없다.
갓 구운 도자기를 깨는 도공의 마음까지는 아니다. 부피를 가진 물체가 오랜 기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만들 때의 열정이 긴 방치의 시간과 함께 옅어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윽고 만들던 4주의 시간이 단 4분 동안 사라졌다.
'음알못'이자 '막귀'인 나에게 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소리'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오디오 마니아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길고 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음색(timbre), 음상(sound image), 음장(sound stage)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품부터 나오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소리의 질감을 결정하는 음색,
보컬과 악기의 위치를 만드는 음상,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음장이 모두 중요해.
유럽 쪽 스피커는 전통적으로 음색 쪽이 강하고, 미국 쪽 스피커는 음장 쪽이 강해.
그래서 탄노이는 음색 쪽 장점이 있다고 하고, JBL은 펼쳐지는 음장감이 좋아
듣고 보니 클래식 악기 각각의 음색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했던 유럽 쪽과 Rock과 Jazz와 함께 넓게 펼쳐지는 음장감이 중요했던 미국 쪽, 각각의 배경이 있었던 것 같다.
잘 모르긴 해도 내가 만들었던 스피커는 음색은 둔탁하고, 넓은 공간감도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스피커 통(인클로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소리의 답답한 느낌이 강해서 방구석에 처박힌 지 1년 정도 지나자 결국은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난 소리를 분석하지 않는다. 특별히 즐겨 듣는 음악장르도 없다.
다만 '과거 시공간의 나'와 같이 공명하는 음악들이 있음을 느낀다. 어떤 음악은 1992년 갑자기 눈 내리던 모교 앞 안암로터리 앞으로 데려가고, 허름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곡도 있다. 또 다른 곡은 고된 훈련이 끝나고 군용차 안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군인시절로 가져다 놓기도 하고, 또 어떤 곡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었던 절망의 때에 나를 위로하던 누군가를 회상하게 한다.
그렇게 음악은, 곡마다 담긴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
내 과거의 모습으로 데려가거나, 지금의 나를 흔들어주면 내 기준에 충분히 좋은 음악이고 좋은 소리다.
난 이 정도로 만족한다.
모 음악대학의 저명한 노교수가 있었다.
그에겐 음대 진학을 꿈꾸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그 집에는 음대 교수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낡고 오래된 오디오 기기가 있었다. 아들은 그게 불만이었다.
아들 : 아버지는 음대 교수인데 오디오를 좋은 걸로 좀 바꾸면 안 돼요? 저건 전원도 잘 안 들어오고 노이즈가 너무 많이 들려서 음악 감상하기가 어려워요.
낡고 오래되어 특유의 노이즈가 많았던 오디오였다.
아들의 불만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 너는 음악은 안 듣고 노이즈를 듣는 것이냐?
거의 한 세대 전에 들었던 일화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아버지(교수)가 멋있어 보였다. 기술적인 것보다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들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는 불만인데 뭘 그렇게 아들을 타박하나 싶고 이제는 아버지란 사람이 좀 다정했었으면 싶다.
이렇듯 나는 음악을 '그냥' 즐기는 것 외에 음질, 음색, 음장 등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아무 분석 없이 스피커(인클로저)를 만들어 보니 결국 불태우기에 이르고 만 것이다.
물론 여전히 너무 디테일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축복이라기보다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스피커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이번엔 약간의 '야매'를 동원한다.
스피커 통(인클로저)을 만들면서 원목으로 만들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목재로써는 원목이 더 고급이지만 원목은 같은 두께라도 나무 내부의 밀도가 제각각 다르다. 어떤 부분은 밀도가 높지만 다른 부분은 밀도가 낮을 수 있다. 이 점은 스피커에는 큰 약점이 된다. 그래서 최고급 스피커의 인클로저도 원목이 아닌 (톱밥을 압착해 만든) MDF인 경우가 많다. 밀도가 대체로 균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공을 하는 입장에서 MDF를 고를 수는 없는 일.
원목도 아니고 MDF도 아니라면 남은 옵션은 합판(plywood)이다. 합판(合板)은 얇은 판(板)을 서로 교차 압착해 합(合)친 것으로 원목보다는 밀도가 균일하다.
통나무를 돌려 깎아서 만든 얇은 나무판을 베니어(veneer)라고 부른다. 이 베니어들을 나뭇결에 따라 서로 가로/세로로 교차 압착해 만든 것이 (베니어) 합판이다.
나무는 목재가 된 상태에서도 함수율(물을 머금은 비율)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계속한다. 그래서 원목은 스피커로 만들기에 또 적합하지 않다. 미세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스피커의 균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합판의 가장 큰 장점은 얇은 판끼리 결을 교차해 압착했기 때문에 서로가 수축과 팽창을 잡아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합판의 옆면을 보면 베니어끼리의 줄무늬를 볼 수 있다.
합판은 여러 종류의 나무로 만든다. 미송, 라왕, 낙엽송, 고무나무, 버드나무, 편백 등으로 만든 합판이 모두 판매되고 있다. 그중 자작나무로 만든 합판이 가장 비싼 편으로 표면이 깔끔하면서 은은한 무늬를 갖고 있고 차음성과 공명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공도 용이하고 무게에 비해 강도가 좋은 편이어서 목공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애용되는 목재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자작 스피커를 만들기로 한다.
자작나무는 껍질이 하얀 '겨울나무'다.
우리나라는 산림청이 심어 조림한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숲이 유명하다.(1989년부터 1996년까지 138ha에 70만 그루 조림) 추위에 강해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함경도나 백두산 지역에만 자생한다. 북한에서는 껍질은 '봇'이라 불러 봇나무라 불리데 해발 800m 이상 추운 지역에 자란다. 요즘은 한반도의 높아진 기온 때문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나무다.
하얗고 벗기면 종이처럼 벗겨지는 수피, 목재는 단단하고 곧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한국의 소나무, 일본의 편백나무와 같은 위상이다. 최고급 합판으로 유명한 것은 “러시아, 핀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나무”로 "Baltic Birch"라고 부른다.
이름의 어원은 자작나무 땔감은 물에 젖어도 잘 타고 기름기가 많아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서 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기름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작나무 목재 면은 은은하고 반질반질하다. 마치 비누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온대지방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져 있는 박달나무가 자작나무과라는 사실이다. 박달나무를 영어로는 Iron Birch라고 하는데 '철 자작나무'인 셈으로 우리나라의 아이언 우드(iron wood)다.
내친김에 자작나무과의 강도를 모아 본다. 지난 "소낙비 내리는 날"편에 소개한 얀카지수에 따른다.
나는 얀카지수는 1,000파운드 포스(lbf)를 넘으면 '꽤나' 단단한 나무로 본다.
자작나무는 종류에 따라 1,000을 기준, 위아래로 분포하지만 자작나무과인 박달나무는 약 2,500 lbf정도로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단단하다. 또 Korean Birch로 불리는 거제수나무도 만만치 않다. 껍질이 황갈색을 띠는 거제수는 '물자작나무'로 불릴 만큼 수액이 많이 나오는 나무로 유명했고 사포닌 성분이 많아 1리터에 50만 원까지 거래되었다는 귀한 나무로 약 1,330 lbf정도다. 박달나무는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지 않는 반면 거제수나무는 다른 자작나무처럼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진다. 다만 황갈색으로 색깔이 다르다.
수입되는 자작나무가 아닌 국내산으로 박달나무와 거제수나무를 목공용 목재로 구하긴 쉽지 않다. 목공 인터넷 카페 등에서 직거래로 조금씩 구하기는 하지만 평소에 쓸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잘 가공된 박달나무를 손으로 만지작해 보면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같이 느끼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단단한 놈에게서 부드러움을 느끼면 매력이 커진다.
이제 다시 스피커로 돌아가자.
음향을 따로 공부할 수도 없고, 음향전문가가 될 생각도 없으니 이럴 때 하는 방법은 '모방'이다. 기존 스피커를 최대한 흉내 내는 방식을 택한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때마침 집에 있던 모니터 스피커가 고장 났다.(고장 낸 거 아니다. 믿어줘야 한다^^)
앰프를 내장하고 있는 액티브 스피커(active speaker) 방식인데 내장 앰프가 고장 난 것. 스피커 유닛을 분리해 패시브 스피커(passive speaker)로 바꾸기로 한다.
액티브 스피커(active speaker)와 패시브 스피커(passive speaker)
액티브 스피커는 스피커 자체에 앰프가 내장되어 있어, 전원만 연결하면 별도의 장비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용 스피커나 블루투스 스피커, 스튜디오 모니터처럼 일체형 스피커가 여기에 해당
반면, 패시브 스피커는 앰프가 내장되어 있지 않아, 반드시 외부 앰프와 연결해서 사용해야 한다. 고급 오디오 시스템이나 하이파이, 홈시어터 등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
모방의 기준은 기존 스피커 통의 내부 부피와 동일하게 만든다는 것. 뜯어 내면서 스피커 내부의 공간의 크기와 구조를 트위터와 우퍼 간의 거리를 재고, 새로 만드는 스피커 통을 최대한 유사하게 만든다. 스피커 회사 엔지니어들의 분석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 내부 울림통의 크기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야매'다)
고음을 담당하는 트위터, 저음을 담당하는 우퍼, 고음과 저음을 분리해 주는 크로스오버,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의 인클로저 구조를 설계하고 스피커의 앞뒤는 자작합판의 옆면 라인이 무늬로 나오도록 한다.
다 만들고 나서 앰프에 연결해 본다. 그리고 음악을 선곡한다.
이번엔 소리가 마음에 든다. 뭔가 여전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냥' 좋다. 과거 시공간의 나와 만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같고 적당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준다.
음악을 전공하는 아들에게서도 "흠~ 괜찮은데?"라는 합격점을 받는다. 결국 아들방 오디오에 연결되었다.
여전히 스피커 인클로저(통)를 제대로 설계하는 법은 모른다. 잠깐 의욕을 내서 오디오 음향연구를 해볼까 고민하다 스스로 멈춰 세운다.
너무 가지 말자고... 그냥 내가 즐기기에 모자라지 않다면 거기서 만족하자고...
이젠 주제를 알라는 지천명(知天命)이 아닌가
주제를 알게 되서 이후에 "적당히" 만들어 본 스피커는 아래 사진과 같다. 지금보니 참 적당히(?) 만든 것 같다.
새로 만들거나 구입한 스피커를 체크하기 위한 나만의 음악이 생겼다. 미래에 이 음악을 들으면 스피커를 만든 "지금과 사람과 공간"이 느껴지리라 기대해 본다.
Ed Sheeran이 Andrea Bocelli의 집을 방문해, 두 사람이 같이 부른 "Perfect"다.
1절은 Ed Sheeran이 영어로, 2절은 Andrea Bocelli가 이탈리아어로 부르는데 이 음악을 2025년에 박제한다. 꼭 보첼리의 보컬까지 들어보시길...
좋은 것은 나누라고 배웠기에(^^) 이 영상을 나누고 싶다.
https://youtu.be/eiDiKwbGfIY?si=deVVKy5T4sRSpKEK
노래 가사의 끝은 "You look perfect tonight"으로 끝난다.
이 노래가 지금의 나에겐 'sound perfect tonigh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