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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Nov 27. 2024

삶의 의미를 묻는 그대에게

삶을 묻는 질문에 응답하는 글

"여러분은 왜 공부를 하나요?, 무슨 목표가 있어서?, 꼭 해야 하는 게 있어서? 왜 공부해야 하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제발 제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세요. <어느 학생의 하소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그대의 하소연을 읽고 답해 봅니다. 내 청소년기의 고민과 너무 닮아, 중년을 훨씬 지난 나도 그런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있어, 함께 고민하는 차원에서 응답해 봅니다.  

   

삶의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누가 나에게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하고 물으면 그 대답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지요.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아직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는 물론 살아가려는 의욕도 없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긴 날들이 되지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반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몸이 건강해도 자살을 시도하거나 곧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다.” 삶의 의미를 고민했던 빅터 프랭클의 말입니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 힘이 있으므로 일을 시작하고, 힘들어도 견디며 끝내 이겨냅니다. 그러기에 삶의 의미는 곧 우리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인간은 이야기하는[서사적] 존재’라고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각자가 주인공인, 하나의 이야기를 써 가는 거라는 말입니다. 훌륭한 삶에는 감동적인 서사가 있고, 감동적인 서사에 좋은 주제가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각자가 만든 삶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됩니다. 삶의 의미란 곧 내 이야기의 주제요 철학이 되는 셈이죠. 주제 없는 이야기가 공허하듯이 의미 없는 삶이란 속 빈 강정처럼 허무하기만 하지요.

      

그런데 이 삶의 의미를 대체 누가 찾아줄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나 사회가 찾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도 내려주지 않습니다. 각자의 탐색과 숙고 끝에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프랭클은 일의 성취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발견할 수도 있으며,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든 자기 삶의 의미는 자기가 찾는다는 것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빅터 프랭클이 제시한 방법을 제 식으로 풀고 덧붙여 소개합니다.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먼저, 성취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성취함으로써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 희열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 일은 나에게 삶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는 먼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에서 한 번 성취의 희열을 맛보아야 합니다. 한 번의 성취는 두 번, 세 번의 성취로 연결되고, 성취의 과정에 느끼는 희열의 순간순간이 곧 삶의 의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답니다. 독서나 영화 같은 간접 경험이든, 여행이나 직업 생활 같은 직접 경험이든 하다 보면 삶에서 ‘소중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지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의 순서’도 알게 되고.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충돌했을 때 중요한 일을 먼저 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한답니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이 우리 삶에 더 의미를 준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지요.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고통’을 겪게 되면 삶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찾게 됩니다. 본질적인 가치를 찾게 되면 그 어찌할 수 없는 일은 별일이 아니게 됩니다. 여기서 찾은 본질적인 가치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되지요.

    

사족을 붙이자면, 사색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요. 일상은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어요. 이때 해야 할 것이 그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깊은 사색을 통해 의도적으로 의미를 붙여 주는 거지요. 처음엔 억지춘향으로 여겨질 수 있어요. 하지만 사색이 깊을수록 그 의미도 깊어지고, 의미를 붙일수록 그 의미는 내 ‘삶의 의미’로 자리 잡게 되어 있어요. 모든 의미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찾은 삶의 의미는 대체로 진, 선, 미, 성의 가치로 귀결됩니다. 진은 ‘참된 앎’을 추구하는 삶의 뿌리요, 선은 ‘도덕적 당당함’을 지키는 삶의 줄기요, 미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여는 삶의 잎이며 꽃이요, 성은 '존재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의 열매입니다. 내가 찾은 삶의 의미가 이와 비슷하다면 제대로 도착한 것입니다.  

응답하고 보니 구체성이 좀 부족해 보이네요. 다음 글에서 좀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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