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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 Apr 12. 2023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창문 있는 집 찾아 삼만리

캐나다에 머문 지 4개월 정도, 어느 정도 캐나다에 적응한 상태였다. 사람이 참 웃기지, 적응하니까 또 다른 불만이 하나씩 보인다. 내가 3개월 동안 지낸 창문 없는 작은 내 방(창고). 갑자기 창문 있는 집에 살고 싶어졌다. 


캐나다는 건물이 예뻐서 그런가 시티뷰가 참 멋지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시티뷰를 감상하고 싶었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지는 노을을 감상하고 싶었다. 밤에서 낮으로,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을 오롯이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이 집에 머무는 3개월 동안 정도 들었고 룸메들과 어떤 트러블도 없었지만 단순히 창문이 있는 곳에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은 결국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자, 이제 또 발품을 팔 차례이다.


내가 있던 지역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그 인터넷 카페를 적극적으로 뒤지며 나의 새로운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정된 세 군데의 집. 

내가 찾는 집은 일단은 '솔라리움(베란다)'이었다. 방에서 살면 가장 좋겠지만, 같이 살 사람이 마땅치 않았고 혼자 살기엔 너무 비쌌다. 거실은 살아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독립적이고 적당한 가격에 창문이 있는 건 솔라리움뿐. 하루 날 잡고 세 군데의 집을 돌기로 했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주인. 집주인은 나에게 오늘 같이 집을 보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도착하면 집을 보자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걸어오는 한 여자분. 그 분과 나는 그 집을 다 훑어보고 나와 각자 헤어져 나는 두 번째 집으로 걸어갔다. 

이상했다, 뭐지. 두 번째 집 앞에서 또 만난 그 여자분. 집주인은 시간이 맞아 우리 둘을 같이 불렀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며 같이 방을 돌아보다 마지막 집 앞에서도 우리 둘이 만났을 때, 운명이다 느꼈다. 


본격적으로 벤치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그분은 막 한국에서 도착한 워홀러였으며 캐나다는 하나도 몰라 애를 쓰고 있던 중이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무작정 뱉은 말.

"우리 같이 살래요?"


일단 우리 둘이 같이 살면 '안방'에서 살 수 있었다. 안방의 가격은 보통 월 140만 원. 솔라리움 가격도 월 70-80만 원임을 감안하면 둘이 같이 사는 게 훨씬 이득인 것이다. 

그렇게 그 여자분과 나는 서로가 처음 보는 날, 같이 살기로 했다. 실천이 되었냐고? 글쎄.




그때는 3월 말이었다. 친구에게 한 집주인을 소개받아 그 사람 집을 보게 되었다. 그 집주인은 소문대로 싸가지가 바가지였지만 집이 정말 좋았다. 넓은 방, 깨끗한 침구, 방 안 화장실까지. 

그 집을 보자마자 나와 미래의 룸메는 디파짓(보증금)을 제출하고 하나하나 짐을 옮겨 두었다. 입주 날짜를 받아 놓고 기다리고 있던 중, 내 인생에 작지만 큰일이 일어난다. 


그때는 코로나가 캐나다에서도 점차 심해질 때라 동양인 혐오가 커지고 있었는데, 인종차별을 대낮에 꽤 심하게 당하게 된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나는 캐나다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새로 만난 룸메 분과 그렇게 이별했다.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이해해 주셨다. 그분의 보증금까지 내가 내려고 하니 그분은 그 집주인의 다른 방으로 가게 되어 보증금은 내 것만 떼이고 끝났다.

그렇게 나의 4번째 집은 잠 한 번 못 자보고 보증금만 날리고 끝나게 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한국 가는 게 어디 내 맘대로 되랴. 캐나다-한국 모든 노선이 취소되었고, 경유 비행기는 막혔으며, 경유지에서는 우리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집도 없고 한국도 못 가는 신세가 되어 급하게 마지막 5번째 집을 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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