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
⊙ 5월 9일 동선
숙소 →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 더 반 카페 → 체크포인트 찰리 → 블랙박스 냉전 박물관 → DM
→ 케밥 레스토랑 '테라스' → 라우쉬 초콜릿 → 리타 초콜릿 →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 브란덴부르크 토어
→ 아인슈타인 카페 → 암펠만 스토어 → 베를린 필하모니 → 포츠담 로컬 식당 → 숙소 복귀
브란덴부르크 토어
Brandenburger Thor
학교 다닐 때 내가 세계사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있던가?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여행 갔을 때보다 더 열심히 독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토어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없다.
어쩌면 배웠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고등학교 시절 사탐영역에 세계사 과목이 분명히 있었는데...
갑자기 성적이 궁금해져서 학생기록부까지 찾아봤다.
3학년 1, 2학기 교과에 <세계사Ⅰ>이 떡하니 적혀 있고, 성적은?
아~ 다행히 나쁘지 않다! 나름 열심히 살았군!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정보를 알아보다 보니
학생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여행'이란 게 단순히 시야만 넓혀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니~ 어찌 안 갈 수 있으랴?
기승전 '여행을 가고 싶다'로 연결이 되는 이유다.
브란덴부르크 토어
독일어로 '토어(Thor) = 도어(Door) = 문'이란 뜻이라고 한다.
스펠링만 보니까 '토르(Thor)'가 더 먼저 생각나기도 한다.
베를린뿐 아니라 독일의 랜드마크로도 불리는 이 문의 역사를 알아보니
아~ 가볍지 않다! 워낙 방대해서 베를린과 함께 해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프로이센 왕국 시대 (1788~1806)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작은 요새 도시였다.
1701년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되고,
베를린이 수도로 지정되면서
기존에 있던 요새 벽들을 허물고
새로운 18개의 성벽을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브란덴부르크 토어'로 불렸다.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토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1780년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베를린의 새로운 관문을 세우고자 했는데
그게 바로 브란덴부르크 토어 자리이다.
1788년 착공하여 1791년 3년 만에 완공한 이 문은
'평화의 문'이란 이름으로 건설해
문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과 사두마차를 조각했다.
이 여신의 조각에 대한 사료가 정확하지 않은데
어떤 자료에는
초반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에이레네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빅토리아로 바뀌었다고 하고
어떤 자료에는
처음부터 줄곧 조각은 빅토리아였고
상징의 의미만 평화에서 승리로 바뀌었다는 데도 있다.
분명한 건, 여신의 의미가 평화에서 승리로 바뀌었다는 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 문이 세워질 땐 분명히 '평화의 문'이었으나
시대의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 '승리'를 의미하게 된 건 맞는 거 같다.
나폴레옹 점령기 (1806~1814)
나는 브란덴부르크 토어의 첫 개선식 주인공이 나폴레옹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릴 적부터 전기문으로 읽고, 영웅으로 알고 있던 나폴레옹이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이 문은 프랑스 군대의 승리를 알리는 행렬의 입구가 되었고
프로이센 왕국에는 '굴욕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근대적 법과 행정체계'를 들여오면서
어떤 자들은 오히려 근대화의 계기가 됐다고 보는 흥미로운 포인트도 있었다.
지배한 침략자이자 원수지만,
그가 남긴 제도는 프로이센 왕국의 현대화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거다.
여기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나폴레옹이 프로이센 왕국을 점령하면서
브란덴부르크 토어의 여신 조각상을 떼어 파리로 가져갔다는 거다.
이 무거운 걸! 이 높이 있는 걸! 굳이 부수고 떼어서 가져간 게 대단할 따름이다.
물론, 이 시절에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증할 만한 게 필요하긴 했겠지만...
프랑스에 돌아갔을 때, 베를린에서 가져온 가장 상징적인 걸 보여주기 위함이 더 컸을까?
본국에서도 자신의 업적을 감상하기 위함이 더 컸을까?
어쨌든 본인이 직접 올라가서 떼지는 않았을 텐데...
군사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을 것 같다. 뗄 때도, 가져갈 때도...
나폴레옹 몰락 후 + 독일 민족주의 시대 (1814~1871)
이 여신 조각상은
애초에 프로이센 왕국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건 없었을 것 같다.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프로이센 군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다시 이 조각상을 되찾아왔다.
빼앗겼던 국가적 자존심을 되찾아온 거다.
이때부터 이 여신 조각상은 평화의 상징에서 '승리'의 상징이 되었고
민족의 부활을 상징하기 위해
기존에는 없었던 독수리와 참나무 잎으로 둘러싸인 철십자 깃발을 추가했다.
독수리는 프로이센 왕권과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이고
참나무 잎은 게르만 문화권에서는 용기와 불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십자 깃발은 181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제정한 군사 훈장인데
나폴레옹 정복에 맞선 독일인의 해방 전쟁을 상징하며
훗날, 독일군의 대표 문양이 되었다.
업그레이드 된 조각상은
독일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군사적 승리, 국가적 정체성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토어가 독일 민족주의, 권력, 상징의 뿌리처럼 박힌 시작이 아닐까?
나치 시대 (1933~1945)
나치 시대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히틀러 행진, 대규모 집회 등 당 홍보를 위한 선전용의 무대가 됐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에는 포탄, 총알이 박히는 큰 피해를 입었고
사두마차의 4마리의 말 조각상 중 3마리의 말 머리가 날아가게 된다.
이때 날아갔던 말 머리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냉전시대 (1945~1989)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된 베를린에서 브란덴부르크 토어는
간신히 형태가 살아남았고 어느 정도 복구도 했었다.
냉전 초반에는 이 문이 통로의 역할은 했지만
동서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문은 지날 수 없는 분단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서의 경계가 된 것이다.
경계 자체는 문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고
브란덴부르크 토어는 동독의 검문소였으나
사실상 이 문은 동서의 경계선과 다름 없었다.
독일 통일 이후 (1990~현재)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붕괴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장벽의 붕괴를 축하하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토어 앞으로 모여들었고
동독과 서독이 완전한 통합을 이루면서 이 문은 '자유와 통일'의 상징이 된다.
다시 '문'이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사두마차상은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브란덴부르크 문은 6백만 유로를 들여서 재복원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두마차상은 복원하면서 서독 방향을 바라봤다가
다시 동독 방향으로 바꿨다는 얘기도 있고
손가락 방향이 조각상을 가져갔던 프랑스를 향해 있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고 한다.
어떤 얘기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화 → 승리 → 분단 → 자유와 통일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이 문이 견뎌야 했던 상징들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니 얼마나 방대한 역사를 품은 문인가?
과거 동독이었던 방향에서 바라봤을 때와
서독 방향에서 바라본 브란덴부르크 토어의 모습이 다른데
확실히 앞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문은 앞뒤가 다른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현관문도 앞뒤가 다르고,
방문도 앞뒤가 다르고,
출입구가 마냥 같을 순 없는 거니까
모습이 어찌됐든 이 문은 브란덴부르크 토어이다.
브란덴부르크 토어는 독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았고
(물론 과거에도 랜드마크였지만)
문 앞의 광장은 국가의 중요 행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가 되었다.
베를린의 상징이라는 이 문 앞에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것만 봐도
이 문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우리나라에도 '문'이라는 역사적 의미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광장'이 어디인가 생각해보았는데
광화문 광장이 생각났다.
어떤 나라의 역사와 비교해도 고개 숙여지는 고단한 세월과
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갑자기 광화문의 역사를 이렇게 세밀하게 공부한 적이 있던가 싶은 마음이 든다.
서울의 사대문에 대한 역사를 이리도 깊이 공부한 적이 있던가?
국사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나라의 국사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번 주는 광화문 나들이를 한 번 가볼까?^^
※ 브란덴부르크 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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