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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uCHO Feb 16. 2024

제5화_회사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다

대기업 임원의 아름다운 퇴임과 부활 이야기


악몽 같았던 어제 하루를 보내고 예정되어 있던 당일 지방 출장을 떠났다. 나를 포함하여 부서 그룹장, 팀장, 담당 총 4명. 일행 중 그룹장만 나의 소식을 알고 있다.


출장 중 나와 그룹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말하고 행동하였다. 오는 월요일 내가 직접 부서원들에서 이야기하겠다는 약속을 그룹장이 지켜주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출장지에서 식사를 하던 중 그룹장이 잠시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돌아온 그룹장의 표정이 왠지 어둡고 심각해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그룹장이 잠시 보자고 하여 한쪽으로 갔다.

“전무님 소식이 회사에 알려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퇴임하는 A전무님이 부서원들에게 본인 이야기를 하면서 전무님 이야기도 같이 한 것 같습니다.”


대표이사에게 어렵게 요청한 2가지 중 하나가 무너졌다. 회사는 보안을 잘 지켜주었지만 다른 곳에서 구멍이 생겨 버렸다.


평소 A전무의 형태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A전무에게 어제 전화하여 보안을 요청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토요일인 내일이 휴일이지만 부서 리더 채널(텔레그램)에 나의 메시지를 올리겠습니다.”


나는 회사 생활 동안 동료 또는 후배 상관없이 웬만해서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 팀원이라도 나와 잦은 커뮤니케이션이 있지 않은 이상 존댓말을 한다. 상대방이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 또는 매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출장을 마치고 현지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부서 리더 채널’에 올릴 메시지를 고민하였다. 다음날 담백한 내용의 메시지를 올렸다. 구질구질하고 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2주간 주어진 나의 마무리 일정 첫날인 월요일, 아무 일 없는 듯 출근하였다. 일찍 출근해 있는 팀장들과 팀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평소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토요일 부서 리더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팀원들에게도 공유해 달라고 부탁한 효과일 것이다. 2주간 소프트랜딩 하려는 나의 희망을 그들도 함께 해 주려는 것이 아닐까. 고마울 따름이다.


소중한 2주 동안 일상적으로 근무를 하면서 나와 부서원들 모두 어색함은 없었다. 그 기간 저녁 시간에는 부서의 팀들과 순차적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마무리를 지어갔다.


내 자리에는 짐들이 많았다. 책상과 책장과 옷장에 들어 있는 짐들이 이제는 정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틈틈이 짐들을 정리하였다. 나는 짐 정리 시간을 한정하였다. 아침 이른 시간 또는 저녁 모임을 마치고 회사에 잠시 돌아올 수 있을 경우의 저녁 시간.


퇴임 임원이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떠날 때의 모습을 나는 보이기 싫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짐을 담은 박스를 후배가 들고 뒤따라 가는 살풍경한 장면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직원들에게 쓸쓸히 짐 정리하는 모습과 짐을 담은 박스가 떠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나의 예민한 성격이 아직도 남아 있나 보다.


30년 근무한 회사 생활의 마지막 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내 자리에서 보면 부서원들의 책상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입고 한발 앞으로 나서니 부서원들이 사무실 곳곳에 서 있다. 100명이 넘는 본사 근무 부서원 대부분이 모인 것 같다.


동료들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많은 배려를 해 준 회사에 대한 감사, 나와 같이 열정적으로 달려온 부서원들에 대한 고마움,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격려, 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응원을 부탁하며 마지막 인사말을 마무리하였다.


간혹 아쉬운 표정을 보이는 부서원들이 보였으나, 대부분의 부서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큰 박수를 나에게 보내 주었다.


박수를 받으면서 나는 당당히 퇴근하였다. 나의 짐 박스들은 이미 차로 모두 옮겨 두었기에 손에는 서류 가방 하나만을 든 채로 멋있게 퇴장하였다. 나의 희망 ‘아름다운 퇴장’이 이루어졌다.


그 주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각, 회사의 ‘全社(전사) 리더 채널(텔레그램)’에 마지막 인사 글을 올렸다.


그룹과 회사로부터 수많은 혜택과 배려를 받으면서 30년 달려왔습니다. 더욱이 대표님의 配慮(배려)로 지난 2주 동안 ‘쫓기지 않는 마무리’ · ‘아름다운 퇴임’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온 영광스러운 30년에 대한 저의 마음은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 끝부분에 주인공(황정민)이 아버지 影幀(영정)을 보고 이야기 한 대사로 대신하려 합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저의 의지만으로 될 수는 없겠지만, 회사에서 쌓아온 저의 역량을 새로운 곳에서 다시 꽃 피워 우리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시장에서 좋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표님과 모든 리더분들이 항상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몇 시간 후 ‘全社(전사) 리더 채널’에서 나오면서 회사와 공식적인 이별을 하였다.


새로운 임원 퇴임 문화를 선보였다는 뿌듯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다음 예정 글 : 제6화_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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