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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uCHO Feb 05. 2024

제3화_"왜 제가 나가야 합니까?" 말하고 싶지 않아

대기업 임원의 아름다운 퇴임과 부활 이야기


한 층 위에 있는 대표이사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상행 버튼을 눌렀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의 도착이 더디게 느껴진다.


위층에서 내린 후 깊은 심호흡을 하고 대표이사실로 담담히 걸어갔다. 대표이사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가는 걸음이라 마음의 동요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세탁을 마친 세탁기 속의 빨래들처럼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퇴장하자.’


몇 년 전 3월 초 인사 업무도 관장하는 부서장 시절, 오후 늦은 시각에 대표이사 비서의 연락이 왔다. “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재킷을 입고 위층의 사장실로 바로 달려갔다. 그 당시 대표이사는 ‘사장님’으로 호칭한 다른 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여느 때처럼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 않는다. 서있는 표정을 살펴보니 상당히 굳어 있다.


“3월 말일자로 B상무와 C상무, 해임이다.”

임원 인사는 매년 연말즈음에 정해지는데 무슨 말씀인지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그렇게 결정되었으니 후속 절차 진행해라.” 당황한 표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인사 업무도 관장하는 부서장이지만 '임원 인사'에 대해서는 대표이사에게 절대 질문하지 않았다. 대표이사의 고유 권한이자, 나 또한 그 대상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물어볼 수 없는 금기(禁忌) 사항.


다음 날 퇴근 시각 무렵 대표이사는 2명의 임원을 불러 해임을 통보하였다. 2명의 임원 모두 나와 친분이 두터운 임원이었는데 통보받은 이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행태를 보였다.


B상무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퇴임 임원이 보여온 무거운 표정의 침묵 모드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C상무는 달랐다. 통보받은 날 저녁 시각에 C상무는 나에게 전화하여 담담하게 이야기하였다.


“오늘 대표님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협조해 주어 고마웠고,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 갑시다.”


C상무의 전화는 나에게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멋지다!’

해임 통보라는 큰 쇼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에 현실을 흡수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귀감이었다.


2명의 상무는 자리를 정리하기까지 출근하는 며칠 동안에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B상무의 무거운 표정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유발하였고, C상무의 당당한 언행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나에게 저런 시기가 온다면 나도 C상무처럼 멋지게 마무리해야겠다!’


그때가 이제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대표이사실 앞에 있는 비서에게 눈짓을 하니 평소와 달리 무거운 표정과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을 한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마 비서도 어떤 내용인지 눈치채고 있으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세요. 전무님. 자리에 앉으시죠.”


대표이사실 중앙에는 직사각형 형태의 회의 테이블이 있다. 상석인 세로변에 의자 하나, 가로변 양쪽에 각각 의자 4개. 지금까지 내가 보고하러 갈 때마다 대표이사는 상석이 아닌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대표님. 상석에 앉으십시오. 제가 불편합니다.”라고 웃음 지어 말하면 대표이사는 상석으로 이동하여 앉았다.


오늘도 대표이사가 나의 맞은편에 앉으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석을 권하지 않은 것은 나의 내면에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불만의 표시 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올해 말로 전무님은 퇴임 …”

대표이사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차분하게 답하였다.


“아침에 비서 연락을 받고 예상하였습니다. 회사 경영자의 한 사람으로서 회사의 결정에 이의 없이 따르겠습니다. “


아침에 HR실장과 통화할 때도 대표이사의 통보를 받을 때에도 나는 묻지 않았다.


“성과가 좋은 제가 왜 나가야 합니까?”라고.


나는 부서의 리더 중 명예퇴직 대상자들에게 통보 면담을 매년 해왔다. 면담 때 대부분의 대상자들이 나에게 하는 첫 질문은 “왜 접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회사가 경영상 판단하여 당신으로 결정하였으니 당신이지!’


이 관점은 당연히 나에게도 적용된다. 왜냐고 물어본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질문이다.


대표이사가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 기여해 온 것들에 대하여 좋게 평가하는 이야기를 한다.


“전무님이 회사에 보여온 임원의 자질과 역량이 눈높이를 매우 높게 올려놓아서 남아 있는 임원들이 많이 긴장하고 근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요청드릴 사항이 2가지 있습니다.”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대표이사가 묻는다.


“뭔가요?”




다음 예정 글 : 제4화_도망치듯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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