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의 퇴임과 새 출발 이야기
도서관 출근과 퇴근 시각을 정해두고 보내는 일상은 회사 출퇴근하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생활 리듬도 계속 유지되고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도서관에 있다 보면 가끔씩 동병상련의 느낌이 드는 중년 남자들이 주초(週初)에 보였다. 무거운 표정의 그들은 주로 배낭을 소지하고 있으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동일인을 본 기억은 없다. 아마도 도서관에 나왔다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갔을 것이다.
도서관 책들 중 역사, 그중에서도 ‘세계사’ 도서를 주로 읽었다. AI가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창의성’과 ‘종합 사고력’, 이를 키우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나의 오랜 신념은 변함이 없다.
공감하며 읽은 책들 중에 ‘일이란 무엇인가?’(저자, 고동진)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역사서와 역사소설에서 얻는 지혜들은 제 삶과 직장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략) 우리가 역사를 통해 큰 흐름 안에서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일이 필요하듯, 회사와 관련된 일도 역사와 흐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역사서를 읽는다고 두툼하고 빽빽하게 인쇄된 무거운 책은 피했다. 그런 책들은 틀림없이 나를 졸음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만화로 되어 있는 책들을 읽었다.
• 먼나라 이웃나라
• 만화 로마사 1~2
•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중세Ⅰ~ Ⅲ
•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6
• (고우영) 십팔사략 1~10
만화로 되어 있다고 만만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주요 사건들과 인물명을 노트에 적어가면서 꼼꼼히 읽었다. 만화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세계사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였다.
노트에 기록한 국가별 주요 사건들을 엑셀로 옮겨 적었다. 정리한 기록을 횡으로 살펴보니 역사가 달리 보였다. ‘아! 이 사건이 다른 나라에도 이런 영향을 끼쳤구나!’
세계의 역사가 입체적으로 보이고 사고력이 향상되는 느낌이 들어 신선하고 기분이 좋았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도서관 출퇴근 시작 이후 3달 동안 책만 읽다 보니 슬슬 지겨워졌다. ‘책만 읽는 수동적인 활동 보다 능동적인 활동은 뭐 없을까?’
임원이 된 이후부터 온·오프라인 상의 회사 생활에 대한 공감하는 글들을 휴대폰 매모장에 계속 기록해 두었고, 틈틈이 후배 리더들에게 공유도 해 왔었다. 이 자료와 나의 회사 생활에 대한 경험을 글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쓰면 되지만 내 글들을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회사 후배가 떠올랐다. 그는 오래전부터 글을 집필해 왔고 출판까지 한 출간 작가이며, 지금은 전직(轉職)한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지요? (중략) 출판의 세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약속을 잡고 며칠 후 만났다. 작성한 글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안내해 주었다.
“전무님. ‘브런치 스토리’ 아시나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뭔가요?”
그를 통해 ‘브런치 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회사 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경험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도서관에서 오전에는 글쓰기, 오후에는 책 읽기 패턴을 만들어 갔다.
도서관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할 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게 되어 좋았다. 책을 읽는 두뇌 활동과 글을 쓰는 두뇌 활동이 다른 것 같았고, 나의 머리가 굳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 길을 안내해 준 후배분에게 감사드린다.
다음 예정 글 : 제9화_헤드헌터들은 왜 무성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