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나의 황무지를 간직해 준 후배에게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책 《돌 위에 새긴 생각》의 출발은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란 책이다.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는 명나라 사람 장호가 만든 책으로 그가 선정한 ‘맑은 글’과 ‘예술적인 전각’이 어우러져 있다. ‘한서를 이불로, 논어를 병풍으로 삼아’ 가난으로 인한 혹독한 겨울을 넘긴 조선의 학자 이덕무가《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를 보고 반해 그에 대한 풀이글을 써 책으로 남겼는데, 한문학자 정민이 이덕무가 풀이글을 덧댄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 다시 자신의 메모를 넣어 만든 책이 바로 《돌 위에 새긴 생각》이다.
《돌 위에 새긴 생각》을 통해 전각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작가 정민에 따르면 ‘전각은 서예와 조각, 회화와 구성을 포괄하는 종합예술’이다. 욕심 없고 글에 눈 밝은 중국 명나라 사람이 뽑은 글귀와 전각이 몇백 년의 시간을 거쳐 오늘 나의 손에 전해진 것을 생각하면 기이하고, 아득한 마음이 든다.
책에 나오는 독창적이면서 미적 감각을 지닌 전각 작품을 보면서 언젠가 전각을 배워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 나오는 전각 작품을 직접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노년 버킷 리스트에 ‘전각 배우기’가 추가되었다.
오래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목판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을 받으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이철수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자신의 집 담벼락에 벽화〈상생도〉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어 광고물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한 류연복 선생님이 가르치던 목판화 강좌에 참가하면서 판화의 매력을 조금 맛보았던 시절이다.
목판화 작품을 만드는 일은 참으로 복잡했다. 작품을 새길 나무를 구해 밑그림을 그리고, 목판에 거꾸로 그려 넣은 밑그림을 여러 조각도로 파낸 다음, 물감을 묻혀 한지에 찍어내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그 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재미있었다. 특히 목판에 그려진 밑그림을 뾰족하거나 둥근 조각도로 파내며 그림을 완성시켜 나갈 때는 세상 모든 일을 잊고 오직 목판 파는 일에만 몰입했다. 그 몰입은 행복하였다.
그 시절 그렇게 만든 목판화 작품(?)이 아직 두 점이나 세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전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만나 이제껏 인연을 이어오는 후배가 그 시절 내가 만든 목판화를 아직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후배에게 목판화 작품을 준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놀랍고 고마웠다.
그렇게 어설픈 작품을 후배는 나무 액자로 표구까지 하여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우는 듯한 목판화를 딸이 볼까 봐 집 한구석에 숨겨두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하여 이십 대 치기 어린 목판화 작품(?)은 다시 나의 수중에 들어왔다.
“BILLIE HOLIDAY_ AT JAZZ AT THE PHILHARMONIC”이란 타이틀이 붙은 CD는 1946년 카네기홀에서 이루어진 빌리 홀리데이의 라이브 공연을 담고 있다. 미국의 음악잡지 ‘Down Beat’는 이 앨범에 대해 “이보다 매력적인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없을 것이다”는 찬사를 보냈지만, CD에는 사랑을 잃은 여자의 상실감이 가득하며,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에는 깊은 슬픔과 탄식이 담겨 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외투와 선을 뽑은 전화기, 술병이 너저분한 한가운데 벌거벗은 여자가 침대에 기대어 있는 CD 쟈켓의 일러스트는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의 결을 잘 담고 있다. 찰리 파커, 빌리 홀리데이, 디지 길레스피 등의 재즈 앨범을 디자인 했던 데이비드 스톤 마틴이 재킷 일러스트를 디자인했다.
나는 빌리 할리데이 CD 쟈켓으로 쓰인 스톤 마틴의 일러스트를 저작권 허락 없이 마음대로 도용(!)하여 목판화를 만든 다음 작품 한 귀퉁이에 ‘내 마음의 황무지’란 제목을 써넣었다. 그 시절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황무지를 무사히 건너 이곳까지 도착했다. 이제는 푸릇하고 부드러운 잔디밭을 걸을 때가 많지만 그 오래전 건너온 나의 황무지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젊은 날 위험했던 나의 황무지. 그 시절 만났던 후배와 나는 깊고 향긋한 시간을 나누었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술을 털어 넣으며 함께 혼란스러웠던 젊음의 황무지를 건너왔다. 이제 함께 건너온 그 시간이 ‘세월에 제대로 몸을 담궈’ 깊어진 와인 향처럼 마음을 스친다.
그 시절 황무지 속에 함께 서 있던 사람을 이렇게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