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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 씨, 그리고 한 여름의 핫팩

by MJ

갑자기 도진 편도염을 3일 치 항생제로 겨우 진정시키고 혼자 떠난 여행길.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무릉 계곡 옆 조용한 숙소에서 낮에는 볕을 쬐고 밤에는 별을 보았다.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6월 말이었다. 방바닥에 보일러는 들어올 리 없고 민소매와 추리닝 바지만 달랑 입고 잠든 첫날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또 부었다, 젠장.


숙이 씨가 알면 또 잔소리를 한바탕 할 것이다.

무엇을 타고 가는지

기차 안이 춥지는 않은지

숙소는 외진 곳에 있지는 않은지

잠금장치는 있는지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어제부터 메신저 창에 날아드는 질문 겸 걱정들을 보며


뜨거운 물만 벌컥벌컥 마셔댔다. 괜히 왔나. 집에서 그냥 쉴걸. 햇볕에 달궈진 몸과 보온병 안의 물도 역부족인지 칼칼한 목이 낫지 않아 나는 가방 속 핫팩을 꺼냈다.


여름 되면 편의점에서 팔지도 않는다고 숙이 씨가 사서 한 박스 보내주었던 바로 그 핫팩이다. 에어컨 바람과 냉바닥을 면역력 저하의 근원이라 보는 숙이 씨에게 한여름에 무슨 핫팩이냐며 핀잔을 주었던 나. 혹시 몰라 가방 안에 슬그머니 하나 챙긴 대용량 핫팩을, 설마 하니 꺼내게 될 줄이야.



금세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핫팩을 가슴팍 위에 올려두고 얄부리한 이불을 덮는다. 저절로 몸을 웅크리게 된다. 심장부터 손끝까지 천천히 온기가 퍼지는 것이 느껴지며 까무룩 잠이 들았다 눈을 뜨니 목이 한결 낫다.


날 때부터 체력이 약하고 잔병레가 잦았던 나는 숙이 씨가 한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갈 일을 자주 만들었다. 손발도 차가워서 숙이 씨는 이따금 내 손이나 발(발은 왜...)을 가끔 덥석 잡고는 "와 이래 찹노!" 라며 나무라고는 했다. 나 보다 내 컨디션을 더 걱정하는 엄마, 숙이 씨 챙겨준 핫 팩 덕분에 오늘 밤은 무사히 보내겠군요.



이 말을 한다면 분명 "나시 입고 잤다꼬? 아이고 야야~" 라며 등때기를 찰싹 때리거나 의기양양히 "엄마 말이 맞제? 내가 여름에도 핫팩 필요하다고 했제?"라고 할 테니 숙이 씨에게는 암말 않겠다.


대신, 숙이 씨가 나에게 물려준 또 하나의 인생 꿀팁으로 간직하고 있겠다.


한 여름에도 핫팩은 필수다!









이미지 출처: @5.c.m.c.5(https://www.instagram.com/5.c.m.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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