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눈 떠보니 결혼식장이었다.'라고 하지만 숙이 씨야말로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결혼했다고 한다. 엄마 나이 꽃다운 20대 중반이었다. 여느 때처럼 장사를 나갔던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시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고, 큰 사고여서 임종까지 준비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이후 건강을 회복하심). 할머니는 맏딸이었던 엄마를 결혼도 '못' 시키고 갈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눈 감을 때 감더라도 너 결혼은 보고 가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엉겁결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숙이 씨. 그런데 웬걸, 얼마 전 들은 충격적인 말. "나도 니 아빠 사랑해서 결혼했다." 머리털 나고 들어본 말 중 가장 놀라운 이야기다. 그리고 날 찾아온 의문은 바로 이것. '사랑하는 데, 왜?'
대체 왜. 사랑으로 결혼한 사이도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구나. 물론 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끝난 건 아니다. 20대, 지금 생각하면 세상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사랑만으로 결혼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수십 년간 갈려가면서 그때의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물론 나는 숙이 씨와 나의 아빠, 두 사람을 모두 부모님으로서 모두 존중하고 사랑한다. 두 분 다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셨다. 그러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나도 안다.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왜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을까? 밥상이 날아가 방문을 부서트리고, 프린터기가 던져지고, 한밤 중 산길에서 거칠게 꺾어대는 핸들에 혹여나 지금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런 일들이. 왜 그밤들의 선득한 공포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내 가슴속에 또렷이 남아있을까.
생각하면 절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도대체 결혼은 왜 해가지고! 이렇게 나를 고생시키나!' 물론 숙이 씨도 그녀의 남편도 사랑 없이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던 두 사람의 신혼시절 사진을 보았으니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으로 결혼한다는 것, 사랑'만'으로 하는 결혼의 위험성을 나는 이제는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숙이 씨는 강했다. 메말라가는 결혼 생활 속에서도 숙이 씨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숙이 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런 숙이 씨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랐다.
내 삶에 스쳐갔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를 떠나거나 내가 떠났던 사람들이 알려준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 남았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누군가에게 버림받았을 때도, 끝내야만 하는 관계에 혼란스러울 때도 결국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할 수 있게 해준 숙이 씨에게, 강하게 버티어준 그녀에게 오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네가 좋으면 나는 다 좋다던, 그래도 사랑 없이 결혼하면 안 된다던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이 뭉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