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을 하고 첫 휴가, 숙이 씨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갔다. 패키지는 싫고 자유여행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계획은 다 내가 짜야했다. 숙이 씨가 사 온 스페인&포르투갈 가이드북을 토대로 열심히 계획을 짜 보았다. 첫 자유여행이라 숙소와 일일투어부터 기차, 비행기까지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준비가 끝나고 출국하는 날. 여행은 출발하는 날이 가장 즐겁다고 했던가, 첫 유럽여행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의 연속이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 얼마나 어둡고 불안했는지(곳곳의 노숙자와 잡상인), 도착한 숙소의 잠금장치를 보고는 얼마나 불안했던지(달칵 눌러 열고 닫는 잠금장치 하나뿐), 숙소 복도에서 하루에 한 번씩 바퀴벌레를 마주치며 얼마나 괴로웠던지(결국 방안에도 나옴), 한 밤중의 침입자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왜 이 숙소를 골랐을까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결정적으로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정말 더웠는데,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도착 바로 다음 날에 가우디 투어를 계획한 것은 나의 커다란 패착이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잠도 거의 못 자고 아침 일찍 시작한 투어에 머리 위로 강렬히 내리쬐는 햇살. 정오의 태양 아래 그 유명한 가우디 성당 앞에서 엄마가 서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왜 그렇게 부아가 치밀었던지! 그날 점심식사마저 바가지를 된통 써버린 탓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내가 엉뚱한 화살을 엄마에게 돌려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이 좋은 걸 보면서 졸면 어떻게 하냐며 언짢은 말을 내뱉었던 것이 아직도 미안하다.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음 여행을 같이 가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숙이 씨는 너나 잘하라고 했다. (내가 우리 집 공인 약골이긴 함.) 그 외에도 엄마랑 나, 엄마와 동생, 나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싸우고(뭐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광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움.) 가려고 했던 식당은 만석에다가, 가보고 싶었던 명소는 영업 종료! 내가 열불이 뻗쳤던 이유는 완벽하고 순조로운 여행을 숙이 씨에게 제공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다퉜던 첫 여행 이후로도 숙이 씨와는 1~2년에 한 번씩은 꼭 여행을 다녔다. 친구들은 어떻게 엄마와 여행을 가냐고, 한 번 가보고 대판 싸운 뒤로는 자신은 절대 안 간다고 놀라워했고 숙이 씨는 내가 그렇게 성질을 냈는데도 잊을만하면 또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고 했다. 나 또한 숙이 씨와의 여행을 거절하여도 않았고 때로는 내가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내 성질을 마음껏 내놓을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기 때문일까?)
그럼 엄마와의 여행은 점점 더 순탄해져 갔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먹을 것, 입는 옷, 잠자리부터 기상 시각까지 숙이 씨와 나는 맞는 부분보다는 안 맞는 부분이 더 많았고 여행을 통해 나는 숙이 씨에 대해 점점 더 자세히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 맞추고 갈리면서 알게 된 이른바 '부모님과 여행할 때의 꿀팁!' 이것들은 다음 편에 공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