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 중 하나는 "나도 네 아빠 사랑해서 결혼했다."였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놀라웠던지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뭐? 엉? 따위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없었다. 숙이 씨의 결혼 생활을 30여 년간 지켜봐 온 결과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증오와 분노, 서운함과 억울함이 켜켜이 쌓여 애정이란 것은 이미 다 메말라버린 것 같았던 토양이 사실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니.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 때는 타이타닉의 잭과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를 이상형으로 꼽던 나는 수십 년 동안 4D처럼 생생하게 숙이 씨의 결혼 생활을 지켜본 뒤에 어느 순간 사랑이란 그저 빛바래고 희미한 누군가의 몽상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
때문에 어느 순간 '결혼'은 나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동생과 농담조로 둘 중 하나는 효도해야 하지 않겠냐- 결혼은 네가 하라-며 서로 떠밀며 결혼은 NO를 외치던 때가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줄곧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외치고 다니며 어설픈 관계들을 맺고 그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았던 것이 지금은 깊은 후회로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 결혼하기 싫은 게 아니었구나.
동생과 농담조로 둘 중 하나는 효도해야 하지 않겠냐, 결혼은 네가 하라며 서로 떠밀던 말은 어떤 강력한 의지의 포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불행한 결혼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사랑과 애정에 기반한 관계가 어디까지 비틀리고 망가질 수 있는지 알아버린 나에게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혼하면 사랑이 사라진다.'는 말은 그냥 서글픈 '카더라'가 아니라 실제요, 역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생각했다.불행할 것이라 섣불리 단정 짓고 회피하지는 말아야지.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이겨내리라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혼은 하건 안 하건 내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할 것임은 확실하다. 나는 숙이 씨의 딸이니까. 숙이 씨가 사랑으로 이 세상에 내어준, 숙이 씨처럼 행복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