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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명상 – 나를 보는 걷기 2

2. 질투의 얼굴을 마주하다 – 기즉다원(忌則多怨)

걷기명상이 내게 가장 먼저 알려준 것들 중 하나는,
내가 그렇게 분노로 타오른 이유가 질투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했다면,
그건 그가 나보다 더 잘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싶었다면,
그건 그가 이룬 것이 나보다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덮으려 했지만,
내 말과 행동에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냉소적이었고, 공격적이었으며, 인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서는 그들을 향한 시기와 비교, 자기 비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기즉다원(忌則多怨)” – 시기심은 결국 원망이 되어 돌아온다.
질투는 내 안에서 자라나 다른 이에게 향하는 독이 되었고,
그 독은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는 칼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늘 그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있었다.
내가 공격적이었던 이유, 냉소적인 이유가 결국은 그들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고,
나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들의 빛이 내 안의 어둠을 비추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두려움은 방어를 불러온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법을 모르면,
남들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기보다는,
‘운이 좋은 거야’, ‘저런 건 다 껍데기야’라며 깎아내리게 된다.

그건 나의 가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인 방어기제였지만,
사실은 그 방패가 나 스스로를 가두는 고립의 벽이 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벽이 너무 답답해졌을 때,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명상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다.
그저 숨이 막히는 듯한 이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걷다 보니,
처음엔 가슴을 막고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질투, 시기, 불안, 비교…
그런 감정들이 걸음에 묻혀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쌓여 있던 먼지가 조금씩 털려 나가듯,
걸을수록 나는 그 감정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남들이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았을지,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왔을지,
그리고 내가 그들을 얼마나 몰랐는지를,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걷기, 그리고 또 걷기는
내 마음 속 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거기서 조금씩 바람이 들이치고,
낡은 감정들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이런 마음이 찾아왔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질투 대신 배움을, 공격 대신 존경을 선택해야 한다.’

그 순간, 질투는 더 이상 독이 아니라,
성장의 불씨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를 시기하는 감정이 꼭 나쁜 건 아니리라.
하지만, 그 감정이 왜 내 안에서 불편함을 일으키는지
솔직하게 자문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그 마주함이,
질투에 휘둘리는 나와, 질투를 통찰하는 나를 나누는
결정적인 갈림길이 된다.


걷기명상은 그 갈림길에서 조용히 나를 바른 길로 이끄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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