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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Sep 05. 2023

정당성이 필요해 - 1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다들 고민해 봤을 부분은, 바로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화가 자신을 위해 그린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서만 작업을 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완전히 모순이지요. 작업은 9할 이상 타인을 상정하고 진행되는 일이고,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니까요. 즉 화가가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스스로를 화가라고 칭하려면, 반드시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화가라면 어느 수준 이상이 되었을 때부터는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 나 자신이 즐겁고 싶다고 해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첫 시작, 동기는 당연히 그러할지언정 작업을 계속하려면 자기의 정당성을 고민하고 의심해야만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지를 철저히 따져 보는 일은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그야말로 ‘무용한 일’이라, 당위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감놀이에 불과해지니까요. 제가 앞에서 재미도 없는 재료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유도 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실험하고 공부하고 실패를 겪어 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재료를 선택해야 비로소 정당한 작업이 나오게 되거든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유채 물감을, 아주 두껍게 발라서 그림을 그립니다. 얀 반 에이크와 그의 형 후베르트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고 알려진 유화는 말 그대로 기름에 안료를 개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요즘에는 물감에 이미 기름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나오기에 추가로 기름을 쓰지 않아도 꾸덕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아무래도 효율적으로 섬세하게 칠하고 싶다면 기름을 묻혀 주는 것이 좋습니다.


 유화의 가장 큰 장점은, 수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마르고 나면 다시 위에 물감을 올리기가 매우 편리하거든요. 게다가 천천히 건조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닦아내고 덧칠을 하기도 수월합니다. 물론 투명도가 지나치게 높은 물감, 예를 들면 검은색, 울트라마린 블루, 번트 엄버 등의 색 위에 무작정 흰색을 올리면 나중에 균열이 잘 일어나기에 구분해서 색을 칠해야 한다는 등 주의할 점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만 조심하면 ‘감칠맛 나는’ 재료임에는 틀림없지요. 화가 본인이  필요하거나 실력이 올라감에 따라 이전 그림을 훨씬 섬세하게 보충할 수도 있고, 특유의 무거운 물성이 그림의 무게감 또한 보장해 주거든요.


 유화에 사용되는 기름은 참으로 많습니다. 린시드유, 뽀삐유, 홍화씨유 등은 느리게 마르는 건성유들로, 본재료로 많이 쓰입니다. 터펜타인, 석유정제유, 미네랄 스피릿 등은 빠르게 마르는 속건유들로 부재료로 쓰이지요. 정석대로 하자면 작업 단계를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어 건성유 비중을 점점 늘리고 속건유 비중을 점점 줄여야 합니다. 건성유, 특히 린시드유는 황변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나머지 기름들도 마르는 속도가 느려서 그림의 후반부에 많이 사용해야 작업을 계획성 있게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속건유는 너무 다량 사용하면 특유의 휘발성으로 인해 물감까지 갈라지게 만드니 나중에는 적게 써야 그림이 잘 보존된답니다.


 유채 물감을 닦아낼 때에는 보통 브러쉬 클리너라 불리는 기름 혹은 석유를 사용해서 닦는데, 섬유에 잘 스며드는 물감 특성상 완전히 지우기는 좀 힘이 듭니다. 그러니 유화 작업을 할 때에는 되도록 작업복을 입고 하거나 앞치마를 둘러 주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흡착력이 좋기에,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캔버스에 상당히 잘 달라붙어서 다채로운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물감을 여러 겹 썼을 때 붓질이나 도구를 이용하는 방향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뻗는 결들은 빛을 반사시키면서 그림에 자연스러운 반짝거림을 준답니다. 마지막에 바니시를 칠하면 빛반사를 조절할 수도 있고 보존성도 높아지지요. 젯소가 천을 코팅한다면, 바니시는 그림을 코팅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저에게도 유화를 시도할 정당성이 있어야 하겠지요. 물감의 특성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그것이 왜 제 작업에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한 재료라 선택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물성이 얼마나 그림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지요.


 저는 사람이 물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감이 화면에 달라붙어 있듯이, 우리 또한 여기 이 시공간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러해요. 고양이도, 침대도, 건물도, 비행기도, 심지어는 천체와 우주도 이곳을 지배하는 법칙 아래에 있답니다. 그 법칙은 이 세계가 현재의 모양새를 갖도록 만들었지요.


 또한 달라붙어 있는 각각의 존재들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서로를 매개하는 것이 중력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간에 어쨌든 모두 뒤엉켜 있는 것이지요. 각각 따로 떨어져 있어서 상호작용이 없다면 세상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 일은 불가능했을 터입니다. 이는 물리적인 부분에서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비슷하답니다.

 바로 그 지점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느끼는 세상과 그 안에 숨어 있는 힘들을요. 그러나 사람은 너무 많은 한계를 갖고 있어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온전히 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누구나 살면서 자기 눈앞에 무언가를 두게 되기 때문이지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경험과 사상, 신념 등 눈앞에 놓인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힘 대신 눈에 보이는 모습에만 더 천착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을 없앨 수만 있다면, 본다는 일의 본질로 돌아간다면, 눈앞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 일종의 ‘맨눈’이 된다면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맨눈이 되자마자 방금 전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세상은 순식간에 뭉개지고 뒤틀리면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해 버려요.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시대의 시야가 이와 비슷할 듯합니다.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훨씬 생생하지요. 야생에서는 소리 한 자락, 빛 한 줄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야 비로소 생존이 가능합니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한 현재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교감하려 했듯, 지금도 옆에 있는 사람 또는 사물과 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아주 중요하니까요.


 사실 실제로는 당연히 맨눈이 된다고 해서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으로 보이는 일은 없지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정신적인 측면이랍니다. 그림 그리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고, 저 역시 숨어 있는 것을 밖으로 최대한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대상이 가진 내적 힘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물감과 다름없는 존재들이 내적 힘을 매개로 뒤엉킨 상태를 표현해야 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유채 물감만을 사용합니다. 우당탕퉁탕 뒤죽박죽인 세상에 달라붙어 있는 존재들의 현재를 드러내기 위한 재료로 무겁고 꾸덕한 유채 물감 이외 다른 답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더구나 물감만을 사용해야 그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기타 재료들이 섞이면 자꾸 방해물이 끼어드는 느낌이 드니까요.




 저 스스로도 몇 년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얼마나 잘 정리되었는지, 얼마나 잘 전달될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100% 보여줄 수 있다면 저는 이미 사람이 아닐 것이에요. 그저 평생 동안 조금씩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래서 제가 작업을 그만두지를 못하나 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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