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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Nov 06. 2023

대관절 무엇이 좋은고 - 1

좋은 점들을 찾다 보면 더 좋아지겠지


그림을 그려서 나쁜 점들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좋은 부분이 훨씬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좋은 점이 더 많으니 계속할 수 있기도 하고요. 오늘은 회화를 하면서 경험한 좋은 점들을 죽 써 보려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측면들로 한정해서요. 내적인 이야기들은 좀 구석으로 밀어 두도록 합시다.




 첫째로는 취미가 딱히 필요없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인생에서 취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정신의학 분야 전문가들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취미란 모름지기 생계 등의 일과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을 하더라도 되도록 즐거운 방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기도, 여행을 다니기도, 언어 공부하기도, 게임하기도 전부 강박이나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재미를 위해 한다면 취미가 될 수 있겠지요. 일과에 시달린 자신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미래를 설계하기도 하면서 내 안에 숨은 면모 중 하나를 찾아 나가는 시간은 바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부분은 일과 취미의 경계선이 명확하다 보니 퇴근 후든 주말이든 짬을 내어 취미를 즐겨야 하기는 하지요.


 그림 그리기는 정말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아주 원초적인 행위임은 같아서, 마치 어렸을 때 혹은 인류의 초창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니까요. 또한 접근하기도 타 분야에 비해 쉽고, 재료만 있다면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일단 좋아해야 시도할 수 있는 일인 만큼 강한 집중력을 스스로 발휘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만사를 잊을 수 있으니 취미의 정의에 들어맞기도 하지요. 게다가 무엇을 그리든지 자기 마음이며 만족도 제 기준에 달려 있다는 점이 부담없는 즐거움을 줍니다. 무슨 정신 작용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히 신기해요.


 물론 미술이 직업이 된다면 당연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일관성과 방식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하고 결과물에 최소한의 사명감이나 책임감은 가져야 하지요. 유명해지더라도 명성에 걸맞은 작품을 내놓지 않으면 도태되기도 하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생계를 위한 직업과 같은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한 시간과 버는 돈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고 성과와 외적인 평가가 직결되지도 않으니까요. 자신을 찾고 받아들여 줄 사람 혹은 시대의 흐름이 없으면 존재조차 무의미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술가 한 사람이 사라지면 누군가 그 업무를 대신 맡아서 처리해야 집단의 구조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직업을 갖더라도 마치 평생 한 직급에만 머무르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숙련도는 갈수록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대체불가한 인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미술은 확실히 일과 취미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할밖에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취미를 따로 만들지 않음에도, 취미를 찾으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점점 그런 생각이 줄어들었다고 해야겠지요. 그림 그리기는 제게 일이기도 하지만 취미이기도 하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깨달았으니까요. 회화는 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무언가 꼭 찾아내야 한다는 적당한 선을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스스로가 이 분야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꾸준히 단련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취미라기에는 지나치게 거창하고, 일이라기에는 좀 헐렁한 회화를 하고 있는 덕에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다른 취미들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이것저것 도전하는 것보다는 해오던 것 하나를 계속 파들어가는 쪽이 저와 더 맞기에 아쉽지는 않아요. 언제쯤 회화가 즐거워지지 않을지는 모를 노릇입니다만, 그래도 그런 때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는 되도록 매일 작업을 합니다.




 둘째로는 역시 저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긴다는 점이겠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혼자 있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온전히 저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답니다. 저는 사람 만나는 일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결코 가지 않습니다. 그런 성격인지라 집에서 반경 100m 이상 떨어지면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작업실은 좋은 중간 기착지이자 쉼터가 되어 주지요.


 일단 집에서 나오는 일부터가 저로 하여금, 반사적으로 짜증이 솟구치도록 합니다. 고양이 뱃살 냄새나 맡으면서 빈둥거려야 하는데 대체 왜 내가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지 얼토당토않은 의문이 들면서 몹시 전전긍긍하게 되지요. 그렇다고 일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가 하면 또 그것은 아닙니다. 받더라도 직장인들보다야 당연히 스트레스가 적겠고요. 그냥 선천적으로 바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남과 마주치는 상태를 불편해하다 보니 외출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모양입니다. 인내심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기운이 탈탈 털리고 나면 단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놓이는데, 빨리 집으로 도망치기와 빨리 작업실로 도망치기랍니다. 기운이 정말 완전히 사라졌다면 별 수 없이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지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작업실로 가지요.


 신기하게도 작업실에 가면 기운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몰래 숨겨 둔 기운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충전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힘들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지요. 아마 혼자 조용히 제 스스로를 다스릴 충분한 시간이 있으며, 익숙지 않은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아예 사라져 버려서 몸도 마음도 안정을 되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들은 말이 없고, 저와는 거의 매일 마주한 나머지 관계라는 개념을 초월한 상태에 놓여 있으니까요. 작업할 때 새로운 방법들을 적용하더라도 결국 같은 공간, 적당한 시간 내에서 이루어지니 적응만 잘 된다면 더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라는데, 여기에는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제 자신만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지요.


 작업실에서 기운을 차리면, 집까지 돌아갈 정도의 힘은 남아 있게 됩니다. 이때 최단 거리, 최단 시간을 검색해서 재빨리 집에 돌아가면 된답니다. 비록 귀가 중에는 뭇사람들과 반드시 마주쳐야 하니 또 신경질적으로 변하지만, 어쨌든 잠시만 버티면 하루 일정은 끝나기에 마지막 한 조각의 기운까지 쥐어짜낼 수 있지요. 집으로 가기 위한 의지 역시 작업실에서 채워 넣는 듯합니다. 이처럼 작업실은 제게 사람들 사이의 소음과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 몸과 정신을 추스를 기회를 주는 공간이에요.




 셋째로는 제가 원하면 언제나 그려서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들어야겠습니다. 머릿속에만 있는 관념을 밖으로 꺼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손을 단련한다면, 최소한 아주 엉터리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게 되고요. 이왕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좀 예쁘고 부드럽게, 실제와 닮았지만 더 보기 좋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업을 할 때에야 엉망진창 와장창 그림을 그리는 것이 방향상 옳을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나 심심풀이 혹은 기분을 좋게 하고 싶을 때 그리는 그림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화가에게 작업의 9할은 타인을 상정한 채로 이루어집니다. 작품 내 시선의 방향, 호흡, 힘을 부여하고 빼는 부분, 색의 구성 등은 모두 관객이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볼지 예상을 해 보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즉 그림의 본질에는 소통이 포함되어 있지요. 하물며 직업으로서 그리는 그림에서도 소통을 전제로 하는데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타인에게 선물을 주거나, 혹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징표로 삼을 때에 그림이 사용된다면 마땅히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든 상관없이, 그런 경우들은 진심 어린 따뜻함 또는 당신을 이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애정 그리고 노고가 담겨 있는걸요. 그 소통의 방법이나 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기운을 낭비하지 않는 대화가 가능하겠지요.


 화가는 이토록 아름다운 소통이 가능한 매체인 그림을, 더구나 사람들이 보관하거나 접근하기도 쉬운 그림을 언제든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좋습니다. 그림은 장롱 구석에 처박혀 잊혔더라도 나중에 다시 꺼내 보면 가슴이 아련해질 선물, 제 손이 위에서 한 번 두 번 진실되게 움직였음을 아주 여실히 보여주는 선물이 되니까요. 그림을 받으면 아마 평생 그림을 그려 준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와 생각이 잘 맞지 않을 때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머릿속을 보여 주면, 자칫 말로는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큰 갈등 없이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되고요. 심리치료에 미술이 이용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요.




 화가라고 하면, 무언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겠다 하고 신기하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과연 세간에서 나오는 평가들과 실제의 모습이 잘 맞아떨어지는 직업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고요. 제 스스로도 능력에 대해 얼마큼의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확신이 없습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자유로움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고, 표현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습니다. 좀 더 인생이 따뜻해진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인생이 따뜻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화가는 계속 독특한 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평생 해나갈 수만 있다면 부각되는 좋은 점들이 갈수록 많아질 터이고요. 어차피 무슨 일이든 직업이 되면 이전보다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만큼 당연히 심심풀이로 해볼 때에 비해 나쁜 측면들이 더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되도록 좋은 점들을 상기하려고 노력하고, 앞으로 제 인생에 남은 긴 시간들 안에는 그림을 그려서 좋은 점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도 더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점들을 정리해 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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