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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Oct 30. 2023

마음대로 장르명 붙이기

AMBIGUOUS MYTHOLOGICAL PUNK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사조와 재료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만, 결국 이것도 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은 좀 제쳐 두고, 제 작업의 장르에 보이는 그대로의 이름을 붙여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감상자가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현재의 작업 방식이 가진 특징들을 살피고 그에 맞는 이름들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미 사용이 된 이름들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자니 골라내기가 힘들더군요. 그런가 하면 원래 알고 있는 단어 뜻과 동떨어져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서, 고민을 하면 할수록 선택하기가 몹시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대충 말이 되고 멋있어 보이면 갖다 붙이기로 했지요.




 일단 제 작업은 사람이고 사물이고 죄다 뭉개져 있기는 하지만,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나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비례가 잘 맞거나 묘사가 세심하게 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지요. 물감은 두껍게 쌓여서 찌꺼기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고, 대상이 원래 가지고 있는 색들과는 하등 관련없는 색들이 화면을 채웁니다. 그래도 캔버스에서 흘러내릴 정도로 물감 두께가 엄청난 것은 아니며, 색들 간에 각각의 대상들이 구분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는 가지고 있답니다. 또한 요즘에는 그림 크기가 커져서 자연과 실외의 풍경들이 그림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대체 어떤 공간을 어디에서 보고 그린 것인지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근법이나 투시는 난장판입니다. 하지만 무슨 풍경을 그리고 싶었는지는 대강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단서들은 또 주어져 있지요.


 양 극단을 오가면서 작업하는 일은 아무래도 저와 맞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제 작업의 요소들은 물감을 사용하는 방법 빼고는 전부 다 애매합니다. 완전히 망치는 일도 불편하고, 세심하게 하나하나 정리하는 일도 불편하지요.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는 하는데 그런 일은 저보다 더 잘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망치는 일과 정리하는 일을 둘 다 해 놓았기에 이제 와서 제가 그러한다고 어떤 의미를 가질 수도 없고요. 조형요소들이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에 있는 상태, 애매하고 어중간한 상태가 제 작업의 특징 중 하나이겠어요.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소재로는 아주 익숙하고 고전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 자연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공물 등이 등장하고 가끔 고양이가 나오는 정도이지요. 하지만 익숙해진 사람 혹은 사물들일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새로움을 숨기고 있답니다. 고전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늘 다른 시사점들을 던져 주니까요. 이는 익숙한 가운데 느껴지는 낯섦이라든지, 생경함이라든지 하는 종류의 표현 혹은 단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해석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단순히 다르게 본다는 일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소재와 재료의 새로움은 없을지언정 무언가 저만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만족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일상 안에 숨은 힘을 어떻게 더 끌어낼지 생각하다가, 이전에 거인 신화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공부했던 은유들을 대입해 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한국 신화는 비록 명맥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조각나 있지만 그런 만큼 활용하기에도 편하거든요. 게다가 거인 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들 역시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과거 사람들이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현재의 작업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지요. 신화도 소재로서는 말할 수 없이 고전적이지만, 미술을 포함한 예술 장르들에서 수없이 변주되고 있는 상황이니 저도 한 번 시도해 보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신화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가져온 이미지라면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즉 제 작업은 점점 일상에 환상과 신화가 스며드는 방향으로 변해 가는 중입니다.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일상 자체가 신화가 되어버리는 형태로 바뀔 수도 있겠고요.


 마술적 사실주의와는 좀 차이가 있더군요.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에, 혹은 적어도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상황에 마술적인 내용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있어야 하지만 저는 작업 방식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를 추구하니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제 그림 같다면 아마 지브리 스튜디오는 진작 망했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공간이 제 그림 같다면 아마 그는 재즈 카페 사장으로 늙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그처럼 설정에 맞게 확실히 묘사하면서도 자기만의 환상을 첨가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능력입니다. 저에게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필요한 능력은 없지만, 다른 쪽으로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는 사람이 없기는 합니다. 정말 저만의 조형언어를 사용해서 무언가 다른 능력을 통해 작업을 하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조잡해서 아무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진심으로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확실한 점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세라고 여겨지는 방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지요. 쑥스러운 일입니다만, 저는 사실 올해만 공모전 3개를 썼는데 전부 떨어졌습니다. 요즘 말로 싹 광탈이었답니다.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니 이것 참 기분이 좋지 못하더군요.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다들 한 번쯤 들어 본 공간에서의 공모전이라 잘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긴 했지만요. 저보다 더 경험도 많고 작품성도 높은 사람들이 선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지요.


 그런데 투덜거리고 있는 제게 동거인이 해준 말이 참으로 걸작이었습니다. 동거인은 우선 이전에 어떤 작업들이 선정되었는지를 좀 보자더군요. 그래서 죽 보여 주었더니, 설마 이런 작업들이 선정된 것을 모르고 지원했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당연히 알았다고 답했더니 대체 왜 여기에 지원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면서, 지금 상황은 ‘전국노래자랑에서 데스 메탈을 불러 제낀 형국’이라고 촌평을 날렸더랍니다. 비유가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둘이서 낄낄대고 난 다음 이번에는 제가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지요. 그러자 예쁘지도 않고, 요즘 미술가들이 자주 선택하는 개념과도 거리가 멀고, 현학적인 소리를 늘어놓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은둔에 가깝게 그림만 그렸던 시간들 때문에 경력도 거의 없는데 주류에 속한 공모전들에서 과연 뽑아 주겠느냐는 말을 하더군요.


 제 작업의 질을 끌어올리려다 보니 몇 년 동안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제 불찰입니다. 아무도 따라가지 않는 방향으로 꾸역꾸역 작업하는 일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그 결과물을 주류와 섞이게 만들려고 했던 것 역시 제 불찰이더군요. 전국노래자랑을 한다고 모여드신 어르신들 앞에서 그르렁거리면서 굉음을 내는 노래를 하면 다들 이것이 무슨 패악질이냐고 들고 일어나시겠지요. 아무튼 이번 기회에 작업의 질이 좋든 나쁘든 저는 비주류라는 점을 확실하게 깨달았고, 제 작업을 보여줄 곳들은 따로 있을 터이니 그 공간들을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답니다.


 동거인과는 우스갯소리로, 아직 대한민국 미술계가 저를 받아들이기에는 그릇이 작다며 다시 한 번 큭큭거렸습니다. 여러모로 작업이 펑크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꼭 머리를 뿔처럼 세우고 일부러라도 극단적인 일탈을 자행해야 펑크인가요. 망침과 정리됨의 사이 어디쯤에 적당히 걸쳐 있더라도 남들이 안 하는 것을 기꺼이 하면 그것이 펑크이지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비주류로 남을 예정이라면 확실하게 비주류의 길을 이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저 나중까지도 제 작업이 너무 질이 낮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즉 어중간함, 신화적, 비주류가 앞으로의 제 작업의 장르명을 구성할 수 있는 특징들이 되겠군요. 한국어로 셋을 합치기에는 좀 어색하니 부득이하게 영어를 사용해서, ’앰비규어스 미솔로지컬 펑크‘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영어로 써 놓고 보니까 굉장히 있어 보이는군요. 나중에 누가 제 그림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일단 저 말부터 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회화 등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재미라도 챙겨야 하는 듯합니다. 어차피 아주 유명한 작품이 아닌 이상 현재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 혹은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자신의 작품을 보아 주니까요. 또한 평생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까지도 작업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단어를 찾는 일도 필요할 터입니다. 여러모로 잠시 작업에 대해 골치아픈 생각들은 접어 두고 어떻게 하면 허세로 가득 찬 장르명을 지을까만 고민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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