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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Nov 13. 2023

대관절 무엇이 좋은고 - 2

좋아하지 않는데 할 이유가 없지


 넷째로는 삶의 가치관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말해야겠습니다. 미술을 하게 되면 사람들 하나하나의 가치관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장르를 회화로 한정한다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같은 재료를 쓴다 해도 나오는 결과물은 하나도 같은 경우가 없으니까요. 아우라나 독창성 등의 개념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인생과 몸을 활용하는 과정, 그 안에서 빚어진 자기만의 접근법이 모든 작품을 그만의 가치가 있게 합니다. 그림을 그리면 가치관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화가들과 작품들 그리고 삶의 모습들을 접하면서 그들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게 된다는 데에 있지요. 타인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기회를 좀 더 자주 얻게 되는 것이랍니다.


 질적으로 좋은 작업과 좋지 못한 작업을 나눌 수는 있을지언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들에는 그런 기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들의 존재 자체는 기본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처럼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만들어낸 작품들이 전부 그만의 가치가 있듯,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내면에도 저마다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지요. 더구나 화가로서 살다 보면 일반적으로는 마주치기가 어려운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깁니다. 좁게는 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부터 넓게는 저와 완전히 다른 삶의 궤도를 타 온 사람들까지요. 그리고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아가 강하고 비교적 거리낌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미술 이외의 분야에서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거나 심지어 숨기기까지 해야 하는 부분을 알게 되는 때가 있답니다. 그런 이들과 대화를 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 확실히 세상에는 인구 수만큼의 가치관이 있지만 모두가 각자의 내면을 드러낼 기회를 갖지는 못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또한 비록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그림을 그림으로써 저와 타인의 내면 사이에 공유되는 부분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림은 곧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이전에 말씀드렸는데, 나와 다른 삶의 방법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일이라는 점도 그 연결고리에 포함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적은 수의 가치관들만을 경험하고 그들이 삶의 전부라 여기는 경우보다 당연히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겠지요. 솔직히 말해 저 역시도 그림을 시작한 초반에는 편견에 찌들어 있었답니다. 누군가의 입장을 접할 때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유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잘 모르는 일에도 함부로 판단을 해 버리거나, 상대에게서 비판이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했지요. 그러나 그림을 통해 제 앞에 놓인 방해물들을 조금씩 걷어 나가다 보니 한층 여유로워지고, 비판할 일이 있더라도 항상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일 때 기분이 덜 상하게 되었답니다. 좀 지나쳐서 작업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적어도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게 되었으니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 무슨 말이든 일단 들어 보고 생각한 후에 말하는 일, 타인의 가치관도 내 가치관만큼 소중함을 받아들이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림은 앞으로도 계속 그릴 터이니 저도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제가 제대로만 나아간다는 전제 하에, 나중에는 공자님이 말씀하셨던 ’이순‘의 경지를 체험할 여지를 약간이나마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는, 확실히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있으니 나름의 미적 감각과 기준이 생기기는 한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어쨌든 삶이 좀 더 예뻐진다고나 할까요. 이는 그날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옷을 잘 맞춰 입는다거나, 방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아름답게 꾸민다거나 하는 일들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제가 말하는 미적 감각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변화하면서 독자적인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랍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보기 좋은 미가 아니라,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전부 들어가 있는 미를 찾는 기준이지요.


 보통 미술 전공자들이 옷도, 자기 공간도 잘 다스리는 편입니다만 저는 정반대입니다. 패션 센스는 최악이라 늘 동거인과 함께 옷을 사야 하고, 인테리어에는 애초에 별 관심도 없어서 전부 동거인에게 맡겨 버리지요. 작업실도 처음 이사를 했을 때의 상태 그대로 사용중입니다. 심지어 작업하는 도구들도 꼼꼼히 닦아 놓기보다는 물감이 묻어 굳은 채로 내버려 두는 편이고요. 세심하게 공간을 배분해서 정리하는 일은 저와 맞지 않아요. 집과 옷은 깔끔하면 그만이며 작업실은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족하지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부분이, 제 미적 감각이 발휘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결국 그러다 보면 저에게 딱 맞는 것들만 남을 것이고, 그 상태가 저를 정의하게 될 터이니까요. 지나치게 지저분하지는 않으면서도 적당히 깔끔한 모습이 저는 좋습니다. 그래서 그림도 어중간한 지점까지만 색과 형상을 망가뜨리는 모양인데, 이러한 ‘앰비규어스’가 곧 제 자신인 것을 어찌하나요.


 삶과 그림에 대한 태도의 대략적인 윤곽을 갖추는 데에 10년 정도의 세월을 소비했으니 꽤 오랜 시간을 들였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것들을 볼 때에도 독자적인 태도가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좋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누군가의 미적 성향을 보여줄 수 있지만, 자기만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흔적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당연히 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것들은 넘치지만, 죽어도 그것들이 제 취향에 들어맞게 할 수는 없었지요. 단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에 들이는 시간이 길다거나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끊임없이 뒤돌아본 경험이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답니다. 독창성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보다는 무엇이 되었든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능력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미적 감각이나 기준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요. 누군가에게는 제 작업도, 삶의 방식도 형편없을걸요. 하지만 그 사람만이 쌓아 온 삶의 태도에 제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딴지를 걸겠습니까. 얼토당토않은 소리는 그저 흘려 넘기고, 올바른 소리는 경청해야겠지요. 삶이 예뻐진다는 말은 제가 만든 스스로의 감각과 기준을 바탕으로 손에 넣은 것들에 만족하게 되고, 자신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랍니다. 일시적인 유행이나 통념에 흔들리지 않고 오랫동안 조금씩 발전하면서, 제 내면과 맞는 방향을 택하게 될 때 삶은 예쁜 모습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마지막으로는, 만일 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는 점이 떠오르는군요. 당연히 별 일이 없다면야 평생 그림을 그리겠지만, 만에 하나 더 적성에 맞거나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쪽으로 제 삶이 흘러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림을 그렸던 오랜 경험은 분명히 제게 지금까지 수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앞으로 당분간은 더 그럴 것 같습니다. 또한 인생의 중반부와 후반부에 제가 무엇을 하고 있든 그림들이 제 곁에 남아 있을 테니, 이전의 추억들을 실시간으로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고요.


 글을 쓰는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장면을 상상하거나 전체적인 구조를 짜고, 상황에 맞게 문장을 만들고 단어를 선택하는 것 모두 작업 중의 행위들과 연결할 수 있지요.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대상들의 크기를 정하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힘을 뺄지를 계속 고민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니까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 시험을 대비하는 일도 다 같습니다. 필요한 자료 준비, 재료 준비, 학업계획이 있어야 강의와 요리 그리고 공부가 가능하다는 원리가 명확하지요. 우주의 원리가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봅니다.


 이전에는 귀찮다고 행하지 않고 어렵다고 피했던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기본기 수련과 같은 일들이 그 예이지요. 하지만 어떤 일도 피해서만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혀야 해결이 되는 법. 사소한 하나를 허투루 했다가는 결국 결말에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사람이 참으로 간교한 동물인 것이, 그런 빈틈을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확신으로 무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능이나 인품이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식으로 단정짓게 될 가능성도 크고요. 그런 허무맹랑한 위험을 줄이고 자신의 내면을 보다 잘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일이 제게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았고 많으며 앞으로도 많을 것인지 알게 되었고, 그들과 경쟁하려면 웬만한 각오나 실력으로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요. 무슨 일 앞에 서도 그런 마음가짐을 떠올려 본다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터이니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겠지요.


 언젠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제 자신을 상상해 보려고 해도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또한 후회 없이 그림그리기를 끝낼 수 있을 때가 온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러기는 어려울 터이고 어떻게든 이어 가려고 발버둥을 치겠지요. 20대 후반 이후로 제 인생에 다시 한 번 구질구질함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서 새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인정하게 될 시점에는, 새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엇을 해도 잘 살겠다는 자신감이 더 크기를 바랍니다. 아마 생각보다는 괜찮을 거예요.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좋은 일들을 조금씩 써 보고 나니 제가 왜 여기에 꽂혔는지를 정확히 알겠군요. 대단한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서 그림을 시작했는가 했더니, 실제로는 그냥 이것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것인가 봅니다. 잘 된다면 대박이겠고, 안 된다면 쪽박밖에 더 차겠습니까. 설령 쪽박 찰 때 차더라도, 우선은 최선을 다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림과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우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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