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도 나도 오랜 직장인이었다.
언니는 20년 이상, 나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함께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다. 월급쟁이에 한계를 느꼈던 시기가 비슷했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각인되어있던 가족 구성원마다의 색깔이 있을 터인데, 가족 대소사를 논할 때 보았던 내가 알던 둘째 언니란 사람의 색채는 온 데 간데없고, 동업자가 되니 다른 모습의 언니가 보였다. 이 집의 아들이나 다름없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란, 무뚝뚝하지만 성격 좋은, 둥글둥글해서 이래도 흥~저래도 흥~ 하던 내가 알던 언니가 다른 색채를 지닌 사람이 되어 내 곁에 서 있는 것이었다. 언니 역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은 당연한 것일 테다.(알아봐야 마음만 다칠 터이니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자.)
성격 좋기로 인정받던 언니가 손님들의 과도한 요구에 나보다 빨리 한계를 느꼈고, 주문도 없이 하릴없이 카페를 지키는데 다른 카페의 커피들이 눈앞에서 많이 보일 때면 기운 빠지게 되는 시간이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왔다.
"우리 자매님 화가 많아요..."
우스개 소리로 상한 기분을 달래도 보지만, 저조한 매출이 겹쳐져 여유가 없어진 마음을 어쩌지는 못했다.
오픈 당시 본사와 입점 건물에서 장담했던 매출이 나오지 않았던 때에도, 코로나로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볼 때에도, 내 상처만 다독이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본사에 너무 화가 나지만 언니도 나도 같이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참았고
건물주에도 화가 났지만 얼굴 붉히며 싸울 수 없으니 언니를 다독여야 할 것 같았다.
언니도 나 때문에 화를 참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화를 못 이겨 본사에 연락해 따지고 들 때면, "안 되는 일에 기운 버리지 마."하고 나를 다독였고
왜소해서, 어려 보여서 만만하게 대하는 손님들이 있을 때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주곤 했다.
언니는 체력 약한 나를 배려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말없이 하고, 매일같이 나보다 일찍 출근해 오픈 준비를 하고, 마치 든든한 오빠 마냥 지원군처럼 버팀목처럼 함께하고 있다.(가끔 출몰하는 벌레도 때려잡아준다. 사랑해요 자매님.)
언니가 아닌, 단순한 동업이었다면 수많은 계산이 얽히고설켜 있을 수 도 없는 배려와 양보일 것이다.
카페가 어려워지니 혼자 운영할 때 보다도 서로의 눈치를 살펴야 했지만 둘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지금도 버티게 할 수 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최저임금이 목표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며 함께 낄낄 거릴 수 있는 언니가 함께하기에 지금을 견뎌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동업으로 카페 하는 거 힘들지 않아? 가족이라도 쉽지 않다던데?"
동업 절대 하지 마.
언니, 동생이니까 할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