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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Nov 18.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 (8)

     엄마의 홀로 살기와 어른 노릇

고령의 노인이 혼자 생활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어렵지만 어머니는 앞으로도 화장실에 혼자 갈 수만 있으면 혼자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하신다. 어머니가 지금만 같다면 비록 옛날처럼 자유롭게 걷지는 못하지만 혼자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긴 하다.

방문 요양 보호사가 먹거리를 장 봐오고 간단한 반찬과 청소를 책임져 준다. 세탁기 돌리는 건 스스로 다 하시고 각종 공과금은 자동이체로 처리한다. 목욕도 남의 도움이 거의 필요없이 스스로 하신다. 비상 사태가 발생할 때 누를 119에 연결된 기계도 시에서 설치해 주어서 머리맡에 두고 계신다. 머리 맡 서랍에는 매일 드시는 약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품들이 찾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된 채 보관되어 있다.


솔직히 나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손 닿기 쉽게 제 자리를 찾아 정리해 놓고 살고 계신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기억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년 동안 어머니의 생활은 단순하면서 질서 있고 규칙적인 틀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가끔씩 한국에 와서 보던 어머니는 밭일에만 재미가 붙어서 집안은 거의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었는데, 어머니의 밭에서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집안이 질서를 찾아간 모양이다. 물론 작년부터 오는 요양보호사님의 도움도 큰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는 충분히 혼자 생활하실 만 하다는 것이다. 물론 장보기 같은 도움이 일정 정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혼자 생활할 수 있다는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어머니가 자신의 생활의 주도권을 아직도 꽉 틀어쥐고 놓지 않고 계신다는 점이다. 얼마 전 어머니의 구순 생신날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식당에 모인 적이 있다. 막내 사위가 어머니와 나를 태우고 식당으로 갔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 내려 승강기 쪽으로 걷는데 어머니가 뒤를 돌아 보며 주차장 자리 번호를 읽으셨다.

   “B동 1층 4호구만”

B-1/4라고 적힌 번호를 읽으신 것이다. 나는 속으로 엄청 뜨끔했다.

어머니 보다 훨씬 팔팔하고 젊지만 나는 딸이나 아들과 어딜 가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지 차를 어디 세웠나 기억해 두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그저 자식들을 따라다니는 편안함에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으셨구나 하는 일종의 충격이 나를 때렸다.


올해는 몇 십 년 만에 어머니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추석을 치렀다. 아버지가 기독교인으로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의 뜻대로 조상님께 드리는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대신 할머니를 찾아 올 손주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추전과 김치전만 추석 전날 큰 며느리가 와서 함께 부치고 몇가지 음식은 막내 딸이 준비해가지고 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인사 드리러 올 후손들에게 줄 과일을 집에 들어 온 광고 전단지를 보며 몇일에 무슨 과일을 얼마만큼 살 건지 표시를 해 단골 슈퍼에 전화로 주문을 하거나  그 밖의 것들은 요양 보호사에게 부탁했다. 자식들에게 나눠 줄 파김치와 나물 볶음, 건 나물 등도 미리 준비하셨다. 부엌에서 나물을 볶고 상을 차리는 나를 감독하며 누구 오면 줄 게 남았나? 뭐가 모자라지는 않나? 뭐는 누구가 좋아하니 꼭 남겨놓아라… 끊임 없이 묻고 당부하셨다. 어머니는 여전히 집안의 주인이고 뒷방 노인네가 아니었다. 큰 딸이 와있어도 그 딸은 그저 도움을 주는 존재일 뿐 접대는 오로지 어머니의 책임이다.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과 딸들이 편리한 시간에 손자들과 함께 와서 어머니와 한끼 식사를 하고 잠깐 얘기를 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추석날 하루가 지나갔다.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벙긋이 웃으며 바닥에 눕는다.


    “하이고 힘들다. 인제 쫌 누어야겠다. 아이고고~

     어른 노릇하기 힘~들다.”


며칠 전부터 무슨 과일을 살까, 무슨 나물을 볶을까, 당일 아침부터 목욕하고 머리 곱게 빗어 단장하고 무슨 옷을 입을까 내 의견을 구하던 어머니의 모든 노력이 어머니의 어른 노릇이었던가.


어머니를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흥분시켰던 것이 보고싶은 손주들이 찾아온다는 기대와 기쁨 못지 않게 내 집에 찾아 온 손님들을 몸이 불편하고 넉넉치 못한 형편이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던가.

한 없이 허약해진 어머니의 몸 속에서 여전히 기둥처럼 어머니를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 한마디 말이었다.

어머니의 길~었던 추석 명절이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우면서 내는 어머니의 만족스런 신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틀 전 새벽에 걸려온 전화벨 소리. 작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이다.

어머니 보다 다섯살이 적으니 올해 85세이신데 뇌출혈로 쓰러져 급히 뇌에 고인 혈액을 뽑아내는 수술을 하였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즉각 아들과 딸 들에게 전화를 하셨다. 부조는 얼마씩 할 건지 묻고 적당한 금액을 지시하셨다. 장례식장이 있는 전주에 내려가면 연로하신 고모 할머니를 꼭 뵙고 오라는 당부도 하신다. 작은 아버지의 외아들인 상주에게 전화로 당신이 너무 나이를 먹어 가 보질 못해 미안하다, 힘을 내서 큰 일을 잘 치뤄라… 위로와 격려를 하셨다. 중간 중간 아들,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잘 도착했는지, 어디쯤 왔는지, 장남에게는 영안실에서 하룻밤 같이 지내라는 말씀까지...

그 날 하루종일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의 가시는 길에 예를 다하기 위해 전화를 붙들고 진두지휘를 하셨다. 마지막에는 막내 아들과 딸이 임무를 마치고 집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고생 많았다는 위로로 마무리를 하신다.


평소의 명랑한 모습과는 다르게 그날 어머니는 기운이 없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전화할 때를 제외하곤 계속 이부자리 속에 계셨다. 시동생의 죽음이,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마음 속에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저녁식사 후 전화번호 수첩을 이리저리 넘기던 어머니가 내게 부탁을 하셨다.


    “내일 밖에 나가면 이런 공책 하나 사오너라. 전화번호 수첩이 너무 어지러워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필요 없는 번호랑 바뀐 번호들 다 빼 버리고 새로 정리를 해야 겄다. 그려야 나중에 내가 죽으면 너이들이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쉽게 알지 않겄냐.”


어머니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낡고 잉크가 번진 수첩을 펴 놓고 새 수첩에 친구분들, 친척들의 연락처를 방바닥에 엎드려 하나하나 새로 적어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 속에 깊은 슬픔이 내려앉았다.


‘어른 노릇’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구순의 어머니를 보며 나는 또 한번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벌써 너무 많은 ‘나’를 포기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요구하는 의무나 격식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던 나는 꾸미지 않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살았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진한 기미로 내 얼굴에 각인되었다. 구순의 내 어머니는 물론 화장을 하지는 않지만 얼굴에 피는 검버섯을 지우기 위해 면봉에 연고를 묻혀 매일 문지르고 계신다. 주름이야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거니까 괜찮지만 검버섯 같은 반점은 손주들에게 흉하게 보일까 봐 없애고 싶다는 것이다. 후손들 앞에서 추한 모습으로 보이기 싫은 어머니의 자존심이 검버섯과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나의 귀찮이즘(내 딸이 오래 전 나의 유려한? 흘림체 글씨를 보고 엄마의 귀찮이즘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과 싸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귀찮이즘이 단순히 게으름의 발로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 내 인생 자체를 허망하게 소비하며 공허하게 흘려 보내는  것인지나 아닌지 모르겠다. 욕심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산다는 것이 각성하며 사는 것과 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닌데 어쩌면 나는 힘들게 다그치며 살고 싶지 않아서 버리고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에 스스로를 길들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치열함에 나는 발끝에도 못미치는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스스로  잘났다고 고개 뻣뻣이 들고 살아 온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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