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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Nov 25.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9)

인요한 위원장이 이재명 대표를 혁신위원에 임명하다?

아침식사 후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어머니는 평소처럼 뉴스를 시청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소리를 높인다. 

   “야야… 저 인요핸이라는 사람이 이재명이를 뭐신가 중요한 일을 허는디 임명혔단다.”

대단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는,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표정에 일말의 즐거움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허- 이건 또 무슨 말인고?’ 속으로 생각하며 TV 화면을 보았다.

TV에서는 인요한 국민의 힘 혁신위원장이 혁신위원에 누구누구를 임명했다는 보도가 한창이었다.


인요한 씨가 국민의 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보도가 처음 나오던 날, 어머니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셨다.

   “저런 사램이 우리 나래를 어찌 안다고, 한나라당(어머니에게 보수당은 한나라당 이후 아무리 당명이 바뀌어도 그냥 한나라당으로 고착됨)은 저런 사램한테 책임을 맽겨… 흥… 별꼴이 다 많다.”

이러셨다. 

그래서 내가 그 양반이 외양은 서양인이지만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오래 한국에서 산 한국사람이라고 설명을 해드렸다. 우리 애들이 동양인이라 캐나다에서 정치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불공평하지 않겠나 하는 말과 함께. 그 말을 듣고 어머니의 인요한 씨에 대한 의구심은 약간 누그러진 듯했다.

그런데 이 뉴스를 듣고 인요한 씨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는 것 같았다.


이 오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데… 인요한 씨에게 야당의 대표를 뭣인가에 임명할 막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사람이 진정으로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어머니가 갖는데 모르는 척할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왜 이런 오해를 하게 되었는지 파악이 안 되었다.


일단 먼저 논리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을 해 본다.

    “엄마, 인요한 씨가 이재명 대표를 어떻게 임명을 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저 사람은 국민의 힘이고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잖아.”

    “근디 테레비에서 분명히 그렇게 나왔는디? 내가 봤단 말이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이 중차대한(?) 일을 잘 못 알고 계시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대충 넘어가면 집안은 조용하겠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고 높은 의식을 가진 어머니를 모욕하는 게 되는 것 같아 바로잡아 드려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는 귀가 거의 안 들리기 때문에 뉴스도 화면 밑에 뜨는 자막을 읽는다. 그 과정에서 뭔가 잘못 읽으셨을 것 같았다.


먼저 인터넷 신문을 검색해 인 혁신위원장이 임명한 혁신위원들의 명단이 실린 기사를 찾았다. 기사를 열고 큰 활자로 확대해 어머니가 보시게 했다.

    “봐요, 엄마. 여기 이재명 이름은 없지요? 엄마가 뭔가 잘 못 아신 거야.”

엄마가 기사를 읽다가 휙 치우며 화를 내신다. 

    “아, 몰라 긍게… 저 테레비가 잘 못했는 게지. 그럼. 나는 분명히 그렇게 써 있는 걸 읽었단 말이다. 

    너는  내가 바본 줄 아냐? 금방 내 눈으로 그렇기 읽었는디? …(내가 더 뭐라고 설명을 하려 하자) 아, 그  만 혀 긍게… 나는 확실히 봤은 게.”


결국 유튜브에서 해당 뉴스화면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보기를 했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뉴스 시작하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어머니가 확실히 보신 게 맞았다. 어머니가 억울해하며 화를 내실 만도 했다.

문제의 화면 밑에 쓰인 자막이 또렷했다.

  

          [인요한 위원장 혁신위원 임명  이재명, 박정현, 이개호 임명]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임명 소식을 이렇게 나란히 한 줄로 자막에 올렸으니 귀가 들리지 않는 어머니가 자막만 읽고 그 뜻을 오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도 같았다. 

     “아 엄마, 엄마가 맞네. 엄마가 읽은 게 맞아요... 근데 그것이 그런 뜻이 아니고…” 

종이에 자막을 써서 보여드리며 다시 설명을 하였다. 당신이 읽은 것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한 지라 어머니도 비로소 납득을 하시고 알았다고 설명을 받아들였다. … 그것으로 오해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알았다.


잠시 후 외출 준비를 하고 어머니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어머니를 불렀다. 반응이 없다. 텔레비젼만 응시하고 계신다. 잘 못 듣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곁에 가서 엄마를 부른다. 이상하다. 큰 소리로 몇 번을 불러도 못 들은 척이다. 어머니 팔을 짚으며 다시 엄마를 부른다.

    “엄마~”

    “아 왜 그려. 알았다니께. 이해혔다고. 인제.”

뾰루퉁하니 입가에 주름을 가득 잡고 어머니가 손을 휘휘 내 저으며 얼굴도 안 돌린다.

       (그렇지. 우리 엄마가 뒤끝이 만만치 않지. ㅎㅎ)

    “그게 아니라 엄마, 나갔다 온다고요. 누가 그 얘기 또 할까 봐 그래요? 삐쳐 가지고 딸이 부르는데 들은  척도 안 하고… 참… 그래도 되는 겨?”

여전히 고개도 안 돌린 채 마지못해 인사를 받으신다.

    “알았어. 갔다 와.”


자존심 세고 자긍심도 높은 어머니가 잘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뉴스를 오해하는 해프닝을 겪으며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셨을까.

내가 한 짓이 옳은 것일까? 맞장구까지 치기는 그렇지만 모르는 척 넘어갈 걸 그랬나?


당신의 몸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들이 구순 어머니의 삶에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몸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정신적 능력에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런 상태를 스스로 확인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나 스스로 겪고 있는 일들이다. 그래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아무려나 쉽게 포기하고 물러서지 않는 어머니의 높은 자긍심은 여전히 꼿꼿하다. 그런 어머니의 현실이 한 편으론  안쓰러우면서 다른 한 편 존경스럽다. 


(자막을 서로 다른 화면에 나눠서 올려줬더라면 나와 우리 어머니가 아침 댓바람에 겪은 풍파는 없었을 것을... 방송국 기술진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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