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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Nov 12. 2023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은 똥 방귀 얘기를 참 좋아해

제이든은 어려서부터 목욕을 참 좋아했다. 호주에 있던 1년 동안은 집에 욕조가 없어 목욕을 못해서 아쉬워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주일에 2~3번은 탕목욕을 했다. 내가 욕조에 물을 받아주면 제이든은 샛노~란색 입욕제를 풀고 들어가서 신나게 놀았다. 물장구를 치고 혼자 여러 가지 장난감으로 역할극을 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4~5학년이 되자 뜨거운 물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욕조 위에 나무판을 올려두고 거기서 책(주로 만화책)을 읽었다. 제법 오래 앉아있었기 때문에 혹 탈수가 올까 싶어 음료수와 간식을 넣어주면 너무 신나 했다. 이런 게 제이든에게는 풀빌라 수영장 플로팅 와인+치즈 느낌이었을까? 큭큭...


"엄마~~~~"

제이든이 날 부르는 건 이제 목욕을 그만하겠다는 신호다. 나무판, 책, 접시와 컵을 내가 가지고 나오면 그때부터 제이든의 워터쑈쑈쑈가 시작된다. '유후~~'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물장구를 쳐서 욕조 밖으로 물이 흘러넘치게 하고, 사방으로 물을 뿌린다. (여기서의 사방은 화장실 4 벽면, 바닥과 천장을 포함한다) 


화장실이 어른들에게는 그냥 씻는 곳, 용변 보는 곳이지만 제이든에게는 가끔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주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제이든은 지금도 샤워시간을 즐긴다. 이제는 제이든에게 부쩍 작아진 욕조에서 더 이상 탕목욕은 하지 않는다. 키가 크면서 샤워기는 점점 샤워대의 위쪽으로 이동한다. 지금은 물장구나 물 뿌리기 장난은 없지만 제이든이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흥얼대는 걸 보면 아직도 샤워시간을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샤워하고 나왔을 때 "무슨 노래야?"하고 물어보면, 본인이 뭘 부른 지도 모르는 걸 보면 그냥 정말 자연스럽게 입에서 흥얼거려지나 보다.


예전에 가수들이 목욕탕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목욕탕에서는 노래를 더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


문득 나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 집은 3층에 살았는데 복도에서 오가며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복도에서 노래를 하면 내 소리가 근사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 마치 내가 무대에 선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정말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다. 하하하

매일, 아니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하며 노래를 불렀고 엉터리 한국어, 영어, 허밍 등등 그때 그때 기분이 내키는 대로 불러재꼈다. 목청은 또 얼마나 좋은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걸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시끄러웠을 만도 한데 그때는 이웃끼리 다 알고 지내기도 했고 인심이 좀 더 넉넉했었나 보다. 아무도 나에게 '시끄럽다'라고 지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심지어 내가 복도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다른 집에도 선물로 들려준다는 혼자만의 착각 속에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내가 노래를 썩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건 노래를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점수를 매기면서부터이다. 특히 '오 솔레미오'를 생목으로 (진성으로) 불러야 했던 고약한 시험 때문에 얼마나 연습을 하고 좌절도 했던지 아직도 그 노래 가사가 잊히지 않는다. 


제이든이 중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노래를 시험으로 보고 와서 내게 한 말이 있다.

"엄마, 노래 실력은 타고난 건데 그걸로 점수를 매기는 게 맞아?"

너무 동의한다. 물론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방법을 교육하지도 않는데 고음을 내야 하는 노래로 시험을 보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억울하다.


나도 제이든도 그냥 노래 실력과는 무관하게 자연스레 나오는 콧노래를 즐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내 노래는 (나에게는)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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