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청지기 May 15. 2023

나도 가고 싶다

수학여행 (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등교할 때는 할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책가방을 교실까지 들어주셨다. 하교할 때는 친구들이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혼자서 등하교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체육 시간마다 늘 교실을 지켰다. 친구들이 체육시간만 되면 내게 다가와 귀중품들을 맡겼다. 어떤 친구는 야한 잡지를 맡기기도 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체육복으로 환복하고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는 친구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소풍날에는 늘 결석했다. 친구들과 선생님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물론 나 조차도 이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수학여행 참석 여부 동의서를 나눠 주셨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여행은 부유한 집안의 전유물이었다. 6학년이 될 때까지 기차 한 번 타보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초등학생이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여행을 가는 '수학여행'은 그 여행 자체가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소풍조차 포기했던 내가 '수학여행'이라니. 

나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것이었다.  


동의서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고민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내 마음은 완전히 포기를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의논하여 많이 걷는 곳이 없으면 가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어머니는 내가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를 바라시는 것일까?


차라리 어머니가 

'너는 몸이 불편하니 수학여행은 가지 않는 게 좋겠구나.'

라고 말씀하셨다면 보다 쉽게 단념했을 텐데...


나는 속 마음을 꾹 참고 동의서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내 마음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1977년 4월 4일 (월) 맑음


오늘 학교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간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그 후 저녁때 어머니께 떠나는지 떠나지 않는지 가부를 표시하는 종이를 드렸더니 괴로운 표정이셨다. 


물론 경제 사정 때문이 아니다. 어머니께서 돈 때문에 괴로워하시지 않는 것을 내가 무엇보다도 잘 안다. 그러기 때문에 선뜻 "가지 마라"고도하시지 못하시고 "선생님과 의논하여 많이 걷는 곳이 없으면 가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하셨다. 


나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다시 종이쪽지를 가지고 나왔으나 속으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고 있었다. 


'왜 나는 이래야 하지. 왜? 왜?'


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따위 일로 실망할 나는 아니다. 다시 햔 번 용기를 내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