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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16. 2023

수학여행 안 갈래요.

수학여행(2)




온 가족은 나의 수학여행을 주제로 고민을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이것은 오랫동안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등하교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픈 아이 아닌가. 소풍조차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는 아이다. 요즘에는 장애인 학생 지원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고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가 있어서 학교 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돌봄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었다.


몸이 아파 3년을 휴학한 후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복학을 신청하러 학교에 갔을 때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자식을 학교에 데리고 오면 어떡합니까?"


햇볕을 보지 못해 뽀 하얀 피부와 유치원생과 같은 키에 깡마른 다리 등 교장 선생님이 보셨을 때는 이런 아이를 학교 보내겠다고 데려온 어머니를 한심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교장 선생님의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나를 복학시켰다. 


복학 당시보다는 많이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스스로 통학은 할 수가 없었고 체육 시간은 교실을 지켜야 했다. 그렇다면 수학여행은 당연히 보내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가족들이 이렇게 고민했을까?


너무나 가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보내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 이번 수학여행 안갈랍니더.


  집 떠나는 것도 걱정되고 

  친구들도 마이 불편할끼고.


  여행 가봐야 돌아다니지도 못할낀데 

  가먼 뭐하게십니꺼.


  마, 그냥 집에 있을랍니더.

  인자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못 간다고 체크해서 도장 찍어 주이소."


나는 결국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학여행 가면 고생이라 학교 안 가고 집에서 편히 쉴 수 있어서 좋다며 속에도 없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다.




1977년 4월 5일 (화) 맑음


오늘 아침에도 수학여행 때문에 말씀을 하셨다. 


형은 도로가 닦여 있기 때문에 많이 걷지 않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했고 아버지께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형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안다. 


아버지께선 외롭게 몸도 시원찮은 나를 보내는 것은 걱정도 되고 선생님 이하 여러 학급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진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는 것은 모든 식구의 근심 걱정을 쌓이게 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난 결정 했다. 


모두를 원망하지 않고 나 스스로가 안 가기로 작정했다. 가본 것이 나에게도 힘들 뿐 아니라, 날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애쓰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근심, 걱정을 하나 더 드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님과 학우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하고 모두를 위해 난 이번 수학여행을 가지는 않지만 더욱 노력하여 오늘날의 아픔을 씻어버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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