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zard Writer Oct 14. 2024

#7. 질투는 내 꿈을 알려주는 지도

도전, Artist Child in Hawaii 7/12

그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건 하와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여름으로 들어선 어느 셋째 일요일. 카마아이나(Kamaʻāina, '이 땅의 아이', 지역 주민 대상 요금 할인 및 혜택 통칭)를 살뜰히 챙겨 호놀룰루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HOMA)을 방문했다. 함께 간 친구는 미술관 내 극장에서 상영하는 'Song of Love'라는 다큐멘터리 음악영화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영시간을 놓치고 말았고 그런 영화가 있나 보다 하고 잊고 지냈다.


그 해 가을에 이 영화를 다시 만났다. 2023년 하와이국제영화제(Hawai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출품작으로 제목은 '하와이 연가'로 번역됐다. 2022년은 한국인의 미국 이주 12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하와이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민 온 최초의 한인 정착지이고 이 영화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담은 다큐다. 미술관에서는 당시 제작이 완료된 1부만 상영했던 모양인데 영화제에서는 추가 제작된 2부와 3부가 더해졌다.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바로 2부. 사진신부로 온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흑백 수준의 간결한 애니메이션에 리처드 용재오닐의 비올라 연주가 입혀졌다.  




아, 여기서 나는 또 '동시성'을 경험한다. 리처드 용재오닐은 아주 가끔 있는 나의 클래식 공연 참가 경험 중 눈물을 흘리게 만든 사람이다. 곡은 '섬집아기'. 흥미롭게도 이 공연 역시 나는 별 관심이 없었고 용재오닐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나선 거였다. 이 정도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격언은 진리에 가깝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활이 비올라 현을 타고 미끄러지며 '엄마가 섬 그늘에~'를 긋는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 친구가 물었다. "아까 왜 울었어?" "몰라, 모르겠어." 돌이켜보면 슬픔, 외로움, 그리움 같은 감정의 뭉침이었다. 용재오닐의 열혈팬에 내가 아는 지인 중 가장 섬세한 친구조차 못 느낀 특별한 감정선이었다. 감정보다 먼저 반응한 눈물이 당황스러워 찾아보니, 용재오닐이 어린 시절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그리움을 가득 담은 연주였다.


이뿐인가. '하와이 연가'를 보고 한 달 즈음 지나 영화를 연출한 이진영 감독과 스쳐 인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세 달 후에는 영화 2부의 내레이션을 맡은, 사진신부 할머니의 손자 게리 박(Gary Park) 하와이대 영문학과 교수가 한인사회의 삶과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주한인재단 하와이(Korea American Froundation Hawaii)의 2024년 수상자 중 하나로 상을 받는 자리에서 손뼉을 치고 앉아 있었다. 하와이가 좁고 한인사회는 더 좁지만 여하튼 나는 하와이살이 잠시동안 그 영화의 메가폰과 목소리의 주인을 그렇게 본 적이 있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했지만 알 수 없는 교만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 재미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여러분, 개인 취향입니다 - 음악영화도 생소한 장르다. 줄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물조차 겹치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옴니버스 형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늘 일정한 스케일이 있었다. 일상의 소소함을 다룬 영화보다는 판타지와 액션물을 즐겨보기 때문이다 거대한 세트장이나 기상천외한 인물들이 줄을 타거나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그런 영화는 내가 만들 수 있다고 꿈조차 꿔본 적이 없다. 대체 저런 걸 만드는 감독은 누구인가, 그들은 나에게 신령한 존재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여러분, 아직 뭘 몰라서 그럴지 모릅니다. '하와이 연가'의 이진영 감독은 하와이 공영방송 KBFD TV 앵커 출신으로 하와이 이민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취재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게리 박 교수가 상을 받은 그 행사에서 이 감독은 첼로 연주를 했다. 음악영화라는 것도, 내 비올라 연주 실력은 깽깽이 수준이지만 용재오닐의 '섬집아기' 첫 소절에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성이면 듣는 귀는 있는 게 아닐까?




"질투는 내 꿈을 알려주는 지도… 그 질투심은 나도 하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의 가면"이라는 구절을 읽고 나는 내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교만이 아니라 질투였던 것이다. 그 질투는 내가 용기 낼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누군가를 향한 발끈함이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내 속의 두려움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뭘 할 건데? 무슨 영화를 만들 건데?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아니, 사실 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소설 주제는 있다. 어쩌면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은퇴 후 젊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프랑스 유학을 가서 무엇을 공부할지 좁혀졌다는 정도. 취미 수준의 미학이나 건축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영화학이나 영화평론 같은 걸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면 시나리오를 쓰다가 영화를 찍은 줄리아 캐머런처럼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다지 예술적이거나 창의적이거나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본 적 없이 자랐다. 무난하고 무던한 모범생. 바르고 정직한 모습. 사람들 눈에 나는 그랬을 것이다. 그게 정말 나인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니까 그렇게 된 건지. 아마 그것도 나의 일부이겠지.


내 나머지 일부인 아티스트 차일드(Artist Child)를 찾는 여정의 기록이 절반을 넘어섰다. 이런 글을 함께 쓰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서로의 글을 읽고 격려하고, 내가 원하면 코칭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날 것의 쓰기를 그냥 해나가고 싶다. 지금 걸음마를 떼고 있는 아이에게 자세를 교정하고 모델처럼 걸으라고 하고 싶지 않다. 우선은 너답게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예술은 새로운 무언가를 억지로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적는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 냈다"는 미켈란젤로의 명언처럼 천사를 발견하는 시선과 그것을 세상으로 꺼내는 끈기를 갖고 싶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P.S. '하와이 연가'가 2024년 10월 30일, 한국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국민의 감상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


                    

이전 07화 #6. '사치'라 쓰고 '여유'라 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