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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Jul 13. 2024

#6. '사치'라 쓰고 '여유'라 읽음

시간, Artist Child in Hawaii 6/12

사치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을 뜻한다. 대체 '필요'는 어디까지이며 '지나친' 것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필요인지 탐욕인지를 가르는 경계선은 각자의 마음에나 새겨진 게 아닐까. 나는 이 경계선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격렬한 갈등을 진하게 겪어 보았다. 필요에 대한 기준이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을 향해 나는 그것이 탐욕이라 했고, 상대는 그것을 필요라 여기는 듯했다. 우리는 아직도 의견에 일치를 보지 못하지만 더 이상 견해 차이로 인해 다투지는 않는다. 필요에 대해 서로가 느끼는 경계선이 달라도 아주 다름을 하와이살이를 통해 내가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물질적 생활의 필요에 대한 최저 기준이 낮은 편에 속한다.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위한 의식주만 갖추면 '일단은 됐다'는 생각이다. 예쁜 옷, 맛있는 음식, 넓은 집에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덤이다. 소재와 기능이 뛰어난 옷, 재료와 요리가 훌륭한 음식, 위치와 구조가 탁월한 집에 산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명한 브랜드의 옷, 유행하는 음식, 값비싼 집이 '필요'의 수준으로 다가오고, 안타깝게도 그 수준은 끝없이 높아진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소소한 덤과 행운을 누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이 모든 것을 필요로 여기는 사람은 좀처럼 행복하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정신적 생활의 필요에 대한 나의 기준은 높은 편이다. 일단 재미없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의미 없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의미를 찾아내고야 만다. 정신승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욱 중요하고 기분과 마음이 소중하다. 결과만 보고 과정을 따지지 않으며 그 과정을 겪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 서운하다. 이렇게 정서적 필요가 높은 나는 - 누군가에게는 정신적 탐욕으로 보일 수준일지라도 - 다른 사람이 몰라주는 내 마음을 알아주려고 책을 읽고 영화나 공연을 보고 꽃을 사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도 연주하나 보다.




캐머런은 창조성이란 내면의 굶주린 배를 채울 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창조적 생활에는 자신을 위한 사치스러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 작지만 확실한 사치는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쓸 15분, 저녁에 욕조에 몸을 담글 10분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꽃 한 송이, 빈티지 옷 한 벌, 잡지 한 권, 예쁜 찻잔, 라즈베리 한 근, 음반 한 장, 드럼 스틱, 싸구려 그림물감, 자기만의 책상이나 의자, 쿠션일 수 있다. 무엇이 우리에게 참된 즐거움을 주는가? 그 답은 사람에 따라 다른데, 흥미롭게도 그것은 사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사치란 여유, 더 정확히는 지나친 여유, 넘쳐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진짜 사치인가? 돈? 아니 그보다는 시간이다. 나에게는 시간의 사치가 필요했다. 그 무지막지한 일에서 벗어나 혼자만을 위해 보내는 시간. 나는 한가로이 지내기에는 너무 바빴다. 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바쁜 사람이 훨씬 더 많겠지만 내 좁은 마음에는 여유가 특히 없었다. 그러던 내가 하와이에 와서 드디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심지어 핸드 드립을 하는 여유. 한국에서 커피가 유행하자 물을 끓이고 커피 향을 맡으며 핸드 드립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에게는 그것이 사치, 곧 시간의 사치였다. 아침에 물을 끓이고 커피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그 짬을 내지 못하고 회사 공용 커피머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코나 커피는 산미가 강한 편이라 내 취향은 아니지만, 하와이에 있는 동안은 이 커피를 맛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치를 부려보았다. 이왕 맛보려면 고급 맛을 본 후 단계를 내려가자는 심산도 있었다. 대표적인 로컬 브랜드인 호놀룰루커피컴퍼니(Honolulu Coffee Company)가 운영하는 커피숍(Honolulu Coffee Experience Center)에 가서 손으로 직접 땄다는 Kona Estate Selection을 골랐다. 미식가도 커피전문가도 아니어서 맛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봉지를 여는 순간 퍼지는 향기로움과 원두의 잘생김에 감탄한 것은 사실이다. 나름의 사치를 부려 고급 커피맛을 본 다음에는 잘 알려진 라이언(Lion), 꿀로 유명해서 향긋한 빅아일랜드비즈(Big Island Bees)의 코나 100%로 내려왔다. 이렇게 사치를 부리는 시도는 즐거움을 주었는가? 실로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다. 코나 커피가 어떠하냐고 누가 물을 때, 나는 그 잘생긴 원두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아침에 일어나 10분 요가 후 물샤워, 장 볼 때는 식재료 하나를 빼더라도 튤립 한 다발, 매주 금요일에는 홀푸드(Whole Foods) 특가로 나오는 굴 사 먹기 혹은 커피 한잔 시켜놓고 테라스에서 광합성하며 멍 때리기 등으로 작지만 확실한 사치를 부려보았다.




만약 하와이에서 누린 즐거움 혹은 사치가 거기서 끝났다면 잠시 굶주린 배만 채운 격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와이에서 누린 시간의 사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커피는 새로 장만한 기계를 즐기느라 핸드 드립을 쉬고 있지만 30분 일찍 일어나서 하와이에서 습관을 들인 아침 요가와 물샤워를 한다. 하와이에서 다짐했던 대로 드디어 사치스러운 공간도 만들었다. 바로 책상이다. 잘 앉지도 않으니 괜찮다는 핑계로 10년도 더 된 덜거덕 거리던 2만 원짜리 조립 책상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 유명한 국민 테이블을 들였다. 6인용 식탁으로 나온 제품이라 널찍하고 견고하다. 노트북과 독서대, 필기구와 달력, 무엇이든 올려두어도 비좁지 않다. 여기에서, 역시 하와이에서 다짐했던 대로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한국어교원 자격증 공부를 한다. 내 마음과 일상에 그만큼의 여유가 생겼단 뜻일 게다.


여유는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혹은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전자도 후자도 모두 생겼다. 하와이에서 누린 여유를 시공간적으로 구현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과 일을 대하는 내 마음의 상태가 느긋하고 차분하고 대범하고 너그러워졌음을 느낀다. 물론 급한 성질, 그 본바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으나, 당황스러운 일 앞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서 대안을 찾고, 열받게 하는 사람도 조금은 더 기다려 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보니 사실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한 것은 '사치'가 아니라 '여유'였다. 이래도 될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당시의 '사치' 덕분에 나는 한 껏 '여유'로운 상태에 도달했다. 캐머론의 말마따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란 곧 정말 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야 마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지 싶다. 빚을 내서라도, 잠을 설쳐서라도 말이다.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할 때 새로운 길을 향한 문이 열리고 자기 효용감이 올라갈 뿐 아니라 일은 더욱 놀이처럼 느껴지는 그런 여유가 생겼다.

 


하와이는 코나(Kona) 커피로 유명하다.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예멘의 모카와 더불어 세계 3대 프리미엄 커피라고 한다. 의외로 가격대는 다양한 편인데 그 이유는 코나 커피의 함량이 10~100%로 다르기 때문이다. 코나 커피가 100%라면 브랜드를 무론하고 200g에 최소 20~25$는 기본이다. 고급 원두나 손으로 직접 딴 것은 35~45$까지 올라간다. 보통 한국의 로스터리에서 파는 원두 가격과 비교하면 2~4배 비싸다. 그러니 싼 가격을 발견하고 무턱대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는 코나 커피가 10% 밖에 들어 있지 않은 블렌딩 제품이니 유의해야 한다.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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