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오늘의 날씨는 탁한 노랑. 누가 하늘에 노란색이 물감이라도 풀어 놓은 듯이 잔잔한 노랑이 세상을 덮었다. 은은한 빛깔이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은 제 세상을 앗아간 노란색을 싫어했다. 노란색이 세상을 비추는 날은 공식적으로 휴일이 되었다.
맞다. 지금 이 세상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모두가 꺼려 하는 날씨, 노랑,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 노랑.
오염된 공기가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비운 하게도 기관지가 약하게 태어났다. 서로 사랑해서 나를 낳았지만, 내 기관지까지 사랑하기에는 사랑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끝이 있는 내 삶을 책임지기에는 자기들의 인생이 더 소중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 혜택이 많아져 아이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혜택만 악용하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보육원은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고 불행 중 다행이게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버려지지 않고 약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
노란 세상을 볼 때마다 내 과거가 떠올라서 금세 우울해지고는 한다. 내 불운한 과거는 뒤로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예민한 내 몸에 신호가 온다. 턱 끝까지 턱턱 막혀 내 눈과 귀, 코와 목에 모래알이 가득 담긴다. 꼭 삽으로 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걸어간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해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 하지만 적극적으로 끝낼 수는 없는 삶. 복에 겨웠다며 나를 동정하는 삶. 그 속에서 오로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작은 흠집이다.
"야. 우연희."
그렇게 몇 걸음 걷지도 못했는데, 저 멀리서 방독면을 쓴 사내를 마주칠 건 뭐람.
내 이름 우연희. 원장님이 보육원 앞에 우연히 버려져있는 나를 발견했다며 억지스럽게도 우연희라며 이름을 붙여주셨다. 내 앞에 있는 사내의 이름은 이신우.
신우는 화가 날 때면 늘 성을 붙여 부르고는 했다. 방독면 그 뒤의 얼굴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눈을 부릅 뜨고는 그 시선을 마주했다. 말없이 응시하더니 성큼성큼 내게로 온다. 화가 났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내 손목을 억세게 휘어잡고는 제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신우 손에 이끌려 벅벅 씻고는 내일 아침에 노란색이 없어지면 병원에 가보자는 그 복합적인 눈을 마주했다.
"너는 미쳤다고 이 날씨에 나가냐? 목숨 귀한 줄 모르지."
"웅. 귀한 줄 모르겠던데."
말은 투박하게 하면서 다정하게 내 머리를 말려주던 손길에 힘이 들어간다.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그러다가는 손길이 점점 멎어진다. 이상함에 뒤를 돌아보니 꽉 쥔 손과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꾹 다문 입술을 하고 있는 너를 발견했다. 네 눈에 작은 물이 고여있다. 그러다가는 수건을 내팽개치고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손을 올리지도 못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있었다.
내가 천천히 수명을 갉아먹으려고 할 때마다 너는 귀신같이 나타나서는 나를 잡는다.
사랑도, 우정도, 집착도, 동정도 아닌 무언가를 받으며 그렇게 조용히 품에 안겨있었다.
내 삶의 쓸모는 너로 인해 완성되는 걸까.
2.
2XXX 년. 인구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역피라미드 형태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본인이 인생이 더 중요한 청년층들을 출산 장려 정책만으로는 휘어잡기 무리였다. 수요가 없으니 집에 대한 공급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재는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이 유흥과 쾌락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싫었다. 인구는 적은데 국가에서 사용할 땅은 적었다. 또한 온갖 1차원적인 욕구들만 가득한 거리에 미친 듯이 늘어나는 쓰레기들로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외곽지역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땅들을 국가의 땅으로 매입했다. 몇십 년 동안을 한 곳에 쓰레기를 매립하는 동안 땅은 서서히 썩었고, 오염되었다.
그 시간 동안 청년이었던 젊은이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을 비웃던 청년은 어느새 비웃음을 당하던 노인의 나이가 되어 고독사로 죽는 일이 허다했다. 중장년들 사이에서는 나는 딱 50살까지만 살고 자살하겠다며 선언을 하는 챌린지가 숏폼을 통해 유행을 했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소수의 수요를 잡기 위해 경쟁은 치열해졌고 건물은 점점 높아져가고 환경은 점점 오염되었다. 비례하게 쓰레기의 산도 점점 고도가 높아져만 갔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다. 쓰레기 매립장을 관리하던 직장인 A 씨는 어차피 50살에 죽기로 결심한 거 목숨을 담보로 많은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는 본인의 직업을 사랑하기로 했다. 애초에 업무의 강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템포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 오전에 몰아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늘어지게 영상을 보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였다.
늘 그렇듯 한 바퀴를 둘러보며 성의 없게 체크를 하고 제 사무실로 들어가 남은 시간을 잉여롭게 보냈다. A 씨는 당연하게도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것이 작은 균열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곧이어 바로 옆에 천둥이라도 치는 듯이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A 씨는 제 사무실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쓰레기의 파도에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더니 아, 씨발-을 제 유언으로 남기고 형편없이 휩쓸렸다.
붕괴 사건으로 상당수의 인구가 사망했다. 국가 재난급 사건으로 다시 재건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으며, 이날을 기점으로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큰 희망은 점점 줄어들어 그 의미를 잃어갔다.
달콤한 솜사탕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들은 돌이켜보니 제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지금은 많이 정상화가 되어 역사 교과서로도 실리는 내용이지만 자연은 세상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회색빛의 하늘이 디폴트가 된 세상에서 다른 색채가 주는 공포감은 특별했다. 탁한 노란색이 세상을 덮치는 날은 나가기만 해도 피부 두드러기가 오염될 정도로 악조건인 날씨로 분류되었다.
이런 날씨에 제 몸을 가학하겠다며 나선 연희를 신우가 곱게 볼리 없었다.
언젠가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장난으로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이 멸망해서 지구에 단둘만 남게 된다면 누구랑 남고 싶냐고. 꼭 이 반에서 이성 한 명만 골라야 한다고 장난스레 덧붙이던 미연의 히죽이던 얼굴이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뭐라 했더라- 신우랑 남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연희는 멸망도 전에 먼저 죽는 거 아니냐며- 경박스러운 농담을 던진 애를 주먹으로 한 대 날려줬거든. 꽉 쥔 손과 부끄러움에 불타던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게 고백을 하던 졸업식 날. 나는 모진 말로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어. 누군가를 책임질 생각도, 누군가를 배려할 생각도 없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볍게 살다가 어느 날 차에 콱 치여 죽어버릴 생각이야.'라고 했던가. 신우는 그런 나를 가지려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서성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자연스레 관계는 멀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았다. 신우가 연희를 발견한 어느 노란 날. 처음에는 우연이었다. 노란 구름이 뜬다는 예보가 있어서 급하게 공기가 들어올 통로를 막고 있었는데 창문 너머로 터벅터벅 방독면도 없이 걸어가는 희고 마른 애를 보았다. 직감적으로 연희임을 알았다. 신우는 확인하기 위해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밖을 나섰다. 연희가 벤치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잔뜩 놀란 신우는 '네가 왜 여기 있어?'라고 말했고, 연희는 '그냥 좀 뛰어봤어.'라고 말했다.
우연히 만나 우연히 사랑 비슷한 걸 시작했다.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다며 다시 끔 거절을 했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같이 있게 해달라는 너의 말에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노란 구름이 뜨는 날에는 연희는 늘 외출을 했고, 신우는 늘 그런 연희를 잡았다.
처음에는 정말 자해의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사랑을 확인받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신우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지적이라도 했다가는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꾹꾹 마음을 억누르고 납작하게 만들어서 밑 바닥에 붙였다.
3.
연희의 몸이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느낀 건, 말하는 도중 기침을 하는 횟수가 늘 있음을 인지한 순간부터였다. 한차례 관계를 가진 후, 같이 하던 식사 도중에 연희는 사례에 걸렸는지 밥을 먹다가 컥컥거렸다.
물을 떠오던 신우는 갑작스레 토혈을 하는 연희의 모습에 바로 119를 불렀더랬다. 손을 꼭 부여잡고는 그 앙상한 손 가지를 쓸어내렸다. 응급실을 통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지금 몸에 성한 곳이 하나 없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연희는 꼭 제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고 실실거렸다.
폐렴이란다.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당장이라도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신우는 마른 세수를 했다. 연희가 저를 떠날까 봐 아무 말 하지 않고 혼자 곪아갔었는데 이게 이렇게 터지는구나. 미움받더라도 네가 노란 세상을 즐기게 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아픔은 내가 받았어야 했는데... 자책을 하며 붉어진 눈가를, 더 나올 눈물도 없는 눈가를 비볐다.
"뭐 젊고 예쁠 때 죽으려고 했는데요. 뭐. 잘 됐네."
작게 읊조리던 연희를 신우는 흘겨본다. 혼자 내버려두라며 어차피 내버려두면 죽는 거 아니냐며 생떼를 부리는 연희를 차분하게 설득시켜 그날로 병원에 입원을 했더랬다. 매일같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면회를 왔다. 연희는 하루하루 말이 없어졌고 기침으로 대답하는 날이 늘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없는 일과였다. 업무를 마치고 연희에게로 가려고 준비를 하던 채에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위독하다는 전화에 바로 달려간 신우는 병실에서 웃으며 사람들과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 연희 모습에 그제야 안도를 했다.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기적이라는 건 정말 희박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신우는 연희가 앞으로 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보인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연희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연희는 신우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행복감에 젖어 두 다리를 쭉 펴고 신우가 자던 그날, 연희는 제 손으로 생명을 끊어냈다.
연희가 죽었다. 죽었다고 하더라. 죽었나? 왜?
바로 전 날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놓고서는, 남겨진 나는 무엇인가.
신우는 자세를 어떻게 취하고 있는지도 자각이 안 될 정도로 허탈하게 서있었다. 그녀가 내게 남긴 건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 이제 내게 맘을 열었다 생각했다. 너는 끝까지 틈을 안 주는구나.
나는 가족관계증명서 상에 등재되어 있는 보호자가 아니라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했다. 사실혼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 당연한 순리이다.
그렇지만 가족이 없고, 그나마 보호자였던 내가 전화도 받지 않아 병원 사정상 무연고자로 처리했다는 직원의 말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행복감에 자던 밤에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심을 했을까. 장례식장을 알아내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걷는 걸음이 푹푹 꺼져서 꼭 스폰지를 밟는 것 같았다. 너를 잃은 상실을 바닥이 꼭 흡수하는 것 같았다.
회색빛 하늘에 노을이 어슴푸레하게 제 색을 비췄다. 색은 섞여 오묘하고 기분 나쁜 색을 만들어냈다.
신우의 세상은 이제 회색이었다.
제 세상을 앗아간 노란색을 싫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