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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나 Aug 17. 2024

너는 무슨 헤어지자는 말을

단편소설

D의 이야기.

1.

우리 그만 만나자.

너는 무슨 헤어지자는 말을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는 말 다음에 하니. 그래 오늘은 얘기가 안 나오나 했다.

다연은 아니꼬운 듯 다리를 꼬았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단호한 말투와는 다르게 제 눈치를 보는 민수를 쳐다봤다.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 같은 눈동자. 고개만 내린 채 레몬에이드를 쫍 빨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지 아니할 수 없다.

케이크나 먹어.

웅.

먹으란다고 또 허겁지겁 먹는다. 민수는 제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더 이상 할 수 있는 자기 비하가 없을 때, 나를 버리려고 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미운 말을 나에게 한다.


헤어지자, 그만 만나자, 시간을 가지자. 그 속에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내가 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떨어졌어? 조심스레 묻는 다연의 질문에 민수는 침묵으로 답했다. 일어날까? 잘 마셨어라며 외면하는 모습에 나는 또 모른 척 속아 넘어가 준다.

또각또각- 울리는 나의 구두 굽 소리와,

질질 끌리는 너의 슬리퍼 소리.

바람에 날리는 나의 향수 냄새와,

너의 담배 냄새.

아메리카노도 입에 써서 에이드 종류만 먹는 애가, 공무원 시험에 두 번 연속으로 낙방하더니 담배를 배웠다. 네가 인생의 쓴맛을 아냐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했던가. 자연스럽게 향하는 나의 자취방에서 또 의미 없는 살을 부대낀다.

2.

모든 연인이 그렇듯 처음은 그저 순수한 양방향 사랑이었다.

2년 전, 졸업 막 학기에 과제에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 교내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너에게 반했었지. 안 그래도 교내 커뮤니티에 소문이 자자해서 알고는 있었다만- 특이 취향인 내게 훅 들어올 거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

행정정보과 2학년 복학생. 김민수. 종이책과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집중하는 눈빛이 얼마나 섹시하게 느껴졌는지.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고작 네 얼굴 한 번 보려고 굳이 굳이 이동 경로에도 없는 도서관을 가며 어느 날은 안경을 썼네-, 어느 날은 셔츠를 입었네-하며 사춘기 소녀처럼 나의 상상 속의 너를 가득 탐했다.  

졸업 직전, 나의 설렘을 쿠키와 함께 너에게 직접 전했다. 물렁한 복숭아처럼 부끄럼을 타며 당황해하던 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설렘도, 사랑도 본질이 흐려졌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준다. 스킨십이라던가, 돈이라던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뭐든지.

M의 이야기

1.

민수는 이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의무적으로 하는 스킨십과 데이트. 머릿속에 가득 찬 미래에 대한 커다란 고민과 점점 범위가 좁아져만가는 다연의 존재. 존재는 어느새 점이 되어 날파리처럼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게 잘해줄 때마다, 정말 이러다가 목숨이라도 걸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이건 애정이 아니라 양육에 가깝지 않은가.

사원증을 목에 매고 보란 듯이 내게 점심을 사주는 너를 보며,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어쩔 때는 길바닥에 있는 개미만도 못한듯하다. 개미는 그래도 일을 하고 있지 않는가.

너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너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몸을 웅크리며 더 굽혀들어간다. 내가 취업을 하면 조금 나아질까?

어느 날 나의 자존심이 밟히는 순간들이 떠오르며 습관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이 후련했다. 헤어지면 이 복잡한 감정도 날 어지럽게 하는 의문들도 다 없어지겠구나.

그런데 너는 내가 너에게 마음이 식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건지, 늘 말을 돌린다.

너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고 느끼며,

너를 밀쳐내는 것 또한 내가 정신이 불온해서라며,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 또한 내가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며.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너를 올곧게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관계마저 없으면 나란 존재를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해결할 수 없다.

 

D의 이야기

3.

어느 날인가 민수는 공무원 준비를 그만두고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취업을 하겠다며 선언을 했다.

민수가 내 품을 떠나간다.

당분간 취업 준비로 많이 바쁠 예정이라고 말하는 너의 눈빛은 회색. 생기가 돌지 않는다. 그제야 너의 시선을 떠올렸다.

술에 잔뜩 취한 너는 나에게 너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 헤어지자,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제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자며 취중진담을 했더랬다. 나는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며 거짓말을 했고 그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명백하게 들어있음을 사실은 안다.

헤어지자고 한 번만 더 말하면 헤어져 줄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말할 용기는 없으니까. 악역은 너에게 떠넘긴다. 문득 다연은 이 관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름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처럼 모든 게 모순되고 민수에게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하던 데이트를 이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이후에 한 번 하던 데이트를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너는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나는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손꼽아 기다리던 너와의 데이트 날. 어느새 너는 졸업을 하였고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최종 합격 문자를 보여줬다. 동시에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이 감정은 뭘까.

아. 들뜬 너를 보며, 살며시 내 손을 잡아오는 너의 생기 있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차분해진다.

아. 나는 사랑을 한 게 아니었구나.

나는 그저 나의 필요를 이 아이에게서 느끼고 있었구나.

"민수야 우리 헤어지자."

"너는 무슨 헤어지자는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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