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이 휩쓸고 간 자리, 그리고 교실의 밴드왜건
수업 시작 종이 울리기 전, 습관처럼 교실에 일찍 올라간다. 45분이라는 시간이 중학생 아이들에게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알기 때문이다. 딱딱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잠깐의 숨구멍을 터주는 것이 내가 자처한 작은 의무다.
교실 컴퓨터로 유튜브를 연결해 틱톡 챌린지에서 유행한다는 노래를 튼다. 제목은 낯설지만 리듬만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책상에 시들하게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든다. 개구진 녀석들은 앞으로 나와 마치 공중부양을 하듯 슬릭백을 추며 미끄러지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제 먹은 탕후루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에도 시간이 남으면 종종 노래를 튼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며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그 넘치는 에너지를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런데 그 뜨거운 열기를 지켜보다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저 현란한 춤과, 혀가 아릴 만큼 달콤한 설탕 코팅의 무엇이 아이들을 저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 대상은 다르지만, 이 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우리가 한때 허니버터칩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길게 늘어섰던 그 줄과, 대한민국 교실을 검게 뒤덮었던 노스페이스 패딩의 물결 등. 그 많던 열광의 대상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회 교과서 경제 단원에서는 이를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설명한다. 1848년 미국 대선 행렬의 맨 앞 악대차(Bandwagon)에 후보를 태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요란한 악대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우르르 그 뒤를 무작정 따라가는데, 이를 빗대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편승 심리를 뜻하게 되었다.
나처럼 유행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도 이 화려한 마차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 적이 있다. 내가 신규 교사였을 때, 대한민국은 ‘포켓몬 빵’ 구하기 전쟁 중이었다. 당시 과학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려 격리에 들어가셨고, 우리 부장님이 대신 보강을 들어가 주셨다.
며칠 뒤, 완치된 과학 선생님이 부장님 자리에 오셨다.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부장님, 보강해 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이거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봉지 안에는 그 귀하디귀한 포켓몬 빵이 가득 들어있었다. 부장님은 환하게 웃으셨고, 교무실 선생님들은 그 장면을 마치 로또 당첨자를 보듯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게 뭐라고’ 싶으면서도, 묘하게 부러웠다.
나는 빵은 못 얻었지만, 대신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받았다. 당시 내 노트북 겉면에 한 아이가 띠부띠부씰을 붙여준 것이 유행처럼 번져, 투박했던 내 노트북은 순식간에 알록달록한 포켓몬 도감이 되었다. 정작 나는 포켓몬 이름도 잘 모르지만, 그 스티커들을 떼지 않고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평생 유행의 변두리에 머물던 내가, 아이들 덕분에 주류의 세계에 ‘인싸’로 입장한 기분이었다. 촌스러운 선생님이 아이들의 사랑을 확인받는 순간, 그것은 빵 맛보다 달콤한 소속감의 맛이었다.
하지만 소속감은 얄궂게도 공포와 등을 맞대고 있다. 그 얇은 스티커 한 장이 없을 때, 그 대열에 끼지 못했을 때 느끼는 소외감은 생각보다 서늘하다. 나는 그 공포를 뼈저리게 기억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대한민국 교실은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가 지배했다. 바람막이부터 패딩까지, 특히 팔뚝에 적힌 700, 800 같은 숫자가 마치 계급장처럼 아이들의 서열을 나눴다. 그 시절, 아이들 사이엔 잔인한 질문이 유행처럼 번졌다.
“너 어디 살아?”
“아파트 몇 평이야?”
“너네 아빠 차 뭐야?”
브랜드 아파트나 넓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지만, 나는 누군가 내게 그 질문을 던질까 봐 늘 가슴을 졸였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투셨고, 무료급식을 신청했던 나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던 상태였다. 내게 유행이란, 따라가고 싶은 동경이 아니라 들키고 싶지 않은 가난이었다.
어느 날 밤, 늦게 귀가한 나에게 어머니가 물으셨다.
“이안아, 요즘 애들 다 바람막이 입는다며? 넌 안 필요해? 춥지 않아?”
어머니는 어디선가 그 유행을 들으셨던 모양이다. 당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기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기억한다. 어머니의 미안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짐짓 명랑하게 거짓말을 했다.
“에이, 엄마. 저 덩치 커서 추위 안 타잖아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사실은 교복 재킷 하나만 입고 버티는 등굣길이 뼈가 시리게 추웠다. 하지만 밴드왜건에 올라타기엔 우리 집 사정이 넉넉지 않았고, 나는 관심 없는 척, 추위를 타지 않는 척하며 스스로를 방어했다. 그때 알았다. 밴드왜건에 타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물건을 못 산 게 아니라 ‘우리’라는 세계에서 투명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시도조차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나도 그 ‘우리’에 끼고 싶어,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을 따라 억지로 PC방에 가서 유행하는 게임을 흉내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환호하는 그 모니터 앞에서, 나는 오히려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남들의 속도를 억지로 쫓아가는 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결국 유행의 마차에서 스스로 하차했다. 대신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혼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쪽을 택했다. 비록 그 선택이 나를 조금 외롭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선물을 남겼다. 유행의 마차에서 내려와도 삶이 허전하지 않을 방법을 나름대로 찾게 된 것이다. 소외된 시간이 선물해 준, 나만의 단단한 취향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거짓말쟁이 소년은 교사가 되었다. 비록 여전히 유행에 둔감한 어른으로 자랐지만, 아이들이 목숨 거는 그 유행을 결코 비웃지 않는다. 철없는 겉멋처럼 보이는 그 몸짓 속에, 친구들 틈에 섞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기꺼이 아이들의 밴드왜건에 올라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틱톡 챌린지 노래를 틀어주고 함께 웃는 에너지가 때로는 아이들을 살게 한다는 걸 알기에.
하지만 가끔은, 그 요란한 마차에서 잠시 내려와야 할 때가 있다. 유난히 시끄러운 교실 구석에서 엎드려 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혹은 방금 전 복도에서 나와 상담을 하고 들어간 녀석의 눈가가 붉어져 있을 때다. 모두가 신나게 춤추는 유행의 한복판에서, 홀로 소외된 슬픔을 가진 아이가 내 눈에 밟히는 그런 날이다.
그럴 때 나는 나름의 고집을 부린다. 아이들이 신청한 시끄러운 댄스곡 리스트를 잠시 멈추고, 내 플레이리스트를 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나지막이 읊조리는 god의 ‘길’이나,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말하는 패닉의 ‘달팽이’같은 나의 오랜 애창곡들. 혹은 요즘 아이들도 좋아하는 백아의 ‘테두리’나 최유리의 ‘숲’ 같은 잔잔한 곡들.
“쌤, 갑자기 분위기 왜 이래요? 너무 축 처져요. 신나는 거 틀어주세요!”
목소리 큰 녀석들이 아우성을 치지만, 나는 짐짓 못 들은 척 볼륨을 조금 더 높인다.
“얘들아, 잠깐만. 오늘은 이 노래 가사 한 번만 들어보자. 선생님이 지금 이 노래가 듣고 싶어서 그래.”
아이를 위로하고 싶다는 건 핑계고, 사실은 나도 위로가 필요해서다. 유행을 쫓아가느라, 혹은 밴드왜건에서 떨어질까 봐 아등바등했던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건, 결국 숨 가쁘게 몰아치는 비트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조금만 지나면, 투덜대던 아이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고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god의 노래가 나오자 “어, 이거 나도 아는데”라며 조용히 따라 부르는 녀석도 있다. 한번은 내가 튼 노래를 듣고 펑펑 우는 아이가 있었다. 남자 친구와의 이별 때문에 힘들었는데, 시끄러운 교실에서 울 곳이 없다가 그 노래 덕분에 마음껏 슬픔을 쏟아냈다고 했다.
그 순간 교실을 채우는 건, 모두가 똑같이 춤춰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차분한 위로의 공기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들도 발매 당시에는 차트를 휩쓸었던 ‘대유행’ 곡들이었다. 나 역시 그 시대의 밴드왜건에 탑승했던 셈이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남들을 따라 휩쓸려 들은 게 아니라, 내 귀에 좋아서 듣다 보니 그게 마침 유행이었을 뿐이다. 나는 챌린지를 하려고 듣는 게 아니라 그 가사가 내 마음을 울려서 듣는다. 타인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선택했다.
유행은 파도처럼 왔다가 반드시 사라진다. 그 귀하던 허니버터칩은 이제 마트 매대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평범한 과자가 되었다. 사람들의 줄은 사라졌고, 열광도 식었다. 밴드왜건이 멈춘 뒤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어떤 유행은 파도가 지난 뒤에도 조개껍데기처럼 남아 사회의 새로운 가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밴드왜건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한때의 거품이 걷힌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나만의 취향이다.
나는 아이들이 유행하는 슬릭백을 추고 탕후루를 먹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건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뜨거운 소속감의 축제니까. 다만, 그 축제가 끝난 뒤 텅 빈 무대에 남겨졌을 때, 너무 공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다 가는 맛집 줄이 너무 길면, 과감하게 옆 골목의 허름한 국밥집으로 발길을 돌릴 줄 아는 용기. 모두가 시끄러운 챌린지 영상을 볼 때,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가사가 좋은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릴 줄 아는 감성.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간단하다. 유행이라는 거대한 마차에서 잠시 내려와도, 삶은 여전히 근사하다는 믿음이다. 그 길던 허니버터칩 줄이 사라진 자리에서, 아이들이 금세 변해버릴 유행의 곡선보다, 변하지 않는 마음의 진심을 먼저 발견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니라,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이 길이 결국 나만의 정답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