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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당신의 거울이다.

10월의 패딩, 그리고 맨발의 아이

by 서이안

10월 어느 날, 교실 문이 열리고 맨발의 현우(가명)가 들어왔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구겨진 슬리퍼.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 그 빈약한 하체와는 기괴할 정도로 대조적인 거대한 갑옷이 나타난다.


몽클레어 패딩. 어른들이나 입을 법한 수백만 원짜리 명품 로고가,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앙상한 어깨 위에서 번들거린다. 아직 패딩을 입을 날씨가 아닌데도 아이는 땀을 흘리며 그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다.


"샘, 이거 비싼 거라는데 아세요? 아는 형이 빌려줬어요."


현우가 내게 다가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 형이 얼마나 센 사람인지, 자기가 그 형과 얼마나 친한지 늘어놓는 아이의 눈동자는 묘하게 흔들린다. 나는 그 눈에서 자랑스러움이 아닌, 절박한 구조 신호를 읽는다.


저 옷은 패딩이 아니다. 춥고, 가난하고, 부모의 이혼으로 구멍 뚫린 자신의 초라한 현실과 결핍을 가리기 위해 아이가 뒤집어쓴 ‘타자의 욕망’이다.


사회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나도 소유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 현우의 패딩은 그 확인의 도구였다.


현우에게 집은, 마음을 편히 누일 곳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팍팍한 현실의 공기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확인해 줄 따뜻한 시선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렸다. 소위 '노는 형들'이라는 거울을 선택한 것이다.


그 형들이 욕망하는 것(담배, 명품, 힘, 서열 등)을 나도 욕망하는 척 연기할 때, 현우는 비로소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3학년 형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고, 그들의 그림자 노릇을 자처하면서도 아이가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형들이 저를 좋아해요."

그 쓰임새만이 텅 빈 아이의 내면을 채우는 유일한 솜사탕이기 때문이다.


유독 남자 교사인 내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고, 여자 선생님들에게는 반항하는 모습 또한,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결핍된 강한 아버지의 자리를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는 내게서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선생님, 저 비싼 옷 입었어요. 저 이 정도면 괜찮은 애 맞죠?'라고.


그 위태로운 연극의 막이 내려간 것은 서울랜드 현장체험학습 날이었다.

형들도 없고, 담배 연기도 없는, 오직 순수한 즐거움만이 강요되는 놀이공원. 그곳에서 명품 패딩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또래 친구 사귀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현우는,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소리 지르는 아이들 틈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부장님과 순찰을 돌다 구석을 배회하는 현우를 만났다.

"점심은 먹었니?"

"네, 혼자 치킨 먹었어요. 그런데 느끼해서 거의 다 버렸어요."

"놀이기구는?"

"아까 뭐, 이것저것 탔어요. 근데 별로 재미없었어요."


거짓말이었다. 다른 선생님을 통해 그 아이가 점심도 굶고 종일 혼자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내 눈을 피하며 우물쭈물했다. 그것은 도덕적인 잘못이라기보다, 자신의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픈 본능처럼 보였다.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해 버리면, 그나마 간신히 붙들고 있던 마음마저 무너져 내릴까 봐 아이는 떨고 있었다.


라캉의 말처럼, 상상과 상징으로 덮어두었던 실재라는 끔찍한 현실이, 화려한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아이를 덮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아이의 얇은 거짓말을 벗겨내는 대신, 아이의 손을 이끌었다. "현우야, 심심한데 선생님이랑 이거 하나 같이 타자."

엉겁결에 나와 부장님 사이에 낀 현우가 놀이기구에 올랐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기계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아이들의 비명과 환호성이 뒤섞인 상공에서, 앞자리에 앉은 현우를 보았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명품 로고 뒤에 숨어있던 중학교 1학년 짜리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형들 앞에서 짓던 비굴한 웃음도, 내 앞에서 짓던 과시적인 웃음도 아닌, 그저 바람을 맞는 것이 즐거운 희미하지만 진짜 미소였다.


그 순간 느꼈다. 지금 현우는 새로운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 거울은 명품을 입어야만, 담배를 피워야만 인정해 주는 일그러진 거울이 아니라, "그냥 같이 놀이기구 타자"며 곁을 내어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교사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자란다. 내가 아이를 '문제아'로 보면 아이는 문제아가 되고, '안쓰러운 녀석'으로 보면 아이는 영원한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의 겉옷이 아니라, 그 속에 웅크린 맨발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비춰줄 때, 아이는 비로소 타자의 욕망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진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낼지도 모른다.


놀이기구에서 내려온 현우가 머쓱한 듯 코를 훌쩍였다. "샘, 재밌네요."


그 짧은 한마디가, 아이가 내게 보낸 진짜 신호라고 믿는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 패딩보다, 센 형들보다, 그저 또래 아이들처럼 마음껏 소리 지르는 이 순간이 더 좋았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그렇게 현우는 신이 나서 똑같은 놀이기구를 한번 더 타러 갔다.


나는 어쩌면, 당신의 거울이다. 거울은 반사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왜곡하고, 때로는 투명해 보여도 속을 비추지 못한다. 나의 말과 표정, 행동이 아이들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가 아이의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눈빛을 비춰주었는가. 나의 거울은 아이들의 결핍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유리였는가, 아니면 잠시나마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맑은 호수였는가.


오늘도 지각한 현우를 불러 상담했다. 이제 곧 한겨울인데, 등 돌려 가는 현우의 낡은 슬리퍼가 유난히 헐거워 보였다. 내일은 저 녀석에게 따뜻한 양말 한 켤레 사주어야겠다. 타자의 욕망 따위 없어도, 너는 이미 충분히 따뜻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면서. 그것이 두꺼운 명품 패딩조차 가릴 수 없던 냉기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길 바란다.


학교에 오는 5일 내내 네 발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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