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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한 Sep 02. 2023

한숨을 위한 들숨이 날숨에는 웃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던 부분

아빠, 엄마와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빠는 운전도 하고, 엄마와 대화도 하면서 이 사이에 낀 이물질을 빼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예민한 편인 나는 아빠가 반복적으로, 그러나 다소 불규칙적으로 내는 소리에 대해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게 되었다. 

"내가 한 10분 정도는 곧 끝나겠지 하면서 참았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요. 언제까지 그렇게 쯔-압 소리 낼 거예요. 이제 그만해 주세요."

머쓱해하는 아빠와 웃음이 터진 엄마로 나의 예민함으로 가득 찬 순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지나갔다.


나는 예민한 편이다. 특히 소리에 예민하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씹는 것도 싫고, 매번 후루루룩 캬-아하며 국물이나 음료를 마시는 것도 싫다. 나의 이런 예민함도 사실 좋지는 않다. 그냥 무던하게 신경 쓰이지 않는 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제주도에서 혼자 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터라 조용한 식사를 기대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하지만 주인분보다 날 먼저 반긴 건 점심시간부터 막걸리와 흑돼지 수육을 즐기고 계시는 아저씨 네 분이었다. 아저씨들을 등지고 앞 테이블에 앉아 성게 미역국을 주문했다. 맛깔난 밑반찬과 내 취향에 맞게 푹 끓여진 성게 미역국으로 배를 채우고 기분 좋게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좋은 기분을 한껏 즐기고 있는 순간,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는, 익숙하면서도 매우 거슬리는 소리가 귀에 꽂혀 들려왔다. 

'쫘-압, 쯔-압, 쩝- 쩝'

본능적으로 한숨을 쉬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날숨에 나오는 것은 한숨의 나머지 반숨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아빠가 생각났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십 년 넘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중이지만 지금까지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뵀다. 하지만 요 근래 시간과 마음의 여유 모두가 급격히 사라진 바람에 내 기준, 부모님을 못 뵌 지 꽤 됐다. 낯선 아저씨들에게서 본 아빠의 싫었던 모습으로 아빠를 떠올리고, 웃음이 나서 순간 예민함으로 가득 찬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 것 자체에 또 웃음이 났다. 싫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모습도 이렇게 뜬금없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리운 마음을 들게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금방 싱숭생숭해졌다.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었을 때, 처음엔 당연히 본능적으로 거슬리고 싫다. 하지만 그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합된 후에 다시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는 완전히 색다른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좋은 모습은 세상의 예쁜 것들을 볼 때 떠올라 그 감정을 극대화해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좋아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미워하는 세상의 모습조차도 예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졌다. 뜻대로 되지 않아 미워지는 세상으로 인해 들이마셨던 욱함과 울컥함이 내쉴 때는 웃음으로 바뀔 수 있는 마법 같은 힘.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러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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