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읓 Apr 13. 2023

시시리무카, 비라토리로 가는 길 (3)

시시리무카 아코로 펫포 

원래 계획은 천천히 비라토리와 시라오이 두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토마코마이에서 3박, 삿포로에서 2박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수로 숙박일수를 거꾸로 잡아 토마코마이에서 2박 밖에 못 하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라오이를 내일로 미루고 바로 비라토리로 가야만 했다. 


비라토리 정에 있는 니부타니는 외딴 시골 오지였다. 전철이 이어져 있지 않아서 도남버스로만 갈 수 있는데, 갈 땐 3번 환승해야 하고 돌아올 땐 2번 환승해야 했다. 갈 때도 올 때도 버스를 탈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정류장에 사람이 서 있어도 지나치는 한국 버스-특히나 경기도 버스-처럼 지나쳐가서 자칫 놓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이 앞섰다. 택시를 부른다면 숙소까지 17만 원가량이었다. 

오모테마치 5쵸메의 버스 정류장.

일단 아침 일찍 나와서 세이코 마트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사고, 그 앞의 정류장에서 시즈나이(静内)행 도남버스를 기다렸다. 오모테마치 5쵸메(表町5丁目) 정류장이었다. 8시 55분쯤에 오는 버스는 딱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해 승객을 태웠다. 


다행히 일본 버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친절했다. 정류장에 누가 서 있으면 일단 멈추고, 승객이 버스에 타면 좌석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면 "発車します(출발합니다)."라는 음성이 자동으로 울렸다. 차가 멈추면 승객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와서 요금을 지불하고 하차했다. 다행히 걱정 외로 이번 여행에서 처음 타보는 일본 버스는 편리하고 편안했다.


1시간가량 달리자 버스 창밖으로 사루 강(沙流川)이 보였고, 곧 사루 강 위로 이어진 철교를 넘어갔다. 아이누 신화의 중심이자 여러 지도자가 나온 사루 강. 아이누어로는 사라(sar, サㇻ)라고 하는데, 갈대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유역에 사는 아이누 사람들을 사룬쿠르(sar-un-kur, 갈대밭에 사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아이누의 신요(神謠) 카무이 유카라에서는 영웅신 오키쿠루미의 여동생이 부르는 구절 중 "시시리무카, 아코로 펫포"(시시리무카, 우리들의 강)의 시시리무카도 곧 사루 강을 의미한다. 아이누에게 있어서 성지나 다름없는 강인 것이다. 

철교를 지나자 환승 정류장이 있는 몬베츠 경찰서紋別警察署 앞이었다. 미리 주머니에 세어 놓은 동전을 지불하고 내렸다. 비라토리로 가는 버스정류장은 도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종종 사람이 지나가긴 해도 인적이 꽤 드물어 보이는 곳이었다. 한국이라면 보통 이런 곳의 차량 신호등은 노란 불이 교차하며 깜빡이거나, 보행자용 신호등은 잘 없는 경우가 태반일 텐데 여기는 달랐다. 차량 신호등은 바뀌는 기색 없이 초록불이었고, 횡단보도 너머 신호등에는 "押ボタン式(누르는 버튼 식)"이란 표지판이 함께 걸려 있었다. 


종종 우리나라 횡단보도에 설치돼 있는 시각장애인용 음성안내 버튼처럼 생긴 걸 눌렀더니, 차량용 신호등이 곧 빨간 불로 바뀌며 건너편 보행자용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국내여행 중 부안군에서 이런 방식의 신호등을 발견했다.) 내가 다 건넌 후에도 차로의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고 나서야 멈춰 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행자가 다 건넜다고 먼저 앞서가는 법이 없었다. 교통 법규를 굉장히 잘 지키는 모습을 보고 질서의식이 굉장히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본 사람이 다 그렇진 않을지라도 내 경험은 이렇다. 


도로 건너편의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시간표를 보니 역시나 여기서 버스를 탈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곧이어 오는 10시 33분의 비라토리 행 버스를 타고 다시 다리 위를 돌아갔다. 버스는 곧 토미카와 북부를 지나 비라토리까지 들어갔다. 


비라토리 정류장에 도착하자 시동도 꺼지고 종점인 듯 모두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내려서 다음 환승 정류장을 찾고 있었는데, 방금 타고 왔던 버스의 전광판이 비라토리 온센 행으로 바뀐 것이다. 자료관으로 가는 버스였다. 그럼 내릴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갈 수 있는 거니까 다시 차표를 뽑고 탔다. 버스는 몇 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지다가 이내 출발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오키쿠루미 상

버스 창밖으로 구글 지도에서 봤던 오키쿠루미 목조상이 보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허리에는 아이누의 검인 에무시를 차고 있고, 한 손에는 창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의식용 관인 사판페가 씌워져 있다. 이 상을 가까이서 보려면 차를 갖고 와야만 가능할 것이다. 



오키쿠루미 상을 지나자 얼마 안 있어 니부타니 자료관 앞 정류장이었다. 내가 탄 버스가 지나가자 길게 쭉 뻗은 도로에는 기다란 화물 트럭만 줄줄이 지나갔다. 길 건너편으로 전통가옥인 치세(cise, チセ)군이 점점 보였다. 사진으로만 봤던 니부타니 코탄에 온 것이다.


[토마코마이에서 니부타니 자료관 앞까지의 경로]

08:55 오모테마치 5쵸메 表町5丁目 앞에서

道南버스 토마코마이-시즈나이 (시즈나이 행) 탑승, 1시간 26분가량 소요, 요금 880엔


10:33 몬베츠 케이사츠쇼 門別警察署 (몬베츠 경찰서) 앞에서 하차 후 환승

道南버스 비라토리-시즈나이 (비라토리 행) 탑승, 23분가량 소요, 요금 500엔


11:00 비라토리 平取 정류장에서 그대로 버스에 타고 있으면 환승

道南버스 토미카와 고교-비라토리-장내안내소-히다카터미널 (비라토리 온센 행) 탑승, 9분가량 소요, 340엔


11:19 시료칸마에 資料館前 (자료관 앞) 하차




2023.04.04 가다

2023.04.12 쓰다 

이전 02화 이란카랍테, 신치토세 공항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