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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읓 Apr 15. 2023

니부타니 코탄, 이울어가는 성지 (4)

저무는 오키쿠루미의 땅   

니부타니 코탄의 동쪽. 아이누 요릿집이 있다.

비라토리에 입성하고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지나온 버스정류장마다 "은방울꽃과 유카라(ユカㇻ, 아이누의 구전서사시)의 고장 비라토리"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의 니부타니 코탄은 아이누 민예품과 명석(銘石)의 고향이었다. 

니부타니는 아이누어의 닙타이(niptai, ニㇷ゚タイ), 나무가 무성한 곳, 즉 산림을 뜻한다. 화인들이 오기 전 니부타니는 그야말로 나무로 무성한 촌이었다. 그러나 화인들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누 요리점 "런치 하우스 BEE"

한국이나 일본이나 으레 그렇듯 시골은 쇠락해가고 있었다. 이곳은 황량한 오지 시골이었다. 간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써진 "아이누 요리"가게는 간판에서 세월의 풍파가 느껴졌다. 아이누 전통 요리로 도시락을 파는 가게인 듯했다.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하절기 점심대에만 잠깐 영업하고, 그마저도 예약제로 운영하는 가게였다. 

옛날에는 사슴고기 라멘도 팔았다고 하는데, 20년 전 정보였다.

니부타니 코탄 주차장 안내도와 주변안내도.

◎니부타니 코탄 주변안내 (일본어 번역) 

여기 "니부타니 코탄"은 선주민족인 아이누 민족의 문화나 역사를 배우고, 현재의 생활모습을 느끼면서 미래를 상상하는 장소로써 정비하였습니다. 아이누어의 "코탄"은 한국어의 "마을"이나 "집락"을 의미합니다. 아이누는 그 생활방식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면서, 유형·무형의 전통을 현대에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아이누 민족의 전통가옥인 "치세"를 모아 복원한 "코탄"의 경관과 아이누 전통공예의 세계를 둘러보고, 이 "니부타니 코탄"에 아이누의 정신문화를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니부타니는 아이누 최초의 일본 국회의원을 지낸 카야노 시게루萱野 茂(1926~2006) 씨의 고향이다. 아이누 민족인 그는 자신들의 문화와 아이누어를 보존·전승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국회 중회의에서 아이누어로 연설을 하는 등 일본 내에 야마토 외 다른 민족이 있단 사실을 확고히 알렸다. 


그는 아이누 문화 연구가로서 구전으로만 전승되는 아이누의 옛날이야기 우에페케레(uepeker, ウエペケㇾ), 구비서사시 유카라(yukar, ユカㇻ) 등을 직접 발로 뛰어가며 기록했다. 예로부터 화인과 달리 문자가 없어 스스로 기록이 불가능했던 아이누의 구비전승들을 녹음하고, 글로 옮겼다. 현재에 남아 있는 많은 아이누의 문화재, 아이누어 기록 등은 카야노 씨의 노력이 한몫 한 셈이다. 그의 저서 "아이누의 비석"에 나오는 한 아이누 노인이 말하길, 


"……땅을 파면 석기도 나오고 토기도 나오지만, 우리들 조상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네. 언어는 땅에 묻을 수가 없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을 수도 없지. 입에서 입으로 단지 그것뿐이라네… 바라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아이누 말을 가르쳐 주게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 언어는 땅에 묻을 수가 없다. 어디 매달아 보관할 수도 없다. 언어는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이어지는 존재다. 언어란 마치 살아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니부타니 코탄 치세군 (二風谷コタン チセ群)
아이누 전통가옥 지붕 아래 전통문양이 들어간 자판기.

마을은 한적했다. 사람이라면 여기서 딱 한 명 봤다. 넓은 땅에 다문다문 지어져 있는 전통가옥 치세들, 창고와 곰 우리… 그리고 공예관 옆에 초가지붕을 쓴 자판기가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아이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은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마을이라니, 물론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넓은 만큼 황량했다. 

동절기 기간이라 치세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내부는 5월~10월에 일부 치세를 개방해 관람이 가능하다. 아직 동절기 기간에 방문해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비라토리쵸립 니부타니 아이누 문화 박물관 

니부타니 아이누 문화 박물관은 외양이 특이하고 소박하게 생겼었다. 당 박물관은 일본 중요 유형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다양한 아이누의 생활용구, 전통의복 등을 소장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아 보여도 근래에 지어진 우포포이 박물관보다 더 귀중한 박물관인 것이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견학요금

초·중학생 150엔, 성인 400엔

단체 관람 시 (20명 이상) 각각 100엔, 350엔 

공통권 (박물관 및 자료관) 각각 200엔, 700엔

■개관시간 

오전 09:00~오후 16:30

■휴관일 

12.16~1.15 한 달간 (관내 정비)

11.16~12.15 사이 매주 월요일

1.16~4.15 사이 매주 월요일

상기 이외에는 요일에 관계없이 매일 개관


아이누어 버스 정류장명

관내에 붙어 있던 아이누어 버스 정류장명. 토미카와 방면과 히다카 방면 일부를 아이누어로 안내방송하게 돼 있었다. 


니부타니 아이누 박물관 내 전시실. 다양한 전통의상 아미프와 민구가 전시되어 있다.

◎사루 강沙流川 유역의 아이누 전승 (일본어 번역)

"자연의 특징적인 모습에서 여러 의미를 찾아낸 아이누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지역성을 띈 우파시쿠마(구전) 안에서 길게 이어져나가면서 생활에 뿌리내려 왔습니다.


내용은 여러 가지로 전승되어 전통적인 수렵의 장이나 자연재해, 긴 홋카이도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토팟투미(야수)의 전승, 아이누 신앙 속 카무이(신, 정령)의 세계관 따위가 속해 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주민은, 아이누 전설 속의 영웅신 오키쿠루미가 강림한 땅에 사는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겨 타 지역 사람들이 경이로워했습니다. 사루 강 유역이 아이누 문화 발상의 땅이라고 하는 것도 오키쿠루미 전승과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는 홋카이도 전역에 빠짐없이 소재했을 아이누 전승지도 근래의 글로벌화와 함께 그 다양함을 망각해가고 있습니다. 사루 강 유역은 다행스럽게도 비교적 많은 장소가 제대로 된 유래와 함께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장소를 소중하게 보존해 가는 것은 지역주민에게 내어진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통의상들은 복원품이 아닌 참 유물인 듯 얼룩도 묻고 해진 곳도 있었다. 벽장 같은 곳에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여러 의복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이누의 아미프(amip)는 직역하면, 즉 "우리가 입는 것"이란 의미이다. 기모노(着物)의 "입는 것"이란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아미프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옷이 있고, 다양한 이름이 있다. 우리의 한복에도 두루마기, 도포, 쾌자, 철릭 등으로 나눠지듯 말이다. 


우선 나무껍질 섬유로 만든 옷을 앗투시(attus, アットゥㇱ)라고 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겉옷이다. 그리고 풀 섬유로 만든 옷은 테타라페(tetarpe, テタペ)라고 부른다. 아주 직설적으로 "하얀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로 옷을 만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수를 넣고 천 조각을 덧대는 방식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그 종류는 크게 총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덧대는 천 없이 간단히 자수만 놓은 것을 치지리(cijir, チヂㇼ)

큼지막하게 문양을 도려낸 흰 천을 덧대고 그 위에 자수를 놓은 카파라밉(kaparmip, カパミㇷ゚), 

검은색 계열의 천을 덧대 자수를 놓은 치카라카라페(cikarkarpe, チカㇻカㇻペ), 

여러 종류의 천을 덧대 화려한 전통문양으로 장식해 자수를 놓은 루운페(ruunpe, ルウンペ)… 

이 4가지의 옷들은 대부분 무명천을 베이스로 만들어진다.


아이누의 다양한 전통의상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으뜸가는 게 있다면 좀 더 내부에 있는 전시실의 어피옷 카야(kaya, カヤ)이다. 물고기의 가죽으로 만든 옷인 것이다. 나무껍질에 이어 물고기 가죽이라니. 열악한 재료임에도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인 아이누 민족은 손재주가 대단했던 것이 틀림없다. 





가다 2023.04.04

쓰다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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