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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읓 Apr 22. 2023

카야노 시게루의 유산 (6)

그리고 니부타니 호(湖)의 비애

가로등에는 아이누 전통 문양이 새겨진 나무판이 걸려 있다.

공예관에서 나오기 전에 카야노 시게루 씨의 자료관이 열려 있느냐고 물었다. 관계자 분은 잠시 전화로 확인해 보더니 오늘은 열려 있지 않다고 하셨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동절기 기간이고 사전에 전화로 연락하는 건 나에게 아직 난이도가 높은 과제였다. 내부 관람은 못 하나 바깥 건물이라도 눈에 담고 가야 될 것 같았다. 자료관이 있는 니부타니 코탄 맞은편으로 향했다.

코탄의 맞은편에는 신축된 새 공예관 우레시파가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곳인데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신기했다. 우레시파는 아이누어로 "서로 자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다가 문득 휴대폰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로부터의 안부 메시지였다. 잠시 답장을 보내고 있었는데, 공예관에서 한 남자가 나와서 말을 걸었다.


"뭐 찾고 계세요?"

"아, 그냥 잠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어요."

"니쨩(兄ちゃん, 젊은 남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 길을 헤매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요."

"혹시 카야노 시게루 씨의 자료관이 어디에 있나요?"

"자료관이요? 저 길을 쭉 따라가다가… 아, 마침 저기 트럭이 지나가네요. 저 트럭 가는 길 따라가면 나올 거예요."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오른쪽 길로 살짝 빠지자 자료관이 보였다.

카야노 시게루 니부타니 아이누 자료관

■입장료

초·중학생 150엔

고등학생 이상 400엔

■개관시간

오전 09:00~오후 16:30

■휴관일

동절기 11.16~4.15 (기간 중 견학에는 사전에 관장과 상담)


들었던 대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의미로 사진을 한 장 남기기로 했다. 저 안에 카야노 씨가 아이누 문화 연구가로 활동하며 수집한 아이누 민족-그리고 세계 각지의 선주·소수민족-의 다양한 민예품들이 보관돼 있는 것이다. 생전에 이 자료관의 관장을 지냈지만,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세상을 뜬 후에는 차남인 카야노 시로萱野志朗 씨가 관장직을 맡고 있다.


니부타니의 박물관과 자료관들은 거의 카야노 씨가 고향에 남긴 유산인 셈이다. 일생을 아이누 문화를 지키는 데 바친 그가 아이누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오늘날의 아이누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대의 파도에 점차 밀려나고 말았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지키고자 했던 카야노 씨의 노력과 후대의 의지가 꺾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비록 관내의 수집품들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바로 앞에서 이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진을 찍은 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다시 우레시파 공예관의 앞을 지나고 있자 아까 그 남자와 또 다른 여자 한 분이 나와서 날 부르는 것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오늘은 열려 있지 않네요!"

내 일본어가 서툴렀는지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클로즈!"

"아, 쿠로즈(クローズ, close)?"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나에게 어디서 왔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토마코마이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먼 데서 왔다며, 여기는 토마코마이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다. 그쪽으로 가려면 시즈나이에서 버스로 한 번 환승해야 한다고, 가까운 시간대의 버스가 있는지 찾아봐 주셨다.


그때 시각은 1시 10분 즈음에 이곳을 지나는 버스가 자료관 앞 정류장을 지난 지 조금 된 시간이었다. 어차피 4시에 오는 막차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다 둘러본 탓에 3시간 동안은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이미 버스가 지나갔다며 남자는 우레시파 공예관 안에서 잠시 기다리자고 했다.


"한국의 시골도 이런 모습인가요?" 남자가 말했다. 물론 모습은 달랐지만 버스 배차간격은 영락없는 우리나라의 시골이랑 다를 게 없었다. "네, 아무래도 이런 느낌이에요." 내가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우레시파 공예관은 굉장히 세련된 곳이었다. 그곳의 TV에는 당관의 홍보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방금 날 데려온 사람도 영상에 나오고 있었다. 넓은 공예관 안에서는 천 엔을 지불하고 전통 문양이 들어간 공예품 만들기 체험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체험하는 사람보단 아까 그 사람들을 비롯한 관계자분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공예관 안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걱정받았던 것 같다. 일본인들한테 둘러싸여서 일본어를 연발로 받으니까 무슨 말인지 거의 이해가 안 갔다. 돌아갈 방법이야 이미 다 재차 확인하고 왔지만, 대충 길 잃어버릴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막차가 올 동안 시간이 많이 남으니 길 건너편의 박물관을 다시 관람하고 오거나, 좀 떨어져 있는 요시츠네 신사를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신사야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본 것 같긴 한데 걸어서는 무리였다.


공예관에서 시간을 때울 수만 있다면 때우고 싶었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공예관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같아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견디기 힘든 공기 속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트위터를 서치하던 중 우연히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예관의 그 남자는 니부타니의 전통 공예가로써 뉴스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니부타니 코탄

니부타니 코탄에서 박물관을 지나 쭉 가면 니부타니 호(湖)와 사루 강 역사관이 있었다. 역사관의 입구는 급하지 않은 경사로가 있었는데, 꼭 비밀 기지로 들어가는 출입문 같았다.


아쉽게도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관 내에는 사루 강 주변의 자연, 출토된 토기, 아이누의 토성(土城)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챠시(casi, チャシ)가 축소 모형판으로 전시돼 있었다. 이곳 근처에 있는 유오이 챠시(ユオイチャシ)인 듯했다.


원래 아이누어로 챠시는 울타리나 담을 뜻하고, 전투가 목적이 아닌 제사나 집회를 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축소 모형으로 보는 챠시는 방어용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높고 튼튼한 우리나라의 토성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느 부분이 챠시의 윤곽인지 맨눈으로는 가늠이 잘 안 됐다. 홋카이도에만 500개가 넘는 게 챠시라는데, 유적이라는 걸 어떻게 안 건지 발견한 사람이 신기할 뿐이다.


관내의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니부타니 호(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니부타니 호는 일종의 인공호인 셈이다. 니부타니의 강 일대는 아이누 민족이 카무이쳅노미(kamuycep-nomi, 연어잡이 의식)를 하는 곳이었는데, 1973년 일본 정부는 이곳에 니부타니 댐을 건설했다. 이에 반발해 카야노 씨와 아이누 사람들은 건설 금지 소송을 걸었다.


이미 건설된 댐을 부수는 것은 어렵다며 아이누 측은 패소했지만, 큰 의의가 있었다. 그때까지 일본은 아이누 민족이 선주민족임을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았으나, 이 소송에서 법원은 아이누가 일본의 선주민족인 것과 그들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호수의 양쪽 멀리 너머로 바로 그 니부타니 댐이 보인다. 수면 위로 잘게 흩날리는 윤슬은 아름다웠지만, 선주민족의 의사는 무시당한 채 만들어진 풍경에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23.04.04 가다

2023.04.16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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