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인생일주

by 박홍시

최근, 다시 우울증세가 심해졌습니다.


별일은 없었고, 그냥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문제가 특별히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밀려오는 우울감과 좌절감, 자괴감, 그리고 스치듯 떠오르는 자살 충동이

저를 조용히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엔 슬픔이 가득합니다.

나이를 들은 사람들은 “그 나이엔 다 그래”라며 위로를 건넵니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게 있잖아요.

성공에도, 돈에도, 삶에도요.

저는 그 평균에서 많이도 뒤처져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직 함께 살고,

이렇다 할 알바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삶.


우울감에 휩싸여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부모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부모님은 “사고를 쳐서 우울한 거다”라며 제 마음을 덮어씌우곤 하시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조금 억울해집니다.


사실 저는, 참 많은 걸 받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온갖 기대와 지원을 받으며,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누렸고요.


아마 겉으로만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지금의 저는, 그냥

우울하고 불안한 백수 히키코모리일 뿐입니다.


최근에 억지로 일을 시작한 게 그나마 나아진 점이네요.

억지로라도 삶에 엮이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 관련 글: https://brunch.co.kr/@xxyyxx/122)


정신과 약은 오랫동안 복용해왔습니다.

수년간의 복용 끝에 남은 건, 늘어나는 체중뿐이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는 백수 히키코모리’에서

‘살찐 백수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거죠.

처음엔 그래도 조금 희망이 있지 않을까 착각했지만,

결국은 다시 깊은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졌습니다.


매일같이 써오던 에세이도 세이브 분량이 끝나

오늘은 그저,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이렇게 남깁니다.


이 글에서 처음 밝히는 이야기지만,

저에겐 어릴 적부터 ‘혹’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개골 안, 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제법 큰 혹이죠.

중학생 때 수술을 받았지만, 제거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더 커지지 않도록 막는 정도였어요.


몇 년 전 정신과에서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말하셨습니다.

“혹이 정신 질환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요.


단정은 못하지만, 뇌의 특정 부위를 압박하면

우울증, 불안장애, 그리고 ADHD와 같은 증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를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몇 년을 견디고 참으며 약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체중만 늘고, 자신감은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얼마 전, 저는 스스로 약을 끊었습니다.


의사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매달 수만 원의 약값, 무기력함, 부작용…

우울함은 약을 먹든 안 먹든 여전했기에

결국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삶은 놀랍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울하고, 여전히 불안하며, ADHD 증상도 비슷합니다.

단 하나, 체중 증가가 멈췄습니다.

그 덕분에 조금은 덜 우울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80일 뒤에 사라지기로요.


물론, 지금 당장 사라질 용기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그 누구보다 슬퍼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죠.


저로 인해 피해를 볼 수많은 일들,

아버지가 행여나 어머니 탓을 하며 다시 때리지는 않을까와 같은 나쁜 미래들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모든 이가 실시간으로 이어진 요즘 세상에 바람처럼 증발할 방법도 딱히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바닷가로 가서 테트라포트 사이로 몸을 던질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제가 발견됬을때 주변 주민분들이 얼마나 저와 제 가족들을 저주하겠습니까?

그것도 싫네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80일이라는 유예 기간을 두자고.

그동안 저는 정말 전력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80일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즐겁게, 뜨겁게 살아볼 겁니다.

마치 80일간의 세계일주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건, 내 삶을 위한 80일간의 유예입니다.

죽음을 미루고, 살아보는 실험입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이번만큼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조금이나마 찾아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다면, 살아 있는 동안 매일 감사하며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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