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귀가 굉장히 예민한 편입니다.
저 때문에 집에 모든 시계는 무소음 시계가 되어있지요.
어릴 때부터 소리 나는 시계는 모조리 건전지를 뽑아버렸습니다.
가끔은 참 저주스러운 재능입니다.
귀에 대비되는 입은 둔감해서, 썩지만 않으면 웬만한 건 잘 먹거든요.
하지만 귀는 어찌나 싫은 소리를 자주하는지, 이어폰과 헤드폰을 새로 사는 게 거의 취미 수준입니다.
듣는 음악, 날씨, 제 컨디션에 따라 장비가 다 있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귀를 만족시키려면 핫한 차트나 빌보드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제3세계, 신생 장르까지 파고드는 여정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제 플레이리스트는 수만 곡이 뒤죽박죽 섞여 혼돈 그 자체입니다.
따뜻한 록 한로로의 <시간을 달리네>에서, 갑자기 deadmau5의 <Sixes>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결국 이 모든 건 ‘귀를 막는 행위’입니다.
피곤하고 지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음악으로 주변 소음을 통제하는 것이죠.
그래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워낙 예민해서 별것도 다 거슬리거든요.
음악조차 듣기 힘든 날엔 아예 귀마개를 끼고 삽니다.
잘 때도, 일할 때도요.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가 내는 소리입니다.
터치 노이즈, 말소리, 심장 박동…
노이즈 캔슬링의 섬뜩한 정적 속에서도 그 소리들은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이 소리들은 낮에는 한쪽 귀에 걸터앉아 있다가 조용한 밤이 되면 귓속 깊이 스며듭니다.
숨소리, 심장 소리, 배 속 소리… 나만 들을 수 있는,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소리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는 소리는 막을 수 없고, 마음이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 소리를 무시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을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일을 마치고 주변을 치우는데, 제 자리에서만 보이는 각도에 쓰레기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온몸이 무겁고 허리가 비명을 지르는데, 마음 속 착한 녀석은 계속 외쳤습니다.
“그냥 주워.”
짜증 나서 물을 마시고, 폰을 들여다보고, 없는 연락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메아리처럼 그 말은 계속 울렸습니다.
결국 허리에게 닥치라고 명령하며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손끝에 닿은 건, 너무나도 가벼운 비닐 쪼가리 하나였습니다.
그제야 마음 속에서 소리치던 녀석이 조용해졌습니다.
참 괘씸한 녀석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리에 벌떡 일어나 저에게 무언가를 외칩니다.
아무리 귀마개를 깊숙이 꽂아도, 아무리 음악을 크게 틀어도 잡히지 않는 소리.
제 마음에는 무소음 모델이 없습니다.
노이즈 캔슬링도 통하지 않습니다.
짜증 나게도, 그 소리를 따라가면 늘 좋은 결과가 따라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무시하고, 잊으려 할 때마다 굳이 상기시켜 주는 녀석.
그래서 이제는 그 소리를 없애려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조금 시끄러운 채로 두고, 때로는 그 소리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 ‘양심’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쩌면, 제 삶의 배경음악으로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트랙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