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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Jun 01. 2023

새벽 3시에 출근하는 여자


     

'5개월 동안 잘 놀고 잘 먹고 잘 살았지 뭐. 영어공부 한다는 핑계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동네 축제니 행사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잖아.'


잔고가 줄어들수록 불안감은 커져갔지만 할 말은 없었다. 

그들과 함께 보고 경험하는 모든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사는 게 행복했었다. 뜨겁게 가슴을 채우는 게 좋아 더 오래 유희하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니 정신이 들었다. 그동안 놀면서 배운 영어를 자신감 삼아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실은 자신감으로 둔갑한 절박함이었다. 이력서 쓰는 것부터 막막했지만 형식을 파괴하는 이력서를 써보겠노라며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간략하게 적어 영문으로 변경하는 일부터 했다. 초고를 들고 가 영어를 가르쳐 주시던 교회 집사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교정을 받기도 했다. 어설프지만 이력서가 완성되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력서 100통 돌리면 현지인 매장 한 곳에서 연락이 올까 말까 하는 정도라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일지라도 떳떳이 취업한 유학생들의 선례를 보며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캐나다에는 국민 카페라고 불리는 팀홀튼이 있다. 우리나라 10년 전 이디아 커피숍을 생각하면 비슷할 거 같다. 팀홀튼의 커피와 도넛은 저렴하지만 맛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매장이 곳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이다. 갓 내린 원두커피 한잔과 한쪽엔 버터, 한쪽엔 치즈를 올린 베이글이 최애 메뉴였다. 커피를 먹으러 갈 때마다 유니폼을 입고 커피와 도넛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직원들을 보며 나도 저기 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좋아하는 커피랑 베이글이 있는 커피숍에서 일해보자’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한 장씩 봉투에 넣어 가지고 다운타운 곳곳을 누볐다. 팀홀튼 매장을 들어가서 매니저를 찾았다. 그리고 직원 채용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고 있다고 하면 이력서를 건네고 나왔다. 

다운타운 근처 매장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두 블록 아래에 있는 팀홀튼 매장에 들어갔다. 관광호텔 1층 코너에 있는 작은 매장이었다. 손님이 없는 틈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매니저를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시죠."

"아. 이력서를 내려고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짧은 영어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에도 긴장한 탓에 온몸이 굳어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매니저가 걸어 나왔다. 서류를 주면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한채 매니저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쉽게 될 리 없지. 이번에도 불합격이네.'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왔다. 팀홀튼 매니저라고 했다. 여러 매장에 이력서를 돌린 탓에 어느 매장의 매니저인지 몰라 되물었다. 다행히 집에서 가장 가깝고 작은 매장이라 일하기에 부담이 덜하겠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감사인사부터 했다. 그는 매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흥분된 목소리로 오케이를 연발하던 나에게 그는 일하는 시간이 3시부터 7시까지라며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당연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매니저는 무슨 일인지 연신 3시부터 7시를 강조했다. 

인터뷰하기로 한날 설레는 발걸음으로 매장에 들어갔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매니저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매니저는 우려스러운 말투로 다시 근무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자꾸 3시부터 7시를 이야기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영어가 잘 안 되니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랬다. 나는 알아듣지 못한 단어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알아듣지 못했던 말은, 오후 3 시아닌 새벽 3시였던 것.

짧은 영어에도 서류통과 후 다음날 바로 인터뷰가 잡혔던 이유는 바로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할 수 있는 파트너 채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새벽 3시. 이 시간에 일을 한다고?'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매니저의 설명을 들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로 새벽 3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는 도넛과 베이글을 만들고, 6시가 되면 나 혼자 매장을 오픈해야 한다고 했다. 6시에 첫 손님을 받아 커피를 내리고 계산을 하고 음료를 내어주고 있으면 7시에 직원이 출근할 거라는 말을 끝으로 아유오케이?   


"I.. I'm o.. k.. OKEY!! "

이전 01화 사실은 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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